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아가기 '고양이와 할아버지'

김명주의 영화속으로

2021-11-14     김명주 시민기자
영화 '고양이와 할아버지' 안내 포스터

랜선 집사 아주 '미추어버리게 쒕'

코로나사태로 인해 극장 관람객이 급격히 줄어들다 보니, 상영작도 적을 뿐더러 그나마도 재개봉이 거의 반이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발견한 요 녀석! ‘고양이와 할아버지’라니요. 제목부터 ‘나를 보지 않고 지나갈 건가, 집사 양반.’ 이런 느낌이라 ‘아이고 냥선생님, 아무렴요. 제가 그럴 리가요.’하며 굽실굽실 예매를 했더랬다.

랜선 OO이라는 단어들이 꽤나 유행했다. 그 중에서 랜선 집사라 함은 인터넷을 통해 타인이 키우는 고양이의 사진, 동영상 등을 즐겨 보며 심리적 위안을 받고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을 뜻한다.

동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키울 수 없는 사람들이 많기에 인터넷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반려동물 문화를 즐기는 것이다. 나는 소위 집사로서의 식견(?)이 풍부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깨 너머로 눈팅은 거의 매일 하고 있다. 실제로 반려동물을 키우든 키우지 않든, 냥선생님을 사랑하는 집사라면 이 영화를 보며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고양이와 할아버지' 스틸 컷

보는 내내 속으로 꺄~(극장에 나 혼자밖에 없었는데도 차마 소리는 내지 못하고 손만 버둥거렸다는 것은 안비밀-_-;;;)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마음이 소란스러웠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가 고양이의 사랑스러움을 5조 5억 배 담아낸 것은 전적으로 이와고 미츠아키 감독 덕분일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여러 동물, 그 중에서도 특히 길고양이를 전문적으로 찍어온 사진작가가 메가폰을 잡았기에, 어떻게 고양이의 저런 순간을 잡아냈을까 싶은 놀라운 장면들을 영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품하는 모습, 눈을 감고 바람을 맞는 모습, 날렵하게 점프하는 모습, 좁은 길을 사뿐사뿐 우아하게 걷는 모습, 야생화 사이에서 뛰노는 모습. 동료와 교감을 나누는 모습. 장면 하나하나가 감격스러웠다. 특히나 털과 수염이 손에 잡힐 듯이 근접 촬영이 들어갔을 때는, 정말 이것이 냥선생님의 미친 미모로구나!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식빵 자세로 일광욕하는 기분이야

파도가 잔잔히 부서지는 한적한 섬마을. 몇 년 전, 평생을 함께 한 아내와 사별한 후 홀로 남은 다이키치 할아버지는 가슴을 누르는 기분 좋은 무게감과 함께 아침을 맞이한다. 그 묵직함의 정체는 다름 아닌 고양이 ‘타마’. 사람 나이로 치면 40대인 6살 고양이 타마는 자신이 오히려 다이키치 할아버지를 돌봐주고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내가 움직여야 저 집사가 집 밖으로 나와 산책이라도 한 번 더 하지, 에효=3’ 이런 느낌이랄까.(초반에 자기소개를 하는 타마의 목소리가 나와서, 계속 이렇게 고양이의 시선과 말투로 전개될까 했지만, 그것은 앞부분뿐이었다. 그대로 진행되었다면, 지금보다 더 만화 같았을 수도.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떠오르기도 하고.)

섬은 북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정체되어 있지도 않다. 늘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두 할머니, 고양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며 자신을 졸졸 따라오는 고양이들을 멀리하면서도 시크하게 생선을 챙겨주는 츤데레 할아버지, 고양이와 친해지고 싶어 다가가지만 매번 고양이에게 가차없이 거부당하는 젊은 우체부 청년, 생선 눈알을 유독 무서워하지만 섬마을 어르신들의 건강을 누구보다도 잘 챙기는 신참 의사 등 고양이만큼이나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그리고 고양이들은 이 섬의 주민으로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고양이와 할아버지' 스킬 컷

그러던 어느 날 조용한 마을에 카페가 들어서게 되고, 섬도 예전보다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다이키치 할아버지는 죽은 아내가 남긴 미완성 레시피 노트를 발견하고, 이웃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며 그 뒷장을 채워나가게 된다.

신기하게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먹고 싶게 만드는 영화였다. 비린내와 물컹거림을 잘 견디지 못해 생선이나 날 것 종류는 잘 먹지 못하는데, 다이키치 할아버지가 직접 정갈하게 차려 먹는 음식들을 보니 왜 이렇게 회가 먹고 싶어지는지. 별 일이로세. 물론 내가 원래 좋아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완두콩밥, 유부초밥, 된장국 등은 영화관을 나오자마자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에 바로 기록했지만 말이다.

여기서 잠깐, 원작만화 앞부분을 내가 봤었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은 영화 중반부쯤에서였다. ‘뭔가 익숙한데.’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고양이와 힐링’이라는 소재 때문이려니 했었는데, 원작을 봤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니! 코믹에세이 원작을 볼 때도 그림체나 글 모두 참 소담하고 포근하다는 느낌을 가득 받았는데, 영화를 볼 때 또한 고양이 식빵 자세만큼이나 따스하고 노글노글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화면과 분위기와는 별개로 전개가 뚝뚝 끊어지는 면은 있었다. 전반적으로 흐름이 완만하지 못한 듯한 느낌을 꽤 자주 느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선사하는 따뜻한 메시지는 그런 부족함을 모두 감싸 안는다.

같이의 '가치'

할아버지, 할머니, 고양이들만 가득한 외딴 섬마을에 온 미치코는 곧장 카페를 연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건물을 짓는 동안 내내 궁금해 했으면서도, 막상 완공된 건물이 카페라는 것을 안 후에는 “늙은이가 어울리지 않게.”, “우리가 가면 분위기만 흐려.”라며 안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한다.

그 때 미치코는 활짝 웃으며 어르신들께 환영인사를 건네고, 그렇게 카페는 섬에서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된다. 이는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겠지만, 도시의 삶에 지친 미치코에게도 휴식을 선물한다.

섬의 이벤트로 학교 강당에서 낭만댄스홀을 연 날 밤, 섬의 의사인 와카무라와 카페 주인인 미치코가 나눈 대화는 유독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것은 나와 비슷한 또래인 그들이 내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나는 왜 살아가는가?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 어떤 것이 진정한 삶인가?

“전 이 곳에서 진짜 내가 바라던 의사로서 지내요.”

“(예전에 지내던 곳에서)피폐해졌어요. 이 섬에 와서 간신히 되살아났죠.”

'고양이와 할아버지' 스틸 컷

함께, 같이, 더불어 살아가기...

고양이를 소재로 한 따뜻한 힐링 영화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마냥 귀엽고 아기자기한 것만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는 ‘함께, 같이, 더불어, 살아가기’라고 생각한다. 한 마리와 한 사람이, 한 사람과 또 다른 한 사람이,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부대끼며 우리가 되어 일상을 나누는 것.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로 상대를 떠나보내기도 하지만, 그 따뜻한 공동체가 있기에 노화, 질병, 죽음을 그저 홀로 두렵게 맞이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벚꽃이 휘날리는 길을 타마와 함께 거닐며 다이키치 할아버지가 건네는 말은 흔하지만 따뜻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그렇지, 타마?” 

/김명주 영화 평론가(<사람과언론> 제9호 게재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