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상 국가유산 보물 가장 많이 생산 안중근 의사, 순국 114주기...우리는 안 의사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유기상의 전북 문화 이야기(32)
3월 26일은 대한국인의 기개를 만방에 알린 독립운동가 안중근(1879~1910) 의사 114주기 순국일이다. 때마침 고창에서는 서각 예술가인 송천 염영선, 문화기획가 야니 김도연 기타 명인 등 예술인들이 고창 안중근 유묵 서각공방에서 추모식을 갖는다 하니 과연 의향 고창다운 일이다. 서각가 염영선 씨는 안중근의 삶과 유묵에 감동을 느끼고 사진, 유묵, 말씀 등을 서각해오던 중에 조촐한 예술제를 기획했다 한다.
독립운동가 3의사 가운데서도 안 의사는 유해도 아직 모국에 모시지 못해 안타깝다. 인류가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꿈꾼 평화주의자 안중근 의사의 사상인 '동양평화론'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별다른 유품이나 유언을 전하지 못한 안 의사지만, 다행히도 그의 마지막 심경을 담은 유묵들이 우리의 가슴을 떨게 한다. 안 의사 유묵을 받은 일본인들은 안 의사의 고매한 인격과 기개에 감동하고 존경해마지 않았다.
안 의사를 사당에 신으로 모셔두고 매일 경배를 올린 일본인도 있었다. 필자는 일찍이 동아시아 지중해의 사이좋은 이웃이었던 한일 두 나라,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한 때는 교전국이었던 두 나라가 미래지향적인 상생의 우호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한일 양 국민에게 절실하다는 신념을 갖고 산다.
그런 까닭에서 우리 전북도와 일본 가고시마현의 국제교류를 시작하며 양도현간의 교량 역할을 했고, 국비 유학을 가면서도 굳이 가고시마 대학을 선택했던 것이다. 문물교류 선린우호의 고대 한일관계처럼 상생의 양국 관계, 바람직한 한일 우호를 고뇌할 때마다 적국이던 일본인 모두를 인격적으로 감화시켜 동양평화론 신봉자로 만든 안중근 의사야말로 모범 답안이란 확신이 든다.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 보물 생산자는 누구일까?
9,000년 한국 역사상 국가유산 보물을 가장 많이 생산한 분은 누구일까? 안중근 의사다. 안 의사가 남긴 유묵은 대략 200여점으로 추정되고, 안 의사 기념관에서는 58점을 공인하고 있다. 이 중에서 현재 31점이 국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고미술품시장에서 가장 비싼 서화작가는 누구일까? 작년말 안 의사 유묵 한 점이 19억 5,000만원에 경매되었다. 서예하면 떠오르는 추사나 한석봉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안중근 유묵은 안 의사의 혼이다. 그의 기개요, 인격이며, 사상이고 철학이며, 역사의 거울이고 채찍이기 때문에 무값이다.
안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이등박문 등을 사살하고 여순감옥에 갇혀 사형선고를 받은 1910년 2월 14일까지 100여일 동안 감옥 안에 기적을 행한다. 안 의사를 만나고 동양평화론을 소통한 형무소장, 검찰관, 변호사, 간수, 호송병, 취재기자 등 일본인 모두가 안의사 광팬이 되어 구명운동까지 한 것이다. 여순형무소 구리하라 소장과 미즈노 변호사는 본국에 공식으로 안중근 사면요청을 했다. 재판을 보도하던 신문기자, 교도소 과장, 계장, 간수, 호송병 모두가 안 의사의 기개와 인품에 감복한다.
그러다가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자, 사형집행 전에 안의사께 휘호를 청탁하는 종이와 비단이 2,000여 장이 넘었다. 유묵을 받은 일본인들은 대대로 가보로 전승하고 일부는 안중근 사당을 세우고 안중근 명신(明神)으로 모시기도 했다. 최소한 돈으로 10억원이 넘는 안 의사 유묵을 잘 보존했다가, 한국의 기념사업회 등에 기증하는 후손들을 보면 그들의 안의사 흠모를 잘 알 수 있다.
사형집행 5분 전에 호송헌병 치바도시치 상병에게 써준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은 여러 군 부대의 표어로도 자주 쓰인다. 죽음을 눈앞에 둔 한 인간이 그토록 당당하게 평정심을 지키면서, 한 획도 흔들리지 않는 대장부 안중근의 칼날같은 붉은 마음이 새겨진 글씨다. 사형장으로 걸어가면서, 치바 상병에게 귓속 말로 "동양 평화가 오고 한일 우호가 회복되는 날 다시 태어나서 만나고 싶다"고 했다. 소장에서 호송병까지, 변호사, 기자부터 민간인들까지 안중근 유묵을 전한 일본인들과 그 후손들까지 안중근 광팬이 되었고 친한파, 평화주의자 일본인이 되어있는 놀라운 진실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고대사의 '한일'은 사이 좋은 '큰집 작은집'
안 의사 유묵은 혈서나 다름없다. 그의 삶의 태도를 알 수 있는 글귀 내용도 단정하지만, 낙관대신 찍은 대한국인 안중근의 손바닥 도장과 단지한 손가락 무인이 주는 엄숙함에서 군인 안중근의 비장한 혼을 만나게 된다. 한일관계는 국제관계 중에서도 특수관계다. 수천년간 한일해협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둔 좋은 이웃이었다. 오늘날 한일관계를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 양국에서 무슨 정치적인 쟁점만 발생하면, 정치권에서는 반일·혐한 감정을 증폭시켜 서로 양국민을 미워하게 하고 국내정치에 악용하여 한일관계를 더욱 악화시킨다.
고대국가 시절 일본은 백제와 가야 등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문물을 발전시켰고, 정치적으로도 같은 집안이었다. 일본천왕가도 백제 왕족들과 핏줄이 섞여 있고, 익산 서동축제 때 귀빈으로 오는 오우찌 가문은 백제 성왕의 후손임을 밝히고 있다. 신라가 끌어들인 외국 군대 '나당 연합군'에 의한 백제 멸망,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식민통치 등이 관계 악화의 대사건이었다. 해방 후 80여년이 되어가는데, 진정한 의미의 식민청산은 없고 당리당략의 반일 선동만 있다. 무엇이 우리 국익이고, 바람직한 한일 공생의 길인지를 진지하게 찾아내서, 국가, 지방, 민간차원의 역할 분담으로 지속적 노력이 긴요하다.
한국 강경파의 주장은 국민들 선동에는 좋지만, 일본 극 우세력에게 빌미를 주어 한국의 국익에는 해롭다. 역대 일본 정부 중 무라야마 수상시절 사회당 정부가 식민통치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인 무라야마 담화도 발표했고 한국에 가장 호의적 정부였다. 전쟁 반대, 평화헌법 수호, 일제강점기 위안부 등 인권문제 등을 제기하는 일본 내 양심적 시민단체들이 가장 활발한 시기였고 혐한 인식이 가장 낮은 시기였다. 일본내 양심적인 개인, 시민단체들과 연대해서 풀뿌리 교류를 강화하고, 양국 국가 차원에서 하기 어려운 우호교류의 폭을 넓히는 일이 긴요하다. 정유재란 전쟁직후 조선통신사 문화교류를 재개하여 250여년간 평화시대를 유지한 시기도 참고할만 하다.
이제 한국은 세계 6위권 군사 강국, 한류문화의 힘을 갖춘 자신감으로 긴 안목의 한일 친선관계 정립을 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 대중문화 시장개방을 결단할 때 우려가 많았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한류가 일본을 넘어 광속으로 세계로 달려간 지름길이었다. 안중근의 길처럼 문화역량이 월등히 앞서면 일본인도 감화한다. 정유재란 때 포로로 잡혀간 영광출신 수은 강항(1567 ~1618)은 일본 현지에서 사서오경 편집 등을 도왔고, 그의 일본 체류시절 제자인 후지와라 세이가는 일본 성리학의 종주가 되었다. 후지와라의 제자인 유학자들 사이에 스승의 나라 조선에 대한 우호적 공론이 지속적으로 퍼져갔음은 자명한 일이다.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한 외길...안중근의 길
해방정국에서 반민족 행위자 정리를 못한 역사적 과오 탓에 오늘날까지도 서로를 토착 왜구와 좌빨 용공이라 매도하면서 국익을 해치는 선동선전만 있고 국익 외교는 없었다. 이제 과장된 반일 감정을 선동하여 결과적으로 일본의 극우 반한 세력을 도와서 국익을 해치는 당리당략 선동은 멈취야 한다. 안 의사가 간수과장 청전 선생에게 드린 유묵 '일통청화공(日通淸話公)'은 날마다 평화로운 맑은 이야기를 소통한 분이란 뜻이다.
일본놈에게 드린다는 '증자'를 쓰고 '선생'이라 호칭하고, 끝에 '삼가 절한다'는 '근배(近拜)'를 썼다고 시비하며, 안 의사답지 못하다고 비난한 자칭 애국자도 있다. 이런 왜곡된 주장을 편승하여 일부 기관의 도록에는 증자와 근배를 가리고 사진을 찍은 옹졸함이 보인다. 일평생 인의를 실천한 조선 선비 안 의사의 군자다운 풍모를 잘 설명하고, 까탈부리는 어리석음을 꾸짖어야 옳을 일이었다.
순국 114주기를 맞이하건만, 효창원 삼의사 묘역에 유해도 모셔오지 못한 부끄러운 삼월이다. 항일 독립 전장에서 적장은 사살했지만, 감옥 속에 갇혀서도 적국 일본 사람들을 모두 평화론자로 교화해 내고 진정한 친구로 삼은 안중근의 길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이등박문과 함께 안중근의 총을 맞고도 극적으로 살아남은 만주철도 이사이던 다나카세지로는 "내가 만난 세계 최고의 지도자는 안중근이다"고 평했다. 자신을 죽이려고 총을 쏜 적장을 세계 최고 지도자라고 평가한 일본인 만큼 우리는 안중근을 잘 알고 있는가? 안 의사의 사상과 생애, 동양평화론, 그의 유묵을 교과서에 수록하고 한일 지도자의 필독서로 삼았으면 참 좋겠다.
/글·사진=유기상(문학박사·전 고창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