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군자와 도둑
백승종의 역사칼럼
어느 날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스승님, 군자(君子)란 무엇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수기이안인(修己以安人) 또는 수기이안백성(修己以安百姓)이니라.” 군자, 곧 선비의 이상형은 자신을 닦아서 타인 또는 백성을 평안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공자는 이렇게 언명했다.
공자의 간단명료한 설명을 통해서 선비의 길이 뚜렷해졌다. 우선 자아의 인격을 완성하라. 이어서 자신이 속한 사회에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었다. 후대의 선비들은 이것을 당연한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선비들은 수기치인의 길을 좀 더 명확히,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증자(曾子)와 그 제자들이 『대학(大學)』을 지었다.
다 좋은 말씀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하게 된다. 그것은 곧 도덕성의 문제이다. 인격이 갖춰진 개인이기만 하면,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일까. 이 말씀을 뒤집어보면,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으면 그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인데, 과연 단언할 수 있는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 부수적인 질문도 여럿 생기지만, 여기서 그것을 다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치와 도덕, 이것 참 난감한 문제이다. 따지고 보면 보통 사람들보다 도덕적 감수성이 낮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 정치판이다. 그래서 직업적인 정치가들조차 상대방을 공격할 때면 으레 '정치적' 이라고 비판한다. 그들 스스로 '정치'를 '공작' 또는 '조작'과 동일시 하는 경우가 참으로 비일비재하다.
만약에 말이다, 공자가 말한 도덕적 자아 완성, 즉 수기(修己)를 지도자의 선결 조건으로 삼으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 것일까. 위에서 인용한 공자의 기준으로 헤아린다면, 이 세상이 난장판이 된 이유는 명확하다. 도덕 군자에게 세상을 맡기기는커녕, 우리는 지금 도둑님들의 손에 권력의 칼을 쥐어준 셈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의심한다. 개인의 미덕이라고 하지만 한 사람의 도덕성이 과연 사회 전체의 정의와 공정성에 토대가 될 수 있을까? 아마 이것은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리더십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건 중에 하나가 도덕성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은 유교적 낭만주의일 뿐이다. 그것은 이미 시효가 끝난 알약이다.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