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의 의견 개진 권리는 누가 제한 할 수 있는가?
제언
전주시 BRT추진 관련해 들리는 '이상한 공론화' 이야기
15년간 교통 분야를 중심으로 많은 글을 써왔다. 근래는 자전거나 교통에서 ‘도시계획’이라는 보다 큰 화두로 이야기하고 있다. 화두는 ‘거버넌스’였다. 도시계획 설정의 방법론이랄 수 있는 거버넌스는 근래 도시계획에서의 핵심적 알맹이다. 변화와 혁신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랄 수 있다. 순우리말이 떠오르지 않고 근접한 의미를 담고 있는 한자어로는 협치(協治)가 될 것 같다. 정의가 다를 수 있어서 내가 사용한 개념 규정이 필요할 것 같다.
‘함께 협력해 다스린다’는 뜻으로 직역될 수 있기에 파트너를 수반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협치(이후 거버넌스와 같은 의미로 사용함을 알림)는 행정(조직)이 시민들과 협의해 도시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고 운영해 가는 틀로써 인식하는 개념이 될 것 같다.
우리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서구사회라 해서 오류를 겪어오지 않았을까? 그들도 그랬던것 같다. 시장이 누구인가에 따라 도시계획의 방향성이 달라지기도 했고 우와좌왕 했다.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방향성을 가져갈 중장기적 전망이 도시계획의 기초에 자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비롯된 해법이다. 유일한 길은 도시민들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다른 생각을 가진 누군가에 의해 부정당하거나 이의가 제기될 수 있지만, 다수의 시민들에 의해 오랜 시간에 걸친 논의와 숙고를 통해 형성된, ‘합의된 비전’의 무게를 필요로 했다.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해 다수의 구성원들이 인정할수 있는 유력한 도구로 받아들인 것이다.
서구에서 정립하고 세계의 도시가 운영원리로 채택해 나가고 있는 거버넌스는 앞선 기고에서도 강조했듯이 ‘행정이 반영하되 시민이 주문 하는...’것을 핵심적 요체로 한다. 앞뒤를 바꿔 강조하자면 ‘시민은 주문하고 행정은 반영한다. 그것이 길이며 미래다...’가 핵심적 요체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이번에 전주에서의 BRT 논의와 관련한 과정에서 이와 관련해 중대한 하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련의 주장을 하고 있으며 그 내용들을 전편에 이어 기고로 정리한다.
(나를) 오해하는 여러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정제된 표현과 정확한 어휘 선택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편이다. 과격하고 비약된 어휘선택을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부연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국회의원'들에 대한 기대치와 실망감을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국해의원'이라 부르면 그 뜻이 더 정확하게 전달될까요? 독자들이 알아야 할 사실을 전달하지 않고 목적과 의도가 숨겨진 기사를 통해 여론을 왜곡하는 기자들을 '기레기'라고 부르면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시민들 사이에서의 문제의식 전파가 더 좋을까요?’와 같은 말을 자주 쓰는 편이다.(이런 용어 사용을 자제하자는 의미로 쓴거 임)
그런 내가 최근 ‘우리 도시계획은 순 엉터리이며 기만’이라고 말한다. 심지어는 사업계획을 설명하는 공무원들에게도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 대목에서 사용한 ‘엉터리’나 ‘기만’은 과장된 표현이며 과격한 언사일까? 앞뒤에 몇 마디만 덧붙이면 어휘선택의 적절성이 공감될 것 같아 이 이야기의 앞뒤를 완성한 주장으로 정리해 본다.
도시계획은 시민들과 충분하게 상의해서 마련해야 해요. 버스 타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그리고 자동차를 타는 사람 등 다양한 영역을 가진 사람들의 이해와 의견이 반영되고 해소될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지금 한다는 BRT 추진계획을 어느 시민들과 어떻게 상의했나요? 시민들과 상의 없이 이뤄지는 도시계획은 그 생략된 정도만큼 망할 수밖에 없는 길을 스스로 만드는 거예요.
도시계획을 이렇게 엉터리로 하시면 안 돼요. 국토부에서의 중앙투자심사나 전라북도에서의 계획심의에서 실시설계에 앞서 다양한 시민들과의 의견수렴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을 조건부로 승인 받았다면서요. 그런 것들을 언제 어떤식으로 이행하셨죠? 혹시 '몇 월 며칠날 어디서 이런저런 자리를 가졌고 그런 자리에 몇 명의 시민이 참여했고... '를 나열하면서 충분하게 시민들과 상의하고 마련해 온 계획이라고 설명 하고 싶으신 거예요?
그렇게 말하시면 시민을 속이는 겁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시민들 의견 수렴해서 설계에 반영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날 이때까지 무슨 이야기들을 듣고 다니셨는지 말씀해 보실래요? (스스로가 정한) 결론과 일정, 그리고 방침을 유보하고 귀를 열고 시민들 의견을 수렴하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그게 제일 빠른 길 일 겁니다. 이런 걸 안 하니 엉터리고 반복된 엉터리가 우리 도시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시민들을 속이려 들지 마시고 제발 겸허해지세요.
시민들 의견수렴하려 모이라 해놓고서 귀한 시간 내서 모인 시민들에게 의견을 말하려면 준비한 강의부터 들어야 한다면서요? 세상에 그런 공론화도 있답니까? 대체 BRT에 관한 의견을 가진 시민이 무엇을 알아야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나요? 강의 끝나면 잘 이해했는지 쪽지시험이라도 보시나요?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또한 전라북도와 국토부에서 실시설계를 하기에 앞서 시민들 의견수렴 하라는 조건부 승인조건을 이행하셨나요? 이러니 제게서 엉터리 도시계획이라고 면전에서 비판 받는 겁니다.
공론화 필요성 공감하더니 들리는 이상한 움직임, 그리고 문제적 사고와 발언들
작년부터 이런 맥락에서의 시민 공론화의 중요성을 제기했다. 그때마다 ‘그렇잖아도 우리도 행정에 시민들의 의견수렴이 중요하며 생략해서는 안된다고 강조 하고 있다’는 식의 공감을 표하며 의견을 보태는 시민사회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다행이며 안도 해도 되겠거니...' 했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이런 일을 하는 단체나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출처가 불분명한 내용으로 답변을 유도하는 형태의 설문조사와 같은 것들이 의견수렴 형태로 진행되는 과정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더니 이상한 기운이 확인되고 점점 물음표가 늘어가기 시작한다.
가장 놀라운 이야기는 이 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으로부터 들은 아래와 같은 표현이다. BRT공론화 관련한 대목중 다음과 같은 표현이다. “특히 찬반에 관한 사항 등에 있어서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방식의 공론화는 애초부터 고려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놀랍고 충격적인 이야기다. 우리 사회가 변화와 혁신을 위한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 의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경우 제대로 토론되지 않고 휩쓸려 사그라들고 말았던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이런 경험의 누적에서 비롯된 트라우마가 담긴 표현이나 생각이 아닐까 싶다. 그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헤어진 후 시간이 지나간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몇 가지가 밑으로부터 치밀고 올라와 던지는 물음표가 확인된다.
아마도 이야기를 한 사람만의 생각과 의식 흐름은 아닌 것 같고 꽤 많은 사람들,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심정적으로 그런 사고 경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판단과 권한을 누가 그들에게 부여하였단 말인가? 그게 시장이나 어떤 직위의 사람이어도 문제가 될 텐데 거버넌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단 말인가? 대체 그럼 시민들에게 허용되는 의견개진은 어디까지로 한정될 수 있단 말인가? 저런 판단은 누구랑 같이 할 수 있는 거지?
그럴수록 해야 하는건 깊은 인내와 믿음을 견지 해야할 것은 '도시계획의 주인은 시민'이라는 믿음 뿐이 아닌가 싶다. 이런 지난한 과정속에서의 요원하지만 합의된 진전이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공부해온 성공한 변화와 혁신의 공통점들이다. 지난번에 이어 이 글을 쓴 이유이다. 나는 근래 우리 도시가 나아갈 길에 대한 기술적 방향에 대한 토론을 할 때가 아니라고 회의하기 시작했다. 대신에 변화와 혁신에서의 원동력을 어디에서 찾고 시민의 역할과 거버넌스가 구축해야 할 철학과 가치에 대한 점검이 먼저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이 이글의 출발점임을 말미에서 강조하며 대안과 제시할 길을 이야기할 다음 편으로 이어가겠다.
기고문 중 인용한 발언에 관한 부연....
“특히 찬반에 관한 사항 등에 있어서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방식의 공론화는 애초부터 고려하지 않았어요”라는 발언은 거버넌스에 관한 연재형태의 기고문을 쓰게 만든 직접적 동기에 해당한다. 거버넌스와 시민공론화 등에 관한 중요한 실마리가 담겨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취재를 통한 공론화과정 전반을 다룬 취재 기사가 아니고, 현재 진행되는 일련의 행동패턴에 (인용한)발언과 부합하는 형태로 보여지기에 부연 설명이 필요없다고 여기지만 인용한 발언 당사자의 의견을 받아 이 부분을 기사에 첨부한다.
박스를 제외한채 작성된 기고문 전문을 읽고서 '(제가 설명하는 부분이 담기지 않고)기고가 나가면 BRT 사업에서는 시민의견을 안듣는다는거로 오해가 (생길것) 같아요. 정확한 사실은 찬반을 투표하는 방식의 공론화가 아닌 BRT의 효과와 추진 방식, 필요성을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구체적 추진 방식의 의견을 수렴하는 형태의 공론화를 진행한다는 것이 현재 추진중인 방식이라고 보면 될것 같습니다'(문맥상 일부 자구를 수정하였음)라는 요지의 의견을 보내왔고 이 부분을 덧붙여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김길중(시민·자전거 전문가)
※해당 글은 '외부 기고'이기 때문에 <전북의소리> 보도 내용 및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