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자기 역사 한눈에 볼 수 있는 '도자문화 수도'에 무형문화재 한 분 없고, 연구·전시하는 곳 없어서야 될 말인가?"
유기상의 전북 문화 이야기(55)
고창은 역사문화의 보고다. 한국 도자사를 잘 아는 연구자들은 고창을 빼면 한국의 도자기 역사를 쓸 수가 없다고 한다. 한국 문화의 정수인 고려청자 최초 가마터가 아산 반암리 청자요지인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도자사의 축약판이 고창의 도자기 역사다. 그 흔적으로 고창 곳곳에 도자기와 가마와 연관된 지명이 남아 있고, 모양성 한옥마을에도 고창 자기 체험전시장을 운영한다. 그간 조사된 청자, 백자 가마터 외에 2021년부터 2차발굴조사를 통해 반암리 초기청자 아파트형 벽돌가마와 진흙가마 여러 기가 동시 출토되어, 도자미술계의 시선을 고창에 집중시켰다.
가마터는 선사시대부터 토기, 도기, 자기, 기와, 벽돌, 숯 등을 소나무 불을 때서 구워내던 곳이다. 왜 이렇게 고창에는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시대별로 종류별로 한국 도자사의 연대기를 보여주는 도자기 유물유적이 많을까? 천혜의 도자기 산업 필수 요건을 잘 갖춘 도자기 제작 최적지이기에 도자산업이 성했던 것이다. 자기를 만들 점토, 세사, 장석, 석회 등 풍부한 원료, 가마를 불지필 연료인 소나무, 개경이나 한양으로 운송할 뱃길 수로가 필수적인 가마터 입지요건이다.
이러한 요건을 두루 충족하는 고창은 서해안 연안 항로로 연결하는 인천강 유역에 시대별 가마터가 밀집해 있다. 불과 30여년 사이에 소비성향 급변으로 고수자기의 명성은 사라지고, 고수자기를 계승한 자기 명인들이 미네랄 보약인 고창천일염을 자기기술로 가마에 구워내서 유효성분을 증가시키는 건강소금, 황토구운소금을 개발하여 새로운 지역특산품으로 출시했다.
후백제·고리 초기 청자의 산실, 반암리·용계리
한국 최초 후백제 청자 유적이 있는 곳이 전북 고창과 진안이다. 고창 반암리, 용계리에서 숙성된 최고급의 세련된 청자 기술이 주류포 만을 건너 부안 진서리 유천리에서 청자 문화를 꽃피운 전북은 고려청자의 종가집이다. 도자역사의 한반도 수도인 고창에 전통 도자기를 보존전승하는 문화재를 살려내고, 도자기 연구조직, 고인돌 박물관과 신축할 미술관에 고창 도자기 특별전시관을 두었으면 참 좋겠다.
군산대 곽장근 교수에 따르면, 한국 가마터 중 초기청자만을 굽다가 후백제가 망하여 수요자가 없어져서 문을 닫은 중국식 벽돌가마가 고창 반암리와 진안 도통리인데 모두 다 후백제 영역이다. 청자기술 원천을 후백제와 교류하던 오월국 기술전래로 보면, 후백제 시기가 9세기후반 10세기 중반이므로, 반암리는 가장 이른시기 청자 요지로 확인되었다. 후백제 시기 초기청자 기술이 고리시대로 전승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핵심유적이 반암리의 아파트식 가마터인 셈이다.
기존에 벽돌가마는 시흥 방산동, 용인 서리, 진안 도통리 등에서 확인된 적이 있으나, 고창 반암리 청자요지에는 최소 2기 이상 존재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벽돌가마 상층에는 3호 진흙가마가 위치했고 그 위로 4호 진흙가마가 들어선 중첩양상 구조, 이른바 특이한 아파트식 가마터 구조다. 학술적 중요성을 인정하여 2022년초에 전북도기념물로 시급히 지정했으나, 추후 추가적인 연구조사를 거쳐 국가사적으로 승격해야할 가치가 있다. 이곳 반암리의 초기 청자 기술이 계명산을 넘어 운곡습지 들머리인 용계리 청자 요지로 옮겨가 승계발전한 것으로 짐작된다.
운곡저수지 수몰대비 구제발굴조사로 1983년 실쳬가 확인된 국가 사적 용계리 청자가마에서 해무리굽 청자완과 태평임술2년(1022년) 글씨가 새겨진 생선뼈무늬 기와조각이 청자편과 함께 발견되어, 고리청자 전기의 연대 추정과 지방요 발전단계를 확실히 밝혀주는 유력한 자료가 되었다. 현재 유럽연합 선정 최우수 지속가능한 관광지로 선정된 운곡습지와 연계 관광을 위한 용계리 가마터 정비사업이 진행중이다.
조선 분청사기 가마터, 수동리·용산리
부안면 수동리 용고갯마루 옆 솔숲에 있는 분청사기 요지는 조선 전기 대표적 분청사기 가마터다. 지표 조사 후에 1977년에 이미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나 방치되어 훼손우려가 있었고, 향후 유적 정비를 위한 2015년 추가발굴조사 결과 분청사기 가마 6기, 공방, 퇴적물을 조사하여 정확한 가마의 성격을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조선 초의 상감, 인화, 조화, 귀얄 기법 등으로 장식된 15∼16세기 분청사기가 주종이었다. 그릇의 종류는 대접, 접시, 잔이 주류였고, 또한 전라도 지역 분청사기 가마에서 흔히 확인되는 ‘내섬(內贍)’이란 글자, 요즘말로 바꾸면 조달품이라 새긴 조각들이 출토되어, 관청납품용 분청사기 가마터임이 드러났다.
용산리 분청사기 가마터는 연기제 저수지공사로 2001년부터 발굴하였고, 학술적 중요성이 인정되어 전북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가마 4기가 발굴되었는데, 흑유가 많이 나타나는 분청사기 가마의 천장구, 계단형 소성실 등은 귀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특히 조선 전기 분청사기, 백자, 흑유자기의 변천 양상을 밝히는 소중한 연구소재다. 특기할 만한 것은 국보178호로 지정된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 쉽게 풀면, '분청사기 기법으로 만든 물고기무늬 파서새긴 납짝술병'이 바로 이곳 용산리 가마 제품이라는 사실이다.
1974년 국보지정된 이 납짝술병은 그간 생산지 불명으로 알려졌었다. 용산리 요지 발굴에 입회하고 박물관소장 유물편 등을 여러차례 감정한 고수자기 동곡요 출신 자기명인 김종한 대표는 "제작기법이나 문양, 재질로 보아 국보인 납짝술병과 똑같은 자기편들이 다수 출토된 고창 용산리 생산품이 분명하다"고 한다. 고창향토문화연구회 오강석 회장은 이것을 공인받기 위해 전국의 박물관장과 도자연구가들을 설득하려 애쓰신다 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특히, 고창의 용산리 분청사기 요지는 조선초 <세종실록, 지리지>에 흥덕현 서쪽 수레너미고개마을(輪峴洞)에 도기소 2개소가 있다는 기록이 얼마나 정확한가를 보여주는 진귀한 사료이기도 하다. 수레너미는 부안 창내와 용산리를 넘나드는 고개로 오늘날도 술냉기, 수레냉기, 수레너미 등으로 불리며, 무장현과 흥덕현을 잇는 주요 길목이었다. 백제시대 토기가마는 용산리, 용계리에서도 보이고, 고리시대 청자가마는 반암리, 용계리, 운곡습지 용계리 인근에 있었던 덕암소, 분청사기 가마로 수동리, 용산리 대표유적에서 보듯이, 시대를 초월하여 도자문화를 꽃피운 고창이다. 그 마지막에 피운 찬란한 불꽃이 고수자기다.
일본을 강타한 고수자기 '찻잔' 바람
15세기초 <세종실록지리지> 에 의하면, 전국에 139개의 자기소와 179개의 도기소가 있고, 전라도에는 70여곳이 있었다. 고창현의 현재 운곡습지 오방골에 덕암소와 도성부곡이 있었고, 고수에 대량평부곡이란 도자기 전문 특수마을이 있었다. 고수면 소재지 부곡리란 지명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부곡, 사동, 와촌, 옹기로 등 지명들이 고수의 도자문화를 대변한다. 고리말부터 고수 땅에 둔 대량평부곡에서 고려청자를 비롯한 조선 말의 술병과 술잔, 일제강점기 막사발 등을 생산하는 도자기술이 천년을 넘어 면면하게 전승되고, 서민들의 사랑받는 생필품이 되었다.
골동품 업계에서는 흔히 고창가마라고도 불리는 고수자기중 회백색이며 모양이 깔때기꼴인 ‘눈백이사발'이 유명하다. 고수자기는 일제강점기에 고스이야끼(古水燒)라는 이름으로 일본 차인들 소장 희망 1호품목이었다. 일본 미술품수집가인 야나기무네요시가 고창 인근 장성 황룡장 막걸리 집에서 수집했다는 고수자기 막사발을 1927년 동경고미술협회에 보고한 것을 계기로, 일본 다도인들 사이에 고스이야끼 찻잔 사재기 바람이 분 것이다.
고수자기의 6대 승계 명인 나희술이 부친인 5대 나만동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일본에서 고수자기 붐이 일자 당시 사이토 총독이 지방순시중에 고수자기를 직접 방문하였고, 총독의 지인인 정수성찬(한자나 일본 이름 불명)이란 일본인을 보내 나만동에게 고수자기 기술을 배우게 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1972년 일본 삿포로 올림픽 공식 찻잔도 고수자기였다 한다. 현재는 고수자기 나희술 명인이 고수에서, 고수 동곡요 류하상의 전승을 받은 김종한 명인의 선운요가 선운사 입구에서, 류하상의 아들 류춘봉 명인이 모양성 앞 도자기 체험관에서 고수자기의 맥을 근근히 잇고 있다.
고창 옹기는 5백년 전통의 고수 장암 고창옹기에서 7대째 계승한 배수현이 대학에서 도자기를 전공한 후 가업을 이서서 다행이다. 최근 식초문화도시 추진과 함께 식초 전문 초항아리를 특화 생산하여 호평이다. 장류문화의 필수품인 항아리에 발효시킨 고창 발사믹식초는 유럽의 오크통 발효 식초보다 산도가 두배나 높아서, 식초 발효에는 고수 항아리가 가장 좋은 그릇임을 입증하고 있다.
이밖에도 고창에는 아산 독곡, 아산 동촌, 성송 사내, 대산 지석, 부안 용흥마을 등에 요지가 있다. 석정온천 동남쪽 사기점골처럼, 점촌, 사기점골, 옹구점골, 와막, 가맛골 등 번성했던 도자문화수도 고창을 웅변하는 지명도 무수하다. 이런 고창에 전통 도자문화를 잇는 무형문화재 한 분이 없고, 고창 도자사를 연구·전시하는 곳이 없어서야 될 말인가? 내친김에 한일 양국의 지정문화재 등 유명 도자기 문화유산 속에 숨어있을 고창도자기 찾기도 시작해보면 재미있겠다.
/사진·글=유기상(문학박사·전 고창 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