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놓고 간 먼지는 복을 불러온다”...‘모악산 꽃 할머니’ 책 이정지 작가의 소박한 ‘스토리두잉(storydoing)’

이정지 작가와의 만남

2024-04-27     박주현 기자
                    ‘모악산 꽃 할머니' 책을 펴낸 이정지 작가. 

“한동안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있었다면 이제는 스토리두잉(storydoing)이다. 직접 가보고 역할 수행에도 참여하는 것이다. ‘모악산 꽃 할머니’ 속에는 가족, 박물관, 모악산, 완주, 전주, 대한민국이 있다. 그곳으로 나도 스토리두잉하러 가야겠다.“

정겨운 그림과 살뜰한 제목 편집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모악산 꽃 할머니’ 책을 작가로부터 직접 받아 든 순간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문장의 글이다. 천진기 전 국립전주박물관장이 이 책을 읽고 쓴 소감을 책 맨 뒷장에 정성스럽게 소개해 놓았다.

이 책의 작가 이정지 씨와 처음 만난 건 지난 25일 오후, 백승종 역사가의 초청 강연이 있던 전주시 무지개 작은도서관에서였다.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들꽃을 찾아 다니는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손에 쥐고 있던 ‘모악산 꽃 할머니’란 책을 읽어보라며 초면임에도 선뜻 내밀었다. 

이에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작가는 ”오늘 초청 강연에 참석하는 누군가에게 전해줄 책을 두 권 가져왔는데 그 두 명 중 한 명에 당첨됐다“며 어색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그러면서 그는 ”이 책을 꼭 읽어보고 모악산 꽃 할머니와 같은 분들을 주변에서 한번 찾아 보라“고 권했다.

'모악산 꽃 할머니'(도서출판 청동) 책 표지.

엄마 낳아 준 할머니 생각나게 하는 책...그림과 함께 모악산 주변 서정적 묘사

누구나 한 번쯤은 엄마를 낳아 준 할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책이다. 작가의 섬세한 글과 이유정 화가의 따뜻한 그림으로 완성된 그림책 ‘모악산 꽃 할머니'(도서출판 청동)는 초등학생의 눈으로 살펴보는 우리 땅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묘사해 어릴적 보았던 동화책을 절로 연상시킨다.

완주군 경각과산과 모악산 사이에 있는 구이저수지 가장 자리에 있는 술테마박물관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주인공 할머니의 삶을 실화에 기초해 자전적으로 펴낸 이 그림 동화책은 '지역 이야기를 기반으로 세상의 약자를 통해서 균형 추를 맞추는 독서 치유용'이라고 작가는 소개한다. 모악산과 그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어디서든지 수처작주(隨處作主), 즉 ‘주인’이 되어 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모악산 꽃 할머니' 책 본문 일부.

아침 7시에 나가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와서도 쉬지 못하고 새벽까지 집안일을 하는 주인공 할머니는 자식과 남편, 부모님이 자신의 삶보다 늘 먼저였다. 남편을 암으로 보내고 난 뒤에는 아들과 딸의 안위만 걱정하는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용돈과 통닭을 사주고 싶어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한다. 새로운 것은 무엇이든 공부하고 요양보호사로, 공장에서, 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주인공 할머니, 자식에 대한 무한 사랑과 근면 성실함이 우리네 할머니의 모습과 꼭 닮았다.

”젊은 시절 영국, 미국, 말레이시아 등에서 살아본 경험 살려 소박한 글로 우리나라 보편 정서 세계에 알리고 싶어“

이정지 작가

우리나라 사람들 뿐만 아니라 미국, 독일, 일본, 영국, 중국, 호주, 인도, 러시아, 덴마크, 체코 등 많은 나라 사람들도 등장하는 이 책에서 작가는 ”사람들이 놓고 간 먼지는 복을 불러온다"고 표현하며 "그래서 할머니는 관광객들이 남기고 간 먼지나 쓰레기를 더욱 정성껏 청소한다“고 쓴 대목이 가히 압권이다.

이 그림 동화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어릴적 할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모악산과 구이저수지는 물론 술테마박물관도 꼭 한번 가고 싶어진다. 이 작가는 독서모임 ‘휴휴’와 독서프로그램으로 책 읽기의 즐거움을 알리며 마음을 보살피고 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영국, 미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 살아본 경험을 살려 우리나라의 보편 정서를 소박한 글로 세계에 알리고 싶은 꿈이 있다“는 작가는 그동안 시집으로 ‘휘어짐의 일상’, ‘흐르다가 멈춘 물방울 사이’가 있고 에세이집 ‘마흔아홉-백제녀 편지’, ‘My life in England’, 그림책 ‘지사랑이’, ‘바람의 끈’, ‘아롱다롱한 이불을 좋아하는 할머니’, ‘하늘 땅 사람이 어울려 고인, 돌’ 외에 아이들 시를 묶은 ‘꿈꾸는 아이’ 등의 책을 펴냈다.

또한 이 책의 그림을 그린 이유정 작가는 전북대학교 예술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했으며 고향의 따뜻한 마음을 담아내는 그림 작업을 하고 있다. ”나고 자란 지역 이야기가 보물을 찾아가는 놀이가 되길 희망한다“는 이 작가는 그림책 ‘지사랑이’, ‘하늘 땅 사람이 어울려 고인, 돌’을 그렸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