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길
백승종 칼럼
선비의 길을 가장 먼저 밝힌 이는 공자였다. 『논어』 헌문편(憲問篇)에 그에 관한 구절이 있다. 어느 날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스승님, 군자(君子)란 무엇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수기이안인(修己以安人) 또는 수기이안백성(修己以安百姓)이니라.”
군자, 곧 선비의 이상형은 자신을 닦아서 타인 또는 백성을 평안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공자는 이렇게 언명했다.
공자의 간단명료한 설명을 통해서 선비의 길이 뚜렷해졌다. 우선 자아의 인격을 완성하라. 이어서 자신이 속한 사회에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었다. 후대의 선비들은 이것을 당연한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선비들은 수기치인의 길을 좀 더 명확히,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했다. 이에 자사(子思, 기원전 492~431)가 『대학(大學)』을 지었다.
워낙 오래전의 일이었기 때문에, 『대학』의 저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난립해 있다. 그래도 공자의 손자 자사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처음에 『대학』은 『예기(禮記)』의 한 편이었다.
정확히 말해 제42편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 주희가 그 글의 가치에 더욱더 주목했다. 주희는 장구(章句: 장과 단락)를 나누고 상세한 해설도 붙여, 한 권의 독립된 경전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이다.
『대학』에서는 수기치인을 팔조목(八條目)으로 세분하여 설명한다.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가 이른바 ‘8조목’이다.
그중에서도 앞의 5개는 수기에 관한 것이다. 나머지 3개는 치인에 해당한다. 얼핏 조목의 숫자만 헤아려보아도, 강조점이 수기, 곧 자아의 도덕성 함양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자아가 굳건히 선 다음이라야,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유가(儒家)의 사고방식은 그러했다.
수신에 앞서는 것이 네 가지였다. 먼저 격물(格物)이다.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는 일이다. 다음은 치지(致知)이다. 나 자신의 지혜를 극대화하라는 주문이다. 그래야만 다음 단계인 성의(誠意)로 넘어간다.
마음이 진실해지는 것이다. 이어서 바른 마음, 곧 정심(正心)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처럼 네 단계를 거쳐 도덕적 기초가 충실해야 비로소 수신이 가능하다. 성리학자들은 그렇게 배웠다.
선비라면 누구나 『대학』에 명기된 선비의 길을 잘 알고 있었을까. 조선시대에는 『대학』이 선비들의 필수 교양서적이었다.
17세기의 큰선비 목재(木齋) 홍여하(洪汝河)가 지은 과거 시험문제(策題)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대학』의 1경(經)과 10전(傳)은 성인이 말씀하신 본질(體)과 쓰임(用)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그 3강령(綱領) 8조목(條目)은 배우는 사람들에게 수기치인의 요점이 된다. 따라서 임금도 신하도 이를 모르면 결코 안 된다.” (홍여하, 『목재집』, 제5권, 책제)
17세기 선비들은 『대학』에서 수기치인의 길을 배웠다. 우리는 그렇게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조선 선비들 중에는 수기치인이란 표현을 역사상 누가, 어떠한 맥락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는지 궁금하게 여기는 이도 있었다.
1679년(숙종 5), 윤증은 박세채에게 편지를 보내 이렇게 물었다.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 끝부분에 (……) ‘소보운(小補云)’이란 말이 있고, 그 아래에 설명이 있지요. ‘수기치인(修己治人) 네 글자는 『대학』의 체(體)와 용(用), 강(綱)과 목(目)을 전부 포괄하고 있다’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사서대전(四書大全)』을 편찬할 당시, 곧 영락 연간(1402~1424)의 사람들이 쓴 것입니까? 아니면 운봉호씨(雲峯胡氏)와 쌍호호씨(雙湖胡氏) 등의 선비들이 한 말입니까? 저의 무지를 깨우쳐주시기 바랍니다.”(『명재유고』, 제11권, 「박화숙에게 드림」)
박세채가 윤증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17세기 조선의 선비들이 『대학』의 안내를 받아 수기치인의 길을 진지하게 걸어갔다는 것이다. 그때 선비들은 치인의 길보다는 선비의 기본자세인 수기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더욱 힘을 쏟았다. 이것이 조선 성리학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출처: 백승종, <<신사와 선비>>, 사우, 2018; 2018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선정 '우수출판콘텐츠'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