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 수 있는 길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데

신정일의 '길 위에서'

2024-02-10     신정일 객원기자

남미를 한 달간 답사하면서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낯선 나라의 역사의 문화에 흠뻑 빠지기도 했지만 너무 바쁘게 보낸 나를 돌아다보며 조금은 한가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귀국하자마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여러 가지 일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허둥지둥하다가 며칠이 금세 지나갔습니다. 내가 살아내야 할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 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능력 있는 사람이 자기 재능만 믿고 그것에만 의지한다면, 그 수준에서 더 이상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자기 안의 불완전함, 미숙함 등을 자각해낸다면 그 망가진 곳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자기 혁신을 시작하게 만든다.”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에 실린 글입니다. 나를 위해 예비 된 말 같습니다. 내가 나의 불완전하고 미숙한 점을 깨달아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고, 지금 나는 새로운 것을 준비해야 하는 때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새로운 길을 가야할 때입니다. 어디를 걷든지 처음처럼, 새로운 마음으로 걸어가야 할 것이라 다짐하는 나에게 다시 니체가 말을 건넵니다.

“걸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이미 이 길을 따라 멀어지지 않았던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은 이미 일어나 행해졌고, 이 길을 스쳐가 버리지 않았던가?”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에서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생의 첫걸음을 떼는 것처럼, 아직도 걷지 못한 길을 시나브로 걸어갈 것입니다. 그 길이 이미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갔을지라도, 걸을 수 있는 길이 아직도 여기저기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며 그 그림자라도 다시 붙잡으면서 걸어가리라 마음먹습니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걸어가야 할 그 길을 함께할 모든 분들에게 음력 설날 아침에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십시오.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