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만 보고 있어도 모든 것이 통하는 사람
신정일의 '길 위에서'
인생이란 길을 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만나는 사람들 속에 우정으로 맺은 인연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인연이라 할 것이다.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모든 것이 통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평생에 몇 사람 만난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일 것이다. 그런 만남으로 살았던 사람들을 역사 속에서 만날 수 있는데, 박지원과 동시대를 살았던 박제가와 이덕무가 그런 인연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다.
“재선은 사람을 대할 적마다 말을 잘못하였으나 나를 대해서만은 말을 잘했고, 나 역시 남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재선의 말을 들으면 이해가 잘 되니, 재선이 내게 말하려 하지 않으려 한들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때론 퇴락한 집에 바람이 스며들고 비가 새어도 고요하게 서로 대하여 여러 가지 책을 펴놓고 등잔을 가운데 두고 정을 다하여 숨김없이 이야기 하곤 하였다.
천지의 왕복과 생사의 승제, 고금의 흥패와 시문의 운치에 대해여도 논하여, 격동되면 서로 슬퍼하고 살펴보고 서로 기뻐하였다. 그런 다음 아무 말 없이 서로 쳐다보고 웃으니 무슨 까닭인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재선의 재예는 따라갈 수 있지만 재선의 욕심이 적은 것은 따라갈 수가 없다. 그래서 그의 시는 담박하고 소쇄하기가 그의 인격과 같았다.”
이덕무의 <아정유고> 중 ‘초정시고: 서(楚亭詩稿: 序)‘에 실린 글이다. 가난하고 쓸쓸했던 시절 오히려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는 법인지, 먹고 살만 해질수록 좋은 친구들을 찾기 어려운지, 선인들의 견해가 여러 가지로 나뉜다.
스피노자는 ‘우정’과 ‘진리’를 가장 중요하게 보았는데, 세익스피어는 '우정'을 신뢰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우정은 대부분 겉치레이고 사랑의 대부분은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역시 '진정한 우정'을 믿지 않았음인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친구를 찾아 헤매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 이유는 충실한 친구는 오직 그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친구를 찾아 헤매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도 충실한 친구가 될 수 없다.“
그 어떤 친구보다 자신이 자신의 가장 좋은 친구라는 말로 읽힌다. 나를 친구로 여길 때 진정한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말이다. 라퐁텐 역시 진정한 우정을 믿지 않았다.
“서로 친구라고 표현하더라도 그것을 믿는 자는 어리석다. 세상에서 흔한 것이 없지만 그 이름에 걸 맞는 우정은 드물기 때문이다.“
이 삭막하고 어둡기만 한 세상을 살면서 생각만 해도 그리운 친구가 있다는 것을 얼마나 가슴이 따뜻해지는 일인가? 하지만 진정한 친구를 만날 수가 없는 풍토, 그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친구들을 만나고 사는가?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