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범 6·3·3 재판 규정'과 '법의 존재' 이유

토요 시론

2024-07-13     박주현 기자

"선거범과 그 공범에 관한 재판은 다른 재판에 우선하여 신속히 하여야 하며, 그 판결의 선고는 제1심에서는 공소가 제기된 날부터 6월 이내에, 제2심 및 제3심에서는 전심의 판결의 선고가 있은 날부터 각각 3월 이내에 반드시 하여야 한다."

공직선거법 제270조 '선거범의 재판기간에 관한 강제규정'에 명시된 내용이다. 선거범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처리한다'는 강행규정을 둘 정도로 우리나라 법은 선거사범에 대해 재량의 여지 없이 법 규정대로 재판을 처리하라는 의무조항을 두고 있다. 이를 두고 흔히 '6·3·3 재판 강행규정'이라고도 부른다.  

주민들 생활과 밀접한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 그리고 청소년들의 교육 환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교육감 선거 이후 당선인들이 선거법 위반으로 수사나 재판을 받게 될 경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해당 지역과 주민, 학생들에게 전가될 수 있다. 따라서 선거범의 사법처리가 신속해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런데 지난 2022년 실시된 6·1 지방선거 이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다 기소된 단체장이나 교육감 중에는 지금도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가 많다. 기소 후 1년이 넘도록 항소심과 상고심 판결이 지연되는 동안 어느덧 임기의 반환점을 맞고 있다. 재판이 진행 중인 선거범은 남은 임기 중에도 법정 다툼이 계속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선거사범 크게 증가...'일당 독식 구도', '묻지마 투표' 크게 한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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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처리가 지연될 경우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 공방 끝에 유·무죄가 최종 확정되면 단체장이나 교육감 임기가 사실상 종료되는 경우도 있겠다. 문제는 최종 유죄가 확정돼 자격을 상실할 때까지 자치단체장이나 교육감이 4년 임기를 거의 다 채운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까? 여기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다. 무엇보다 재임 기간 중 자격이 없는 단체장과 교육감이 추진했던 각종 개발사업과 인사 등의 적법·정당성이 논란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법당국의 느슨하고 안이한 선거범 처리가 일차적인 원인이 될 수 있겠지만 이 같은 문제를 야기한 데는 유권자들의 '묻지마식 투표'와 이를 유도하는 '일당 독식 구도'의 낡은 정치 풍토, 이 외에 '유전무죄·유권무죄'도 한몫 단단히 가세하는 형국이다. 더욱이 재판을 강제할 방법이 없고, 기간을 넘겨 선고하더라도 재판이 무효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례 탓에 선거법 재판 진행은 지지부진하기 일쑤다. 

다시 돌아보기가 민망하고 불편하지만 지난 2년 전 지방선거 기간에 전북지역에서는 많은 선거 범죄가 극성을 부렸다. 각종 불법과 탈법 행위는 '깨끗하고 투명한 선거, 공정한 경쟁을 하겠다'는 선거 초기 외침들을 결국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게 했다. 전북에서는 광역자치단체장인 전북교육감이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돼 법정에 서게 됐는가 하면, 14개 시·군 중 군산, 익산, 남원, 정읍 등 4곳의 기초단체장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 교육감과 단체장 외에도 지난 지방선거 기간 중에 각종 불법 행위로 법정에 선 선거사범이 도내에서 모두 152명에 달했다. 선거별 기소 현황을 보면 광역단체장 선거 16명, 광역의회 의원 선거 9명, 교육감 선거 14명, 기초단체장 선거 98명, 기초의회 의원 선거 15명으로 나타났다. 당시 주요 선거사범은 ▲더불어민주당 전북지사 경선 과정의 관권 개입 ▲전주시장 선거 브로커 개입 ▲농촌지역 금품선거 및 여론조작 등이 대표적 사례로 꼽혔다. 

특히 전국적인 이슈가 됐던 전북지사 경선 과정의 관권 개입과 전주시장 선거 브로커 개입 사건은 민주주의의 축제이자 꽃이라고 부르는 선거가 오히려 깊은 갈등과 상처만 남게 한 대표적 사례가 됐다. 

서거석 교육감·강임준 군산시장·정헌율 익산시장·이학수 정읍시장·최경식 남원시장 '기소', 우범기 전주시장·최영일 순창군수 '불기소'...엇갈린 '명암' 

전주지방검찰청 전경.(사진=전주지검 제공)

전북에서는 서거석 교육감을 포함해 기초단체장 중에는 강임준 군산시장, 정헌율 익산시장, 이학수 정읍시장, 최경식 남원시장 등 5명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법의 심판 대상이 됐다. 당초 14개 시·군 단체장 중 6명이 검찰 수사대상에 올랐지만 우범기 전주시장과 최영일 순창군수는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서 간신히 재판은 피할 수 있게 됐다.   

이들 중 서 교육감은 전북대 총장 시절 '동료 교수를 폭행한 적이 없다'고 사실과 다른 발언을 한 혐의(허위사실 공표)로 지방선거가 있던 해인 2022년 11월 25일 기소됐다. 선거 기간 중 후보들 간 진실공방이 가장 치열했던 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된 서 교육감은 임기 중에도 법정에서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재판은 속도가 더디기만 하다. 기소 후 9개월 만인 2023년 8월 25일에야  1심 판결이 이뤄졌다. 공직선거법 제270조 '선거범의 재판기간에 관한 강행규정'에 1심 선고는 6개월 이내에 처리하도록 했음에도 3개월이나 지체된 셈이다. 

더욱이 1심 '무죄' 판결 이후 검찰이 항소하면서 2심 판결은 1년이 다 돼가도록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 교육감은  지난 7월 2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열고 남은 임기 동안의 각종 교육정책과 인사 등을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법정 다툼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계 수장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자주 나오고 있다. 

더구나 서 교육감 재판 과정에서 핵심 증인이었던 인물들의 위증과 위증교사 사건 등이 별건으로 불거지면서 서 교육감 재판은 더욱 지체되는 양태다. 이러다간 임기 내내 법정 공방을 벌이게 될 처지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교육계는 물론 법조계 안팎에서도 제기될 정도다. 가뜩이나 교육단체들은 서 교육감이 '무리한 자기 사람 채우기식 인사'를 하고 있다면서 '보은인사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사법처리가 지연되면서 정당성 시비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서 교육감, 1심 후 1년 동안 항소심 판결 지연...파생 사건 '복잡', 교육계 '악영향'

지난 7월 2일 취임 2년 맞아 기자회견을 연 서거석 전북교육감.(사진=전북교육청 제공)

게다가 서 교육감 재판의 폭행 피해 당사자로 지목된 동료이자 후배인 이귀재 전북대 교수의 위증 사건과 관련해 서 교육감을 변호하는 변호사가 해당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교육청 추천의 전북자치도 감사위원 자리에 있는 것은 부당하다며 사퇴를 요구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폭행과 관련한 진실공방이 위증과 위증교사로 번지면서 교육계에 미치는 파장과 이로 인한 불신과 우려가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따라서 신속한 사법처리가 요구되고 있지만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그래서 일까. 대학에서 오랫동안 법을 연구하며 가르쳐 온 교수이자 국립대 총장 출신이란 점과 화려한 변호인단 등이 입길에 오르내린다. 

그러나 전북지역 기초단체장들 중 강임준 군산시장은 지난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종식 전 전북도의원에게 현금 200만원을 제공하고 이익 제공 의사표시 및 변호사 비용 등을 교부한 혐의(매수 및 이해유도)로 2022년 11월 불구속 기소돼 1년여 만인 지난해 12월 7일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돼 혐의를 벗었다.  또 정헌율 익산시장은 지난 2022년 5월 지방선거를 한 달 앞두고 열린 TV토론회에서 "도시공원 민간특례사업 협약서에 초과 이익 환수 조항이 있다"면서 사실과 다른 내용을 말한 혐의(허위사실 공표)로 그해 11월 28일 재판에 넘겨졌다. 정 시장의 재판 역시 신속히 이뤄져 90개월 만인 지난해 8월 31일 대법원의 무죄 확정으로 혐의를 벗었다. 

이처럼 지난 지방선거에서 검찰의 선거사범에 대한 수사망을 피하지 못해 기소됐지만 대법원까지 이어진 법정 공방에서 1년 안에 판결을 마친 기초단체장은 군산시장과 익산시장 뿐이다. 이들과 대조적으로 서 교육감은 1년 넘게 법정 다툼을 진행하고 있고, 이학수 정읍시장은 더욱 더디게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어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이학수 시장은 지난 2022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라디오와 TV토론회에서 상대 후보였던 무소속 김민영 후보에 대해 "구절초축제위원장과 산림조합장으로 재직할 당시 구절초 공원 인근에 자그마치 16만 7,000㎡의 땅을 샀다"며 "군데 군데 알박기가 있다"고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 이 시장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와 카드뉴스를 언론 등 다수에게 배포했으나 상대인 김 후보는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하며 이 시장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 시장은 기소 후 8개월 만에 이뤄진 1심 재판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전주지법 정읍지원 제1형사부는 2023년 7월 5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시장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공직선거법상 선출직은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그 직위를 잃는다. 하지만 이 시장은 1심 판결 이후 4개월 만인 2023년 11월 항소심에서도 당선무효형을 선고 받았다.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제1형사부는 지난해 11월 10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시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고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1·2심 당선무효형 판결 후 맘껏 시정 운영...정당한가? 

취임 2주년을 맞은 이학수 정읍시장.(사진=정읍시 제공)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공직선거법 제270조가 규정한 '선거범의 재판기간 1심 선고는 기소 6월 이내, 2심은 원심 선고로부터 3월 이내 '반드시' 하도록 한 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문제는 2심 판결 이후 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대법원 상고심 판결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선거범의 2심과 3심은 각각 3개월 이내에 반드시 하도록 규정한 공직선거법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이에 이 시장은 임기 반환점을 지나 후반기에 접어들고 있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당선무효형을 1심과 2심에서 선고받고도 각종 시정을 추진하며 인사를 단행하는 모습을 보는 시민들은 불안하고 불편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2심 선고 후 8개월이나 지났지만 이 시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유난히도 다른 지자체장들의 선거법 판결에 비해 늦어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더욱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재판 시간 끌기 편법'이 동원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변호인의 해임과 선임을 반복하고, 소송기록 접수 통지서의 접수를 지원시키는 행위와 늦은 상고 이유서 제출로 담당 재판부의 심리를 지연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이 시장은 항소심 선고 이후 사흘 뒤인 지난해 11월 13일 정읍시청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 관계를 잘 파악하고 대응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됐다"면서 "대법원 판단이 나올 때까지 중단 없는 시정 운영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치권력·전관예우 눈치 보지 말고 독립적이고 신속하게 판결 내려야" 

 이를 바라본 시민들은 "군산시장이나 익산시장처럼 공직선거법 사건에 대한 상고심 심리가 빨리 이뤄져 무죄를 확정받도록 최선을 다했어야 한다"며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아랑곳없이 시정을 맘껏 운영하고, 갑자기 없던 공사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인사를 마음대로 하고 있지만 1심과 2심에서 연속 1,0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은 시장에게 신뢰를 갖기 힘들다"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이 때문에 학계와 법조계에서는 의도적인 재판 지연이나 현실적 제약이 있을 경우 강행·예외 규정을 두는 등 신속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온다. 이를 테면 공직선거법 제270조 '선거범의 재판기간에 관한 강행규정'과는 별도로 주민 생활과 밀접한 선거범 재판의 경우 보다 엄격하고 신속한 사법처리 규정을 부가해야 한다는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법을 연구하며 후학을 가르쳐 온 한 대학 교수의 뼈 있는 일갈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법원이 선거범들 중 당선인에 대한 재판을 늦춤으로써 임기를 실질적으로 마칠 수 있게 편의를 봐주는 측면이 많다. 그러나 법원은 정치권력이나 전관예우 변호인 등의 눈치를 봐서는 안 된다. 독립적이고 신속하게 판결을 내려야만 한다. 그게 법의 존재 이유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