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미디어 시대 ‘무관의 제왕’은 어디에?
토요 시론
엊그제 한 시민으로부터 억울한 사연의 제보 전화를 받고 난감했다. 전주시민축구단이 보조금 횡령과 유용 의혹으로 수사를 받다가 단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축구단이 해체될 만큼 심각한 상황이란다. 이 때문에 제보자는 그동안 쌓여 온 문제점들이 산적한데 왜 전주시청을 출입하는 수십명의 출입기자단 기자들은 한 줄도 이를 보도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불만 섞인 내용이 첫 번째 사연이었다.
지역 일간지 간부 기자가 겸직으로 단장을 맡아 시민축구단을 운영해 온 사실과 그 단장이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사망해 지난해부터 선수 등에게 지급돼야 할 급여가 체불되고 선수들이 합숙소로 이용하는 숙소 임대료와 심지어 운동장 사용료도 밀린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충격과 파장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길거리에 내몰려 해체 위기에 처했는데도 전북을 대표해 전국대회 등에 출전하는 시민축구단을 누구도 보아주거나 문제 해결을 위해 도와주질 않는다는 게 두 번째 억울한 사연이었다.
전주시민축구단은 전북을 대표해 11일 경남 김해에서 개막한 제105회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한 것을 비롯해 13일 오후에는 강원도 대표팀인 강릉시민축구단과의 경기를 앞두고 있다. 결국 두 번째 사연도 취재·보도를 하지 않은 지역 언론들의 행태를 꼬집은 하소연이었지만 그의 고백은 1시간가량 이어졌다. 이날 제보 전화를 한 시민은 "그동안 시민축구단 문제를 보도해준 것 때문에 고마워서 제보를 하는 것"이라며 속마음을 털어놓았지만 알고 보니 그도 시민축구단 소속 회원 중 한 명이었다.
약자 목소리 대신 출입처 대변하느라 바쁜 최일선 ‘뉴스 게이트 키퍼’들
그러면서 그는 이날 한 가지 중요한 제보도 빠트리지 않았다. 시민축구단 선수들 중 사회복무요원 10명이 있는데, 이들은 팀을 옮기거나 그만두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어 곤궁한 처지에 처했다는 것이다. 각 지역의 시민축구단에 배정된 사회복무원이 10명으로 제한돼 옮길 수 없는 난감한 입장이란 점과 그동안 축구단으로부터 지급 받은 유니폼 등 각종 훈련용품비가 결제되지 않고 밀려 있어서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팀을 떠날 수 없는 처지라고 털어놓았다.
다른 언론사들과 출입처 기자들에게 내부 문제점들을 제보해도 들어주거나 보도해 주는 곳이 없다는 제보자의 전화는 좀처럼 끝날 줄 몰랐지만 필자가 해 줄 것은 들어주는 것과 확인 취재 후 보도해주는 것 외에 달리 해결해 줄 길이 없어 안타깝기만 했다.
이 문제를 지역에서 <전북의소리>가 지난달 12일 처음 보도한 이후 ‘전주시민축구단 보조금 유용‧횡령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한다’는 시민사회단체의 성명이 나오고 “국민의 혈세가 투명하게 집행되는 것을 감시해야 할 기자들이 오히려 동료 기자의 활동을 비호하는 데만 앞장선 것 아니냐”며 전주시청 출입기자단의 무보도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일간지들을 비롯한 대부분 지역 언론사들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시민축구단 보조금 횡령과 유용 등의 문제가 발생한 전주시청을 출입하는 기자들에 많은 시선이 쏠리고 있지만 침묵이 길게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동료 기자가 단장을 맡다 사망한 내부 문제이기 때문에 동료애가 주민들의 알권리나 회원들의 불편·불만보다 우선이라고 여기고 있는 때문이 아니라면 보도하지 않을 이유가 또 있을까?
우범기 전주시장이 옛 대한방직공장 부지와 종합경기장의 개발 청사진을 제시하거나 아중저수지 위로 케이블카를 설치한다는 기자회견을 했을 때 벌떼처럼 몰려가 취재하고 지면과 영상이 부족할 정도로 대서특필하던 출입기자들이 왜 무보도로 일관하며 침묵하는 것일까? 많은 시민들이 궁금해하지만 대부분 지역 언론들이 침묵하고 있으니 제대로 알 길이 없다.
이러니 하루가 멀다 하고 빚 독촉에 시달리며 팀을 떠나려 해도 떠날 수 없이 마냥 해결되기만을 기다리는 시민축구단 선수와 직원들은 경찰의 수사가 이뤄지고 있고 행정 조사가 진행되는 데도 언론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자신들이 더욱 지역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게 된다며 불안과 불편이 점점 쌓여만 가고 있음을 호소하고 있다.
전북지역 주요 관공서 출입기자들의 무보도와 침묵은 이처럼 특이한 지점에서 자주 나타나고 있다. 전주시 외에도 전북 행정의 가장 핵심 출입처라고 볼 수 있는 전북자치도와 전북자치도의회에서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오죽하면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런 현상을 문제 삼으며 출입기자단과 충돌하는 경우도 왕왕 목격되지만 이런 현상조차 역시 지역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는다는 게 참으로 희한할 따름이다.
‘입막음용 광고비 지급 내역 밝히라’는 시민단체와 ‘침묵’으로 일관하는 출입기자단
가령 전북자치도 대변인실 간부가 일부 지역 언론사들에만 입막음용 광고비를 지급해 뒷말이 무성하자 '공적 예산인 도청 홍보비를 공무원 개인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활용하지 말고 투명하게 집행 내역을 공개하라'는 시민사회단체들의 거센 요구에도 출입처와 출입기자단은 함구하며 함께 침묵을 지킨다.
지역 언론을 비평하고 감시하는 시민사회단체인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을 포함한 예산감시전국네트워크 등 전북지역 51개 시민·노동·사회단체가 모여 지난 6월 기자회견을 열고 "전북자치도청 대변인실 광고비 지급 논란과 관련 김관영 지사의 사과와 개선 의지를 밝힌 것"과 "전북기자협회와 전북도의회 출입기자단은 기자들의 부당한 광고 요구나 거래가 존재했는지 확인하고 진상을 조사 후 공개할 것" 등을 촉구했지만 지금까지 공식적인 답변이나 조치, 달라진 태도는 보이질 않는다.
쌈짓돈과 선심성 논란을 키운 전북자치도 언론사 광고비 논란에 이어 지난 7월 10일은 전북지역에 역대급 폭우로 많은 피해가 발생하던 날이었음에도 지역 국회의원을 비롯한 일부 전북자치도의원들과 도의회 출입기자단 소속 일부 기자들이 함께 한 ‘저녁 술자리 한우회식을 곁들인 간담회'가 적지 않은 논란을 야기했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나서서 '창탁금지법 위반'으로 고발하기까지 지역 사회가 술렁거렸음에도 출입기자단 소속 기자들은 역시 침묵과 무보도로 일관했다.
또 최근엔 한 지역 일간지 편집국장 출신이 전북자치도 중국 사무소 부소장에 임명됐다가 취업비자 발급이 되지 않아 무자격 논란과 외교 문제 비화 등이 우려됐음에도 현지에서 재택근무를 해오다 뒤늦게 한 도의원이 도정질의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슬그머니 사퇴해 파장이 컸지만 이 역시 출입처 기자들 사이에서는 보도 금기사항처럼 여기며 침묵과 무보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렇다고 출입처 기자단 소속 기자들이 항상 무보도와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해당 출입처에서 배포되는 보도자료와 기자회견, 인터뷰, 동정 등의 기사를 지속해서 생산하고 유통하는 최일선 뉴스 게이트 키퍼(Gate keeper) 역할을 한다.
출입처 중심의 기사를 보도하는 출입기자단 소속 기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무관의 제왕’인 듯이 행세하고 있다. 하지만 뉴스의 선택과 유통에서 뉴스 소비자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기·자사 중심적이다. 철저히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란 소릴 오래 들어왔지만 지금도 지역의 행정기관 출입처 기자단에서는 여전히 통용되는 양태다. 과거부터 이어온 출입처 기자단 중심의 의제 선택과 출입처와의 카르텔이 형성되고 통용되기 때문이다.
‘포디즘’ 넘어 ‘포스트 포디즘’ 시대에 ‘무관의 기레기’ 소릴 들어서야
'무관의 제왕'은 무지막지한 권력의 횡포에 맞선 언론인들을 향해 ‘관이 없는 임금(帝王)'이라는 뜻으로, 언론인의 막강한 힘과 책임을 가리키는 말에서 비롯됐다. 쉽게 말하면 기자는 ‘펜 한 자루를 들고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무관의 제왕’이란 의미를 오래 전 뉴스 이용자인 시민들이 부여했던 것인데,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다양한 뉴스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생산·유통되는 포디즘(Fordism)을 넘어 포스트 포디즘(Post-Fordism)을 향하고 있는 요즘엔 ‘무관의 제왕’대신 ‘무관의 기레기’란 말이 넘쳐날 정도다.
촌철(寸鐵)로 거악(巨惡)을 폭로하고 한 줄 기사로 가려진 진실을 알리며, 세상의 시시비비를 고발하는 '무관의 제왕'은 사라지고 어느 순간 기자와 쓰레기를 합성한 '기레기'(쓰레기자로도 부름)란 호칭이 붙혀진 것이다. 끊임없는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적 이벤트 행사와 차기 선거를 호시탐탐 노리며 치적 알리기에 혈안인 자치단체장들의 달콤한 보도자료와 향응에 길들여진 탓이 크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최첨단 디지털 미디어 환경으로 바뀌고 다채널 다매체 시대에 광고 협찬 경쟁이 날로 치열해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고 하지만 일선 뉴스 게이트 키퍼인 기자들만은 '무관의 제왕'이란 소릴 들어야지 '무관의 기레기'란 소릴 들어서야 되겠는가.
물론 지역 언론사 기자로 살아간다는 게 쉽지 않은 게 사실이고 현실인 점은 분명하다. 최저 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박봉에 적은 인원으로 많은 지면과 영상을 채워야 하는 고된 노동 강도, 여기에 노동조합이 아예 금기처럼 여겨져 노사협상이 먼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는 열악한 곳에서 근무하는 기자들이 여전히 많다. 그래도 기자가 되고 싶어 기왕 기자가 된 이상 ‘무관의 기레기’ 대신 ‘무관의 제왕’이란 소릴 들어야 하지 않겠나. 기왕 말이 나왔으니 요즘 유행하는 영화의 명대사 한 마디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