20년 '나 홀로 재활', 고난의 재활이 '순례'인 이유...장애인 누구라도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 할 수 있다

[장애 회복을 향한 재활 순례기①] 연재를 시작하며

2024-10-18     서치식 기자
2005년 5월 19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필자는 한동안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2005년 5월 19일. 필자에겐 운명의 갈림길에 선 날이었다. 대학 졸업 후 지역 일간지에서 10여 년 동안 근무하다 도저히 생활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대리운전업체를 직접 꾸려 운영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다가온 얄궂은 운명의 순간이었다.  교통사고로 외상성 뇌손상으로 인한 미만성 축삭손상(Diffused Axonal Injury)과 2·6·7번 경추골절을 입었다. 당시 119 구조대에 의해 구조되어 한 지역 국립대학 병원에 후송됐다. 80여 일 만에 의식을 회복했으나 종일 누워서 지내야 할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청운의 꿈을 안고 정의로운 언론인을 꿈꾸며 전북지역의 한 일간지에 입사해  열심히 일해도 손에 쥔 것은 상상 이하의 박봉이었다. 그나마도 체불이 밥 먹듯 되풀이됐다. 도저히 가정생활을 꾸려 나갈 수 없어서 이직을 결심했는데 그 게 필자의 운명을 엄청난 시련과 도전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말았다.  의식이 들었을 때 '나는 내가 누구인지, 거기가 어디인지, 심지어 어머니조차 몰라보는 참담한 지경'이었다.

10년 간의 재활 노력 끝에 2014년 9급 공무원시험에 합격한 필자가 그해 9월 18일 지금의 박주현 전북의소리 대표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그러나 마지막 남은 강인한 정신과 인내력을 살려 재활에 도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5년여 만에 드디어 임용시험에 합격, 2014년 50대 늦깎이 공무원 9급에 임용됐다. 새로운 삶의 희망을 얻게 됐다. 4전 5기의 인간승리라고 주변에서 말했지만 또 다른 출발이자 도전이었다. 그 후 10여 년의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정년이 되어 7급으로 올해 퇴임했다. 주변 사람들의 축하와 격려 속에 퇴임을 했다. 

큰 교통사고 후 사경을 헤매던 필자가 20년 동안 비록 성공적인 재활이라고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지금까지 얻은 귀한 재활 경험들을 이 땅의 재활 환우들과 공유하기 위해 다시 섰다. <전북의소리>의 '시니어 기자'로서 재활 환우들과 주변 가족·친지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연재의 글로 다가가기로 했다. 많은 관심과 공유를 부탁드린다. /기자의 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순례와 '극한 시험'

  아브라함의 순례코스가 표시된 지도로  우르에서 이집트를 거쳐 가나안까지 2,300Km를 25년 동안 갖은 고난과 시험을 이겨내고 순례를 했다고 한다.(자료사진)

성경에 따르면 아브람이 그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약속만 빋고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난다. 그 당시 생활 근거지를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거주지를 옮기는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시대에 고향을 떠나는 것은 안전, 경제적 안정, 사회적 연결 등을 모두 포기하고 생명의 위협과 불확실성에 맞서는 모험이다.. 아브라함의 순례는 그래서 더욱 믿음의 상징이다. 행선지도 모른 채 무모한 하나님의 명령에 두말 않고 식솔들과 양 떼들을 거느리고 미지의 땅으로 떠났다.

무모하기 짝이 없던 그 명령은 기존의 환경에서 누리던 안정적이고 편안한 삶을 포기하는 것이지만 아브람이란 존재를 믿음의 조상으로 영원히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영생이자 구원을 위한 명령이었다. 주인공(리더)들은 항상 고향(현재)에 안주하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을 보는 시각이 열린 사람들이다. 그런 시각은 다른 문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어우러져야 터득 되는 것으로 수많은 어려움과 좌절 속에서 성장해 열린 시각을 갖게 된 그들로 인류 문명은 발전했다. 이른바 집단 너머 이주(Cross-community migration)로 설명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브람이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이 사건은 성경의 본질 즉 한시적인 존재인 인간을 영생에 이르게 하겠다는 성경의 핵심 주제를 드러낸 순간이다. 하나님은 75세에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고 길을 나선 아브람의 삶을 이끌고 시험을 통해 ‘믿음의 조상’에 맞갖게 변화시켜 마침내 그를 우리 모두의 조상 삼으신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우리 인류가, 소망을 잃고 기회가 없다고 여겨지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도전한다면 반드시 변화해 위대한 존재가 될 것임을 우리에게 명확하게 보인 것이다.

아브라함의 순례코스를 표시한 지도로 갈대아 우르에서 이집트를 거쳐 가나안까지 약 2,300Km를 25여 년 동안 온갖 위험과 시험을 거치며 순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아버지 테라도 아브람(나중에 아브라함)과 갈대아 우르에서 함께 여정을 시작해 가족과 함께 하란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생을 마친다. 큰 아들로 보이는 하란이(큰 아들이란 기록은 없지만 앞 뒤 문맥으로 유추)죽고 대를 이어야 할 아브람까지 아이가 없자 노아의 구대 장손 태라는 집안의 대를 잇고 자손을 번성 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가족을 이끌고 나선 것이다.

테라가 식솔을 이끌고 정착해 생애를 마친 하란은 좌로는 가나안, 우로는 중앙아시아, 북서로 올라가면 소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충지다. 하란까지 이끈 테라의 선택으로 아브람 역시 롯을 이끌어 새로운 땅으로 나아가게 된다. 결국 아버지의 결단과 모험으로 테라와 아브람의 여정은 가족 내에서의 가치와 신념, 그리고 도전 정신이 어떻게 세대를 넘어 전달될 수 있는지와 신앙의 계승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삭 번제 사건은 믿음과 순종의 극한 시험으로 여겨지고 있다. 당시의 아브라함과 이삭에게는 목숨을 바치는 희생과 헌신 이었다. 100세에 얻은 아들의 목숨까지 망설임 없이 희생 하려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순종으로 하나님은 그를 ‘친구’와 동등한 계약 상대자로 대접하게 된다. 이 이야기로 우리는 신앙과 순종의 깊이를 생각하게 된다.

장애에서의 회복(回復)을 본향으로 재활 순례

필자가 2012년 김제 지평선 마라톤대회에 처음 참가했을 때 모습.

필자는 2005년 5월 19일 교통사고로 미만성축삭손상(Diffused Axonal Injury)과 2,6,7번 경추손상을 입어 80여 일만에 의식을 회복해 6곳의 병원을 옮겨 다니며 3년의 병원치료 후 뇌병변2급 장애인이 되었다. 세 번째 옮긴 신촌 세브란스에서 ‘재활이 잘못 되었으니 휠체어를 이용하고 처음부터 다시 재활하라’는 진단을 받고 애써 추스르려던 내 세상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유수의 대학 병원 두 곳에서 전문 의료진에게 1년 여 받은 재활 치료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사람에게 더 이상 도움 받을게 없는 지경‘에 처했다는 생각이었다. 거기에 내 사고로 잠자리에서 엄마와 떨어진 어란 딸은 1년째 이모집울 전전하고 있어 그야말로 옴짝 딸싹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휠체어에 의지한 채 병원 교회를 찾았다. 예배 중 ’나의 등 뒤에서라는 복음 성가 중 ‘♪너 알어나 ♬걸어라~’라는 구절을 부르는데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지며 하프마라톤 완주‘를 하나님께 서원(誓願)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고난의 순례에 나선 아브라함처럼 하프 마라톤 완주를 서원하고 그를 하나님의 약속으로 붙들고 20년째 가열(苛烈)한 재활 중이기에 필자의 재활은 고난의 재활 순례다. 많은 시험과 도전에 직면하며 아브라함의 믿음은 더욱 강해지며 그의 순례는 신앙의 시험과 성숙으로 그 의미가 바뀐다. 결국 아브라함의 순례는 하나님의 나라 확장과 신앙의 영향력을 넓히는 과정이 되었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으로 발전했다.

‘더 이상 사람에게 도움 받을 게 없는 처지‘에 서원을 부여잡고 제활 순례에 나섰다. 불가능해 보이던 ’하프 마라톤 완주‘가 숱한 좌절을 극복해내며 실현 가능하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바뀌었다. 재활로 장애에서 회복되거나 현저하게 개선 될 수 있음을 하프 마라톤 완주로 증명해 이 땅의 265만 장애인들과 현대사회의 짙은 그늘에서 신음하는 이들에게 구체적 희망으로 우뚝 서겠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으로 발전했기에 필자의 재활은 고난의 재활 순례다.

병원 치료를 마치고 이른바 ‘나 홀로 재활’을 한 지난 17년간 내 생활의 중심은 늘 재활 이었다. 병원 치료와 인터넷으로 익힌 얄팍한 재활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접할 수 있는 수많은 운동을 내 몸에 적용해가며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완전한 재활을 이루겠다고 나선 길이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이었기에 분초를 다퉈가며 운동 시간을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일상의 모든 동작과 행동 '재활'을 꼭 염두에 두어야 

일명 '꺼꾸리'고도 부르는 Z-UP에 매달린 채 윗몸 일으키를 하는 필자의 모습. 늘 '소화 할 수 있는 최대치로 원동'하는 게 재활 원칙이다.

사소한 동작도 재활을 염두에 두려니 스스로를 엄하게 몰아갈 수밖에 없었다. 소변기 앞에서건 어디에서나 늘 11자 서기, 어깨 가동 범위 향상을 위한 팔 베게 하고 자기, 손이 자유로우면 언제나 정권 말아 쥐기 등 손가락 재활 햄스트링과 아킬레스건 단축 개선을 위한 쪼그려 앉기, 근육을 강화하고 관절의 유연성 증가를 위한 양반다리 앉기 등 일상의 모든 동작과 행동에 재활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렇게 모든 관심이 재활에 있으니 다른 사람과의 교류에 어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재활에 몰입 하느라 17년을 가족과 떨어져 살았기에 평범한 일상은 포기해야 했고 가정을 재대로 살피지 못한 무기력한 가장이었다.

처음부터는 아니지만 80여 일만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불러 일으키고 지난한 세월 내 손 잡아 이끄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명이라는 생각으로 20년 째 나 홀로 재활 중인 바 신경의 회복을 누리고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왼 편마비 전체에서 현저한 신경의 회복을 느끼는 요즘엔 감격을 스스로 느낄 정도다.

누구라도 어디서나 재활로 장애에서 회복 되거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

2013년 '제11회 김제 지평선 전국마라톤대회'에 다시 출전한 모습. 당시 JTV전주방송의 '전북인 이야기'에 방송되기도 했으나 제한 시간에 13Km까지만 주파해 실패했지만 큰 경험과 교훈을 얻었다.

하프 마라톤 완주가 주어진 과제다. 21.0975Km를 3시간 안에 주파해야 한다. 평지에서 50m를 걸울 수 없어 뇌병변 2급 장애인이 된 필자가 나 홀로 재활로 이를 이룬다면 장애에서 회복(回復)된 객관적 증거일 것이다. 머잖아 하프 마라톤 완주를 이루어 이 땅의 260여 만명의 장애인들에게 ‘적어도 뇌 병변 후천 장애인들은 누구든 재활로 건강을 회복 할 수 있으며 장애인 누구라도 재활로써 획기적으로 삶의 질을 개선 할 수 있다’는 것을 목소리 높여 말하려 한다.

또한, 유출은 없고 유입만 있는 재활 환자를 한정된 병상으로 감당하기에 붕괴 직전의 저수지 처지인 전국의 재활 병원을 집시처럼 떠돌아야만 하는 재활 환자들에게 ‘누구라도 어디서나 재활로 장애에서 회복 되거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객관적인 증거 제시로 대한민국 재활의 패러다임을 바꾸려 한다. 그것이 이 시간에도 실제 살아계셔서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 하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명이라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순례에 필적한 세월을 나 홀로 재활 했기에 내 재활은 고난의 순례이다. 

/서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