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브로커 만능주의’

토요 시론

2024-05-11     박주현 기자

‘다른 사람의 의뢰를 받아 그를 대신하여 상행위를 하고 쌍방으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사람’을 흔히 브로커(broker)로 지칭한다. 좋은 의미로 해석하면 ‘중개인’이나 ‘거간꾼’에 가깝다. 증권이나 보험시장에서 주식과 보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의 매매를 대신 맡아서 하는 중개인 성격의 브로커들이 흔하디 흔한 요즘 세상이다.

금융 실명제가 시작될 무렵부터 가명 계좌의 실명 전환을 전문으로 해주는 브로커들이 난립하기도 했다. 이러한 브로커들이 특정 상품을 원하지만 판매자를 모르는 구매자들이나 특정 상품을 제공할 수 있지만 구매자 정보를 모르는 판매자들 사이에 주로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실체 잘 드러나지 않은 검은 브로커 조직...외국인들 이용 농촌지역까지 ‘활개’

                      이미지(자료사진)

이를테면 인력 파견이나 인력을 소개해 주는 브로커들, 스포츠 경기에서 상호 경기를 조율해 주는 브로커들, 의사나 변호사 심지어 해결사 등을 연결해 주는 브로커들, 금융·부동산·중고시장 등 경제 관련 분야를 연결해 주는 브로커들이 그동안 알려져 왔던 브로커들의 유형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브로커가 ‘범죄 조직과 수요자를 중개해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사람’으로 변질돼 가고 있음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병역 브로커, 승부 조작 브로커, 장기 밀매 브로커, 정치 브로커 등은 비밀리에 조직하여 암약하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뇌물죄, 알선수재죄, 변호사법(제111조) 위반죄 등으로 사법처리 되는 과정에서 그 검은 암약 실체가 드러날 뿐이다. 

최근 전북지역에서는 외국인을 이용한 ‘계절 노동자 브로커'들이 활개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들은 외국인 수십명씩을 보내준다는 신종 브로커들이다. 아무 이주자나 보증을 서면 전국 어느 곳이든 상관없이 인력을 보내준다는 내용에 일손이 급한 농가 입장에서는 눈에 번쩍 뜨이기 쉽다. 이처럼 농촌지역도 브로커들의 먹거리가 되고 있으니 그야말로 ‘브로커들이 판치는 세상’이라고 해도 과한 표현이 아닐 듯싶다.

이에 앞서 전북지역에서는 지난 2022년 지방선거 과정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선거 브로커들이 극성을 부려 전국 언론들의 조명을 받은 적이 있다. 세간에 알려지고 경찰과 검찰의 장기적인 수사가 이뤄지면서 브로커란 이미지가 더욱 불순하고 불온한 이미지로 각인된 계기가 됐지만 쉽게 여길 사건은 아니다. 점점 조직화되고 범죄 연루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부정적 뉘앙스가 강한 이미지를 구축한 선거 브로커는 수법이 다양하고 점점 수준이 고도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선거철 브로커들, 정보·돈 제공하고 인사·공사·인허가권 등 대가 요구...여론조작 개입도

전북지역 27개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전북 불법선거 브로커 척결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 일동'은 2022년 5월 23일 오전 11시 전북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 브로커 철저 수사'와 '몸통 수사'를 촉구했다.

브로커들이 각 선거 캠프를 돌아다니며 유권자 정보와 여론 지지에 목말라하는 후보자들에게 접근해 필요한 정보와 돈을 제공하며 대가를 요구하는 거래 행위는 허다하다. 그들이 요구하는 대가는 주로 당선 이후 인사권과 공사권 외에 각종 인허가권 등이다. 심지어 선거 브로커들은 여론조작에도 개입한다. 주소를 변경한 유권자가 여론조사에서 약속된 특정 후보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조작하다 지난 지방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대표적 사례다.

특히 농촌지역에 살지 않는데도 휴대전화 요금 청구지 주소만 바꿔 당선 확률이 높은 당의 경선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오도록 하는 등의 조직적인 조작 행위가 드러나기도 했다. 이 같은 여론조작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 과정에서 전북지역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과연 그때 뿐이었을까? 당시 여론조사 응답자 가운데 주민등록상 주소와 요금 청구지 주소가 다른 번호가 하필 장수와 진안지역에서 대량 발견돼 수사를 벌인 것일 뿐 이 같은 사례는 얼마든지 다른 지역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해 주었다. 

문제는 선거 브로커들이 거래하는 행위가 행정과 주민들의 삶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거나 막대한 피해로 이어지기 때문에 위험천만하다. 지난 6·1 지방선거 당시 실체가 드러났던 전주시장 선거 브로커 개입 사건의 경우만 봐도 당선이 유력한 특정당 예비후보들에게 접근해 금품과 공천 관련 정보 등의 제공을 약속하고 이를 대가로 행정의 인사권과 각종 인허가권, 공사권 등을 요구한 것으로 수사결과 드러났다. 만약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그대로 선거가 진행됐더라면, 특히 해당 브로커들과 거래했던 후보가 당선됐더라면 행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안 봐도 뻔하다. 불공정하고 비상식적인 행위들이 공직사회 전반을 뒤흔들었을 것이고, 그로 인한 피해는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됐을 것이다. 그렇다고 선거 기간에 드러나지 않았거나 사건화되지 않았을 뿐, 유사 사례들이 현실에 내재 돼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란 점도 지난 선거 브로커 사건이 던져준 교훈이기도 하다. 

특히 선거 브로커들은 특정 지역, 특정 기간에만 존재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지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언론인, 정당인, 시민단체 대표 등으로 구성된 선거 브로커들의 거래 행위가 암묵적으로 횡행하고 있음을 암시해 준 지난 전주시장 선거 개입 브로커 사건은 단순한 사건으로 보아 넘기기에는 사안이 엄중하고 심각하다는 얘기다.

신종 ‘태양광 브로커’ 활개...청탁 대가, 금품 챙기다 ‘덜미’

그런데 또 다른 브로커들이 최근 전북지역에서 활개치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태양광 브로커’들이다. 신종 태양광 브로커들이 새만금사업장 주변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하니 듣기만 해도 거북하고 부끄럽다. 가뜩이나 30년 이상 ‘정치사업’이란 오명을 떼어내지 못하는 새만금사업에 브로커들까지 활개치는 형국인 걸 보면 ‘만금의 꿈’은 더욱 요원함을 느끼게 한다.

최근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청탁을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는 브로커가 구속돼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구속된 브로커는 군산시의 '새만금 2구역 육상태양광 발전사업'에 참여하게 해주는 대가로 전기공사업체 대표에게 2019년 11월부터 2021년 1월까지 무려 8차례에 걸쳐 6,25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브로커가 업체 측에 군산시장과 군산시 관계자들을 상대로 사업 수주 청탁을 해주겠다며 대가를 요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군산시의 옥구읍 어은리 태양광 발전사업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며 지인과 해당 업체로부터 5,0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해당 브로커는 첫 재판에서 혐의를 일부 인정했지만 이 브로커도 전형적인 '알선수재죄' 혐의를 받고 있다. 쉽게 말해 거래에 개입하고 대가를 노린 것이다. 그런데 브로커가 개입한 범위가 개인과 업체 간 거래뿐 아니라 군산시 등 공직사회를 넘나들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2020년 군산지역 공무원을 비롯한 정·관계 인사들에게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관련 청탁을 한 대가로 1억원 상당을 받아 알선수재 혐의로 지난 4월 구속된 군산시민발전주식회사 서지만 대표가 지역 국회의원인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청탁성 보고를 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검찰이 강제수사에 나서 지역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그동안 서 전 대표는 새만금솔라파워 사업단장으로부터 현역 국회의원 등 정·관계 로비 대가로 1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아왔다. 그런데 문제는 해당 사업단장이 한국수력원자력과 현대글로벌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새만금솔라파워에서 사업단장으로 일할 당시 시민단체의 환경오염 민원 등으로 수상태양광사업이 지체되자 이 같은 청탁을 한 것이어서 충격적이다.

새만금에 끌어들인 거대 외지 공룡기업...군산시 등과 연계 ‘복마전’

새만금 태양광사업장 전경

새만금 태양광사업 특혜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다 실종됐던 전북지역 한 건설사 대표가 실종 13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된 사건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새만금 수상태양광 발전사업은 새만금 내 1.07㎢ 부지에 100㎿급 수상태양광 발전소를 짓는 사업으로 총 사업비만 4조 6,200억원에 달하는 역대 수상태양광 프로젝트 중 최대 규모다. 여의도의 약 10배에 달하는 면적에 발전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지만 각종 이권 개입 등으로 수사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그럴만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브로커들의 개입이 불공정하고 불투명한 방법으로 사업의 물꼬를 연결시킨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사건에서 드러나고 있는 그 물꼬의 공통 지점은 바로 군산시와 군산시장을 연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도가 더욱 높다. 새만금 태양광 브로커 사건을 자세히 복기해 보면, 지난해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감사원이 신재생에너지사업 추진 실태 감사에서 "새만금 육상태양광 우선 협상 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강임준 군산시장이 고교 동문 등이 운영하는 특정 업체에 혜택을 줬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발단이 됐다. 

감사원은 군산시가 연대보증 조건 등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도 이들 업체와 계약을 체결해 15년간 110억원의 이자 손해를 끼친 것으로 봤지만 수사결과 드러난 문제점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검찰 수사가 정·관·재계의 강제수사로 급물살을 타고 있는 군산시 태양광 비리 의혹 사건은 군산시 공무원 등과 접촉해 태양광사업 공사 수주를 주선하고 그 대가로 업체 등으로부터 돈을 챙긴 혐의(알선수재)로 브로커가 구속되면서부터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양태다. 

특히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새만금솔라파워 전 사업단장이 구속 기소됐다는 것은 이번 사건이 보통 규모의 브로커 사건이 아니란 점을 의미한다. 그동안 전북자치도와 새만금개발청이 주력해 온 새만금사업과도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새만금솔라파워는 한국수력원자력이 현대글로벌㈜과 만든 대규모 특수목적법인(SPC)이다. 새만금사업을 이유로 끌어들여 살찌우게 한 외지 대형업체의 대표적 표상이란 점에서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북 비상’ 가로막는 ‘브로커 만능주의’

거대한 외지 공룡기업의 사업단장이란 사람이 무엇이 아쉬워서 2019년 5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용역업체를 통해 새만금 수상태양광사업 관련 설계·인허가 용역 대금을 부풀려 지급한 뒤 현금으로 돌려받는 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2억 5,000여만원을 유용했을까? 자그마치 4조 6,000억원 규모 새만금 수상태양광 발전사업은 2025년까지 새만금호 전체 면적 약 7%인 28㎢에 2100㎿급 수상태양광 단지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알선수재 혐의로 현 군산시장 측근인 군산시민발전주식회사 전 대표가 구속되면서 지역 국회의원 등 정·관계 로비 대가로 거액을 받은 혐의가 드러난 데 이어 태양광사업이 환경민원 등으로 터덕대자 브로커가 개입해 대가성 거래가 오간 정황까지 포착됐다.

이쯤 되면 브로커 만능주의가 지역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판에선 선거 브로커들이 날뛰고 있고, 수조원대의 새만금사업 지구에서는 태양광 브로커들이 날뛰고 있으니 '전북의 비상'을 가로 막는 것이 바로 불온한 '브로커 만능주의'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오호통재라!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