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자원공사, 전북도와 위기대응협약 열흘 만에 '돌변' 왜?

뉴스 분석 -2020년 8월 13일(목)

2020-08-13     박주현 기자

천재(天災)인가, 인재(人災)인가?

엄청난 양의 역대급 폭우로 인한 불가피한 피해였기 때문에 '천재'라는 주장과 섬진댐과 용담댐의 과다 방류량이 막대한 수해 피해를 가져온 '인재'라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지역언론과 지방의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권의 쟁점으로 원인과 책임에 대한 논란이 비화되고 있다. 이해관계가 엇갈린 문제여서 상당한 진통과 장기간의 책임공방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 지금도 4대강 사업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은 것처럼.

그러나 이러한 논란 뒤에는 당장 집과 논ㆍ밭, 가축을 모두 잃고 망연자실해 하고 있는 피해 농가 주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피해 주민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농촌을 지키며 농사로 생계를 이어온 서민들이다.

그들에게는 천재든 인재든, 논쟁과 공방보다는 당장 살길이 중요하다. 그런데 지원 대책이 없거나 빈약하여 막막하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따라서 책임의 소재를 신속하고 명확하게 규명해야 하는 것은 국가(정부)가 마땅히 나서서 해야 할 몫이다.

최근 익산의 장점마을 집단 암 발생 사건에서 보았듯이 책임규명에 관한 국가의 지체와 지연이 얼마나 많은 피해와 고통을 힘없는 서민들에게 안겨 주는지 우리는 똑똑히 목격했다.

익산 장점마을 집단 암발생, 책임규명 지체로 막대한 주민피해...잊었는가?

익산 장점마을 주민대책위원회의 지난 8월 11일 전북도청 앞 기자회견 모습

장점마을의 많은 주민들이 억울하게 죽고 지금도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지만 전북도와 익산시, KT&G 등은 책임 전가와 회피에 급급하고 있다. 이에 대한 잘잘못을 가려야 할 정부, 특히 감사원의 늑장 감사와 애매한 결과가 나오기까지 피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마을 주민들에게 전가됐듯이 이번 수해 피해의 책임 공방도 비슷한 상황으로 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래서다. 천재든 인재든 정부와 각 지자체들은  피해복구부터 조속히 해결하고, 진상규명을 통해 철저한 책임소재를 가려 제2, 3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 앞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막대한 피해는 충분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하며 천재 쪽에 기대는 쪽은 다름 아닌 한국수자원공사(이하 수자원공사)라는 점에서 석연치 않다.

섬진강 제방 붕괴와 침수 피해, 엄청난 양의 많은 물의 댐 방류로 침수 피해가 큰 용담댐과 섬진댐 방류의 중심에 서있는, 책임 있는 공기업 아니던가.

전북도와 재난사고 협력대응 협약 맺은 수자원공사, 열흘 만에 돌변?

전민일보 7월 30일 2면

수자원공사는 정부가 90% 이상의 지분을 투자하고 보유한 국영기업이다.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공기업이다. 더욱이 ‘수자원의 종합적 이용·개발을 위한 시설의 건설·운영관리, 광역상수도(공업용수도 포함) 시설의 건설·관리’ 등을 주 임무로 하고 있다.

공사의 경영전략도 ‘물안심 서비스, 물나눔 서비스, 물융합 서비스’로 서비스에 모든 전략이 맞추어져 있다.

특히 ‘기후변화에 체계적 대응전략을 마련하고, 재해 취약지역 중심으로 홍수, 가뭄 예방·대응지원 강화를 통해 국가의 물 재해를 획기적으로 저감’하는 동시에 ‘수요예측·관리를 강화하고, 수량 확보는 기존 시설(댐, 저수지 등)을 연계 활용 및 대체수자원 개발’ 등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더구나 지난 7월 29일 전북도는 “광역지자체 중 전국 처음으로 유관기관과 함께 수도 관련 재난, 사고 등에 신속 대응하는 통합 협력체계 구축에 나섰다”며 대대적으로 홍보를 실시한 바 있다.

송하진 도지사와 한국수자원공사 박재현 사장, 전북지방환경청 정복철 청장은 긴급재난, 사고 등으로 인한 지방상수도 위기대응에 협력하기 위해 전북도청에서 ‘전라북도 지방상수도 통합 위기관리 협력체계 구축을 위한 공동협력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을 통해 전북도를 비롯한 14개 시·군과 전북지방환경청, 한국수자원공사 금강유역본부는 전라북도 내 주민들에게 안전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수도사고 등 위기상황의 전 과정에 대하여 상호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이 때 전북지역 언론뿐만 아니라 전국의 많은 언론사를 대상으로 해당 기관들은 홍보를 실시하며 '전국 처음', '전국 최초'를 부각시켰다. 

그런데 불과 열흘 만에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인 이 지역의 대홍수 피해를 놓고 수자원공사가 남의 일 보듯이 하고 있으니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전국 최초'는 전시행정임이 곧 드러났다.

‘기후변화에 체계적 대응 피해 예방..’ 수자원공사 중요 임무ㆍ역할 

전라일보 8월 13일 홈페이지 갈무리

더구나 이번 홍수피해 이후 수자원공사는 예상치 못한 폭우 등을 탓하며 ‘천재’ 뒤로 숨으려고 하거나, 심지어 “매뉴얼대로 했을 뿐”이라며 주어진 고유 역할과 임무를 스스로 방기했음을 인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후조치와 행동들을 보임으로써 공분을 사고 있다.

13일 전북지역 언론들에 의해 보도된 뉴스의 행간에서 잘 읽힌다. 수자원공사의 해명과 조처들을 종합해보면 공분의 이유를 알 수 있다.

전라일보가 이날 1면에 보도한"수위 조절 위해 원칙 이행" vs "수공 과다 방류로 큰 피해"란 제목의 기사에서 책임론이 불거지자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수위 조절과 방류는 ‘매뉴얼’대로 진행한다”고 강조했다.

또 “방류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수문분석’을 실시하는데, 이때 강우량과 댐수위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 진행하게 됐으며, 당시에도 실시간으로 기상 상황을 보고 판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기사의 수자원공사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6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 내린 비의 양이 예상보다 많아 수위 조절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주장이다.

KBS전주총국이 전날(12일) 보도한 ‘섬진강댐 ‘보조 여수로’ 설치했지만 ‘또 홍수’‘ 기사에서도 수자원공사 측 주장은 비슷했다.

공사 관계자는 기자의 질문에 “집중호우가 시작된 지난달 말부터 보조 여수로를 통해 방류를 해왔다”며 “댐 관리에는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KBS 전주총국은 기사에서 “섬진강댐 하류 지역인 임실과 순창 일대를 뒤덮은 물난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며 “9년 전 집중호우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는데, 당시 홍수 조절 기능을 키운다며 수천억 원을 투입했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보도했다.

이어 기사는 “어떻게 된 일인지 2011년과 올해 모두 저수율이 90%를 넘긴 시점에서야 초당 1,800톤 이상으로 급격하게 방류량을 늘렸다”고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수자원공사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고 전했다.

엄청난 물 방류해 놓고 뒤늦게 통보라니...수자원공사 맞나?

전주MBC 8월 11일 보도(화면 캡쳐)

이날 전주MBC와 JTV 보도에서 수자원공사 측이 밝힌 입장은 더욱 가관이다.

전주MBC는 ‘용담댐 하류 피해도 인재..'피해보상' 쟁점’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용담댐은 댐 수위가 홍수기 제한수위에 근접했던 이달 초에도 방류량을 적게 유지하다, 폭우가 쏟아진 8일에서야 뒤늦게 초당 3,000톤 가까운 물을 15시간가량 쏟아냈다”며 “무주와 충북 옥천,영동, 충남 금산 등 4개 피해지역 군수들은 수자원공사를 방문해 공식 항의하고, 보상방안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이 대한 대책으로 전주MBC가 박재현 수자원공사 사장으로부터 얻은 답변은 “국가 차원에서 정밀 조사를 해야 할 것이고, 제가 지금 상황에서 인재인가 천재인가 밝힐 상황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은 수자원공사의 존재 이유와 임무, 전략 등을 외면한 발뺌 식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전주MBC 8월 12일 보도(화면 캡쳐)

수자원공사 홈페이지에 명시한 임무와 역할 중 ‘기후변화에 체계적 대응전략을 마련하고, 재해 취약지역 중심으로 홍수, 가뭄 예방·대응지원 강화를 통해 국가 물 재해 획기적 저감’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잊고 있거나 모르는 듯하다.

이날 JTV가 보도한 ‘용담댐 하류 피해도 인재..'피해보상' 쟁점’이란 기사에서 수자원공사 측 조치와 입장 또한 기가 막힌다.

“수자원공사의 댐 방류가 과연 적절했는지를 놓고, 논란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는 기사는 용담댐의 경우 수자원공사가 초당 방류량을 1,700톤이나 늘린 뒤에서야 해당 지자체에 통보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기사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지난 8일 수자원공사 용담댐이 무주군 담당 공무원에게 보낸 문자는 ‘토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방류량을 초당 1,500톤에서 3,200톤으로 크게 늘리겠다’면서 주의를 당부했다”며 “어처구니없게도 이 문자가 온 시간은 오전 10시 31분으로 수자원공사 용담댐이 방류량을 2배 넘게 늘리기 사작하면서 뒤늦게 긴급문자를 보낸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기사는 “섬진강댐 방류로 유례없는 피해를 입은 남원시의 경우 관련 팩스만 받았을 뿐, 문자는 아예 받지 못했다”며 남원시 관계자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수자원공사 사장, 제3자적 입장 해명...공분 더욱 자극

JTV 8월 12일 보도(화면 캡쳐)

한꺼번에 많은 물을 쏟아낸 것도 모자라 늑장 통보 논란까지 벌인 공사의 사장은 전주MBC에서와 마찬가지 입장을 내놓았다.

박재현 수자원공사 사장은 JTV와의 인터뷰에서도 “지금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조사된 결과를 보고 나중에 거기에 대한 부분들은 충분히 설명이 될 것 같다”며 제3자적 자세로 어물쩍 답했다.

댐 하류지역 주민들에게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은 수자원공사의 책임은 누가 봐도 명약관화하다. 지역의 피해 주민들과 정치권의 항의방문이 잇따르고 있는데도 대형 수해 피해 앞에서 ‘매뉴얼대로 했다’거나 ‘조사를 해보아야 안다’는 등의 애매한 태도를 수미일관되게 보이고 있는 수자원공사의 안일한 인식이 문제다.

정치권은 피해현장을 줄이어 방문하며 인증샷 경쟁을 벌일 일이 아니라 수자원공사부터 방문하여 문제점을 파악하고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도려내고 오려내어 개선을 주문하고 주도해야 할 것이다.

댐과 국가하천, 지방하천, 소하천 등으로 구분되는 물관리 시스템의 문제점도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다.

전라일보는 13일 1면 기사에서 “2018년 개정된 ‘물관리 일원화 3법’ 이후 국토교통부 소속 수자원정책국이 환경부로 자리를 옮긴데 이어 물 관리 전문 공기업인 한국수자원공사는 국토부가 아닌 환경부 산하로 이동했다”며 “다목적댐과 용수전용 댐은 환경부 산하 한국수자원공사가 관리하고, 전력댐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수력원자력이 맡고 있다”고 문제 원인을 짚었다.

이처럼 전국 곳곳의 댐과 하천, 저수지 등의 관리 주체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피해가 발생하면 책임을 떠넘기기 바쁘다. 지금처럼 수자원공사가 “국가 차원의 조사 결과가 나오면 대응하겠다”는 것은 이러한 약점을 최대한 무기로 삼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단군 이래 최대 권력형 비리사업인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에 뛰어든 수자원공사는 엄청난 손실을 본 사례가 있다.

4대강 손실책임ㆍ사후대책 부실...이제라도 본연 임무ㆍ역할 충실해야

감사원의 4대강 사업 감사결과에 따르면 ‘2009년 4월 정부(국토교통부)는 수자원공사가 2조 8,000억 원을 선 투자하면 추후 국고 보전하는 조건으로 4대강 사업 참여에 합의, 그 해 9월 열린 이명박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수자원공사는 8조 원에 달하는 공사채를 발행해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됐다.

그러나 2015년 9월 4대강 사업이 끝난 뒤 정부는 원금 8조원 중 30%인 2조 4,000억 원만 지원하고 나머지는 수자원공사에 떠넘기면서 수자원공사는 4조원을 손실 처리, 막대한 부채와 손실을 끌어 안게 됐다.

수자원공사 홈페이지

수자원공사는 지난 2019년 결산 결과, 총 자산 22조 2,548억 중 부채가 13조 9,194억 원, 부채비율이 167.0%에 달할 정도로 높다.

그러나 국민의 혈세가 90% 이상 투입된 공기업이란 점에서 그 피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손실 등에 대한 반성과 책임은 지금까지 신통치 않다. 그래서 가뜩이나 국민적 시선이 따가운 공기업이다.

이번 홍수피해 과정에서도 나 몰라라 손사래를 치고 있으니 비난의 수위가 더욱 높을 수밖에 없다. 과학적으로 기상(기후)을 예측하고 홍수 피해를 줄이는 것은 수자원공사의 중요 임무와 역할 중 하나다.

물을 이용해 돈 벌이 장사나 4대강 사업에 주력할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에 체계적 대응전략을 마련하고, 재해 취약지역 중심으로 홍수, 가뭄 예방·대응지원 강화를 통해 국가의 물 재해를 획기적으로 저감하는 데 주력할 때다.

법정자본금 중 정부가 93.2%를 투자하고 직원이 무려 6,329명(공사 홈페이지 명시)에 이르는 방대한 국영기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국가적 재난사고의 중심에 서있는 공기업이 지금처럼 나 몰라라 식의 태도는 스스로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책임질 부분은 응당 책임을 지고 사후 보완대책 마련에 주력하는 게 급선무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적 수준의 피해가 언제 어디서 다시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