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무기한 방송 중단, 사실상 폐지...KBS, '우파 중심 조직 장악' 착실히 시행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
[이영광 기자, 온몸으로 묻는다] 조애진 언론노조 KBS 부본부장
최근 KBS의 장수 프로그램 중 하나인 <역사저널 그날>이 개편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역사저널 그날>은 재정비를 위해 종영했고 5월에 재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방송을 앞두고 제작진과 상의 없이 MC가 교체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제작진이 항의하자 제작진의 해체를 지시했다. 어떻게 된 상황일까?
<역사저널 그날> 논란 등 KBS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들어 보고자 30대로 시사교양 PD 출신인 조애진 언론노조 KBS 부본부장을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의 조합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조 부본부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한 달에 300~400시간씩 일하는 생활, 안 쉬고 10년차 될 때까지 버틴 이유는...”
- 언론노조 KBS 본부 수석 부본부장으로 선출되어 2개월이 지났는데 업무 파악은 어느 정도 하셨어요?
“저희가 4월부터 단체 협약 실무 협상을 진행 중이라서 그것 때문에 바빴어요. 처음에 법무팀 온 줄 알았어요. 단체 협상 외에도 노동조합에 대한 기본적인 법률 지식이 필요하고 부당노동 행위라든지 여러 사안에 대응할 때마다 다 법적 검토가 필요한 일들이 많아서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될 게 많았어요. 저희 시사교양 PD 원래 업무가 전혀 모르던 일을 급하게 많이 공부해서 숙지하고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보니까 제작하듯이 공부하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박상현 본부장이 수석 부본부장 제안한 거로 알거든요. 처음 제안 들었을 때 어땠어요?
“사실 제안을 본부장이 직접 하신 건 아니고 부본부장 후보 찾고 계셨어요. 또 시사 교양 구역 PD들도 우리 중에서 집행부로 한 명 정도 보내자는 생각들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저희 쪽에 워낙 탄압이 심하니까 이 싸움을 좀 이끌어갈 사람 그다음에 시사교양 구역에 벌어지는 여러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해 나갈 사람이 집행부로 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 해서 부본부장 시킬 사람을 제가 중앙위원이었으니까 열심히 찾았죠. 결국 열심히 찾던 사람이 하게 됐어요.”
- 그러면 처음에 아예 생각이 없었나요?
“사실 PD들이 대부분 성격이 비슷한데 다들 내성적인 성격들이에요. 저도 누구 앞에 나서서 하는 게 기질에 맞는 사람은 아니에요. 사실 제가 제작 10년차 거든요. 그러면 한창 열심히 자기 프로그램할 수 있을 연차예요. 그래서 저희 구역 총회에서 제가 본부장 후보로 나가겠다고 PD들 앞에서 얘기하면서 엄청 울었어요.”
- 10년 차면 한창 일할 때인데 내려놔야니까 아쉽겠네요?
“맞아요. 제작을 2년 동안 못 하잖아요. 그 생각을 하니까 이게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이 들었죠. 사실 한 5~6년 차부터 제가 번아웃이 심하게 왔어요. 왜냐면 한 달에 한 300~400시간씩 일하는 생활을 안 쉬고 9년 한다고 생각 해보세요. 이게 엄청 지치거든요. 근데 제가 10년 차 될 때까지 버텼어요. PD가 자기 기술과 조연출 경력 쌓고 한 10년쯤 버티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내가 쌓아온 실력을 가지고 내 프로그램 할 수 있는 때거든요. 그래서 열심히 버텼어요. 제가 2~3년 차 때 파업을 8개월이나 했잖아요. 월급 한 푼도 못 받았거든요. 근데 이런 일이 너무 금방 돌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후배들은 이런 일을 좀 덜 겪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오게 됐죠.”
“<역사저널 그날> 평PD들이 프로그램 사유화했다고 성명서 쓰고 그다음 날 제작본부장 잘려”
- 방송 노조 부본부장에 30대 여성은 거의 없었잖아요. 그래서 주목받을 것 같은데 부담스럽지 않나요?
“요즘 방송국에 여성 인력들이 많아요. 그래서 노동조합에도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너무 늦게 여성 노조 간부가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은 들고요. 특별히 여자라고 주목하는 것 같지 않아요.”
- 2015년에 KBS에 입사했잖아요. 그땐 박근혜 정부 중반이었고 방송 탄압이 심할 때죠. 그리고 지금 윤석열 정부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때요? 2015년쯤은 입사 초기였고 지금은 노조 수석 본부장이라서 시각이 다를 것 같은데.
“그렇죠. 상황은 지금이 역대 최악인 것 같고요. 제가 입사했을 때는 박근혜 정부 중 후반기였죠. 그때는 방송 내용이나 출연자 같은 분야들을 보수 정권이 원하는 경영진이 원하는 사람으로 앉히려는 식의 방송 장악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것만 하는 게 아니라 공영방송의 재원 건드려서 공영방송 시스템 자체를 없애려 하고 있거든요. 그러면서 공영방송에 대한 혐오감을 심지어 전국민적으로 조장하고 있고 이런 극단화되고 혐오 발언이 굉장히 만연해진 한국 사회가 현재 공영방송 장악의 방식 과정에도 투영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 지금 KBS에서 가장 뜨거운 문제 중 하나는 <역사저널 그날> 논란인 것 같아요. 2월 갑작스럽게 종영했고 3개월 만에 재개하려고 했으나 낙하산 MC 논란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상황인가요?
“<역사저널 그날>은 2월부터 프로그램 재정비 중이었고요. 첫 녹화 5일 전에 제작진이 간부로부터 조수빈 씨를 앉히라는 말을 그때 처음 들었다는 게 이 사건의 핵심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의 핵심은 왜 기존 섭외했던 유명 배우 쓰면 안 되고, 조수빈 씨 써야 하냐는 것이죠. 이것도 핵심인데 사측은 여기에는 답하지 않고 제작진 해산까지 지시한 상황입니다.”
- 2월에 끝날 때는 문제가 없었나요?
“그때도 문제가 있었어요. 그때 프로그램 개편하자는 이야기가 국 차원에서 나와서 프로그램 개편 준비하는 회의 하고 있었어요. 개편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의견의 차이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근데 간부와 평 PD들 회의 자리에서 서로 의견이 불일치했던 건을 가지고 갑자기 사내 게시판에 보수언론단체인 언론인총연합회 소속으로 사내 어떤 분이 ‘<역사저널 그날>의 평PD들이 프로그램을 사유화했다’고 성명서 쓰고 그다음 날 제작본부장이 잘렸어요. 그리고 지금 이제원 본부장이 와요.”
- 지금 문제는 MC를 일방적으로 바꾼 건가요?
“첫 녹화 5일 전에 갑자기 유명 배우로 정해져 있었던 MC가 아니라 조수빈이라는 거의 정당인이나 다름없는 분으로 앉히라는 이야기를 그때 처음 국장으로부터 제작진이 듣게 됩니다.”
- 바꾼 이유는 뭐라고 했나요?
“제작본부장이 뭐라고 하냐면 조수빈 씨가 지적이고 단아한 이미지고 아나운서 출신이니까 진행을 좀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 그런데 제작진과 상의해서 하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하면 안 되지 않나요?
“맞습니다. 방송법에도 방송 편성 책임자와 사장은 명확하게 구별해서 방송 편성 책임자가 자율권 가지고서 편성 하도록 되어 있고요. 일반적으로 KBS의 편성 규약에서도 방송 제작자들이 자율성 가지고 프로그램 만들고 사측이 여러 결정할 때 제작진과 충분히 소통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어요. 그게 법이고 상식이고 관례입니다. 민주적 제작 방식 보장하지 않으면, 힘 있는 사람 뜻대로 방송을 좌우하는 것이 너무 쉬워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제원 제작본부장은 본인이 최종 결재권자이니 본인 맘대로 하는 것이 다 합리화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러는 의도를 뭐라고 보세요?
“얼마 전에 PD협회 간부들이 들어가서 제작본부장하고 면담했었어요. 그 자리에서 누가 처음 조수빈 씨를 제안했냐고 질문을 하니까 이제원 제작본부장은 거기에 대해 임원들끼리 하는 차담회, 즉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처음 나왔다고 해요. 즉 다른 임원이 처음 이야기했다고 말했어요. 저희는 그 임원이 밖에서 받아온 오더라고 생각합니다. 유력한 권력자의 오더로 인해 벌어진 MC 사건이 아니라면 뭐 하러 제작진 해체까지 지시합니까? 조수빈 씨가 안 한다고 했거든요. 만약에 단아한 아나운서를 앉히고 싶은 거였다면 다른 아나운서를 앉히려고 다음 수순을 밟아야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런 게 아니라 제작진 해산을 지시했어요. 이건 의도가 있었던 거죠. ”
“무기한 방송 중단 결정 내렸으니 사실상 폐지나 마찬가지”
- 지금 프로그램은 폐지된 건가요?
“계속 만든다고는 말합니다. 어쨌든 사측이 기약 없는 무기한 방송 중단 결정을 내렸으니, 사실상 폐지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 아침 시사 방송인 <전격시사> MC로 극우에 가까운 시사 평론가 고성국 씨가 맞았는데 이건 어떻게 보세요?
“고성국 씨는 공영방송을 벼랑 끝으로 몰아서 정권이 방송 장악하는 데 일조한 사람이에요. 자기 채널에 그 사람이 올린 제목 영상을 보면 수신료 분리 징수, 국민 96%가 찬성한다고 거짓 선동을 해온 사람이에요. 국민제안 홈페이지 안에 있는 국민 참여 토론 게시판에는 다 중복으로 의견 낼 수 있어요. 이건 거기 관계자들도 여러 번 인정을 한 일이에요. 이걸 마치 한국갤럽 같은 데서 하는 공식 설문조사 결과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 명백하게 거짓말한 거고요. 팩트 체크 하지 않거나 그럴 수준도 안 되는 자를 공영방송 채널에 MC로 앉히는 것 자체가 제일 큰 문제죠.”
- 의도가 있을까요?
“당연히 있겠죠. 저희 대외비 문건 공개했었잖아요. 거기 보면 우파 중심으로 조직을 장악한다고 나와요, 그 말을 저는 착실히 시행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간부들을 우파로 앉힌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그 문건 보면 이런 식으로 친일 인명사전에 이름 올렸던 백선엽 장군 기념사업회 이사 하던 조수빈 씨를 역사 프로그램에 MC로 앉히려고 하고 고성국 씨는 지난 총선 때 국민의힘 후보들 찾아다니면서 응원하는 유튜브 찍은 사람이에요. 거의 정당인에 가까운 사람들을 진행자로 기용하는 것이 낙하산 사장이 들어올 때 갖다 바친 대외비 문건이잖아요. 그 지시대로 그냥 착착 실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라디오 PD들은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나요?
“일단 지금 시사 프로그램을 이 프로그램이 원래는 라디오국 소속이었는데 낙하산 사장이 들어오고 나서 이 시사 프로그램을 보도국으로 보내버렸어요. 그래서 지금은 라디오국 PD들 소관이 아니라 시사제작국 소관이에요.”
- 그게 가능한가요? 라디오 프로그램이잖아요.
“PD가 있긴 있는데 퇴직자 중에서 재고용한 분이 아마 전체적으로 오퍼레이팅만 하시는 것 같아요. 10년 전에 저희 <추적 60분>도 보도국으로 보내버렸었어요. PD들이 말 안 듣고 자꾸 항의한다고 저희를 싹 다 보도국 밑에 보도국 간부 밑에서 데스크를 받도록 한 적이 있어요. 그렇게 한참 3년 가까이 선배들이 모욕을 감수하셨었죠.”
“KBS를 공중분해시키고 우파 중심으로 기용한다는 문건 작성한 사람들 끝까지 찾아 밝혀낼 것”
- 지난 3월 31일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가 보도한 KBS 대외비 문건에 대해 KBS는 17일 MBC 및 <스트레이트> 제작진을 상대로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는데 이건 어떻게 보세요?
“그 문건을 보면 KBS를 공중분해시킨다는 표현이 있어요. 그리고 공영방송을 우파 중심으로 기용하고 장악한다고요? 이건 문건 작성한 사람을 찾아서 징계해야 하는 건이에요. 공사의 명예를 땅바닥에 패대기친 문건이잖아요. 근데 이걸 공적 목적으로 보도한 방송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걸어요? 입만 열면 공정, 기계적 균형 외치더니 뻔뻔하게 우파 중심 기용 이런 문건이 지금 사장 후보자한테 보내는 문건이라고 만들어져 있었다고 하는거 아닙니까. 그것이 내부에서 주도를 해서 만들었건 외부에서 만들었건 어쨌든 그 내용이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이건 내부에서 도와주지 않고는 그렇게 쓸 수가 없어요. 그만큼 자세한 정보가 있거든요.”
- 사측 말은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거잖아요.
“절대 실체 불분명하지 않고요. 저희는 간부들 사이에 유통됐다는 정황을 확인했습니다. 이거는 내부에서 분명하게 돌아다닌 문건이고 실체가 있는 문건입니다.”
- 어디에서 온 걸까요?
“그걸 밝혀내야죠. 이걸 주도해서 쓴 사람이 누구고 이 문건의 총책임자가 누군지 저희가 끝까지 밝혀낼 거고 언론 장악 국정조사 같은 것들이 앞으로 있을 예정인데 그럴 때도 반드시 대외비 문건 진상 파악도 포함해서 진행할 수 있도록 저희가 목소리 내려고 합니다.”
- KBS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수신료 분리 징수 문제죠. 이 문제는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수신료 분리 징수는 분명히 초법적인 행위를 한 것입니다. 방송법 개정하고 국민의 총의를 모아서 차근차근 이 법적 절차 밟아서 수신료 재원 구조에 대한 문제는 논의되고 바뀌어야 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것을 단순하게 시행령 하나만 뜯어고쳐서 한전이 같이 징수할 수 없도록 하는 꼼수 써서 KBS가 수신료를 걷지 못하도록 하는 식의 방송 장악은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가 없었던 일 같고 저희는 총력 대응할 것입니다.”
/이영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