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 마실길 '치마바위'에서 '어머니'를 떠올리다
신정일의 '길 위에서'
2024-09-30 신정일 객원기자
"사람의 마음은 신기한 것을 향해서 움직인다"고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말했다. 변산 마실길의 '치마바위'를 보니 옛 추억들이 절로 떠오른다. 외변산의 풍경 중에 거대한 바위가 철벽을 두른 곳, 변산 마실길의 백미다.
물이 빠질 때 마치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다가 만나는 풍경과 같은 거대한 치맛자락이 펼쳐져 있다. 설운대할망의 것일까, 개양할미의 것일까? 나는 가끔씩 그 치맛자락에 기대어 내 유년시절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누가 뭐래도 내 모든 것을 받아주고 감싸주던 어머니 같은 변산의 치마바위다. 이 새벽에도 서해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치마바위는 누구를 떠올리고 있을까?
해가 지고 이곳에서 지난 시절을 회상하니 1986년부터 1987년 가을까지 부안읍과 하서중학교 사택에서 실업자로 살면서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내변산 들어가던 고개마루에서 한 말쯤 되게 캤던 더덕들은 지금도 남아 있을까? '내 집이었으면' 하고 갈망했던 구암리 고인돌, 이 곳을 걸으니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기는구나.
"관심을 갖고 무관심하는 방법을 가르치소서.
고요히 앉아 있는 법을 가르치소서."
'엘리엇'의 시 구절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다.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을 유유히 헤쳐나가는 일엽편주와 같이.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