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고향은 안녕하십니까?

토요 시론

2024-02-10     박주현 기자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두 번째 맞은 올 설 명절 연휴 기간에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가족과 고향을 찾아 이동했다고 하니 '민족 대이동'이란 말이 틀린 말 같진 않다. 한국도로공사 등에 따르면 설 연휴 기간에 국내 이동 인구는 총 2,852만명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이는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우리나라 주민등록 인구 5,132만 5,329명 중 절반이 넘는 55.6%에 달하는 수치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마스크를 낀 채 가족들과 오랜만에 상봉하거나 설 연휴에도 만나지 못하고 전화로 안부를 물었던 기억이 벌써 아득할 정도다. 그런데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바쁘게 오가는 민족 대이동의 행렬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많은 언론들은 서울과 지역 간의 귀성·귀경 행렬 모습과 서울 중심의 교통 소요 시간을 연휴 시작부터 내내 전달하느라 분주하기만 하다. 서울 중심주의를 탈피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민낯을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낸 명절 풍경이 씁쓸함을 더하게 한다.

전체 면적 11.8% 불구 인구 '절반' 집중 수도권, 7년 연속 '순유입' 증가

2014년∼2023년 수도권 및 비수도권 인구수 및 비중 현황(자료=행정안전부 제공)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90%가 넘는 사람들이 도시에 살고 있고, 그들의 50%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국내 매출 기준 1,000대 기업 중 수도권 기업이 746곳에 달한다. 이 때문에 지역에 소재한 대학들에도 최첨단 학과들이 많지만 졸업 후 서울과 수도권으로 직장을 찾아 이동하는 게 보편화됐다. 서울·인천·경기도의 면적이 국내 전체 면적의 11.8%인 점을 고려하면 이상 징후를 넘어 병적인 구조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지역의 젊은 인구가 줄고 지역의 담론들이 점점 사라져 결국 지역소멸로 치닫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는 이미 예고된 수순에 불과하다. 

갈수록 지방은 왜소해지고 ‘수도권 공화국’은 더욱 공고해지는 작금의 현실, 과연 이게 정상적인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인구의 기형적인 형태를 좀 더 자세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10일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23년 말 기준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다시 살펴보자. 수도권 인구는 2,601만 4,365명으로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50.69%를 차지했다. 비수도권 인구는 2,531만 1,064명(49.31%)으로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보다 70만 3,201명이 더 많은 게 대한민국 현실이다. 

지난해 수도권 인구는 5만명 가까이 타 권역으로부터 유입되면서 7년 연속 순유입 흐름을 이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수도권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 인구가 지속적인 유출세를 보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젊은층 인구가 줄어 국내 인구 이동 규모 자체가 5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줄었지만, 수도권으로 진입하려는 움직임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왜 이럴까?

전국 시·군·구별 2022년 대비 2023년 인구 증감 현황(자료=행정안전부 제공)

통계청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2023년 연간 국내 인구 이동’ 자료에서도 잘 나타났다. 지난해 수도권으로 순유입한 인구는 4만 7,000명으로 집계되면서 전년 대비 1만명 늘었다. 특정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유입 인구가 그 지역을 나가는 유출 인구 보다 많으면 순유입, 그 반대는 순유출로 분류한다.

그런데 지역에 따라 순유출과 순유입 흐름이 극명히 갈렸다. 그건 바로 수도권 집중 흐름이 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이동 인구는 2017년(1만 6,000명) 순유입으로 전환한 이후 7년 연속 순유입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2019년 8만 3,000명에 이어 2020년엔 8만 8,000명으로 8만명 이상 순유입을 기록했다.

수도권 인구는 1970년 이후 40년 넘게 순유입세를 이어오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추진됐던 2011년과 그 후 2013~2016년 사이 많게는 연간 3만명 가량 순유출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2017년부터 인구는 다시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다. 그나마 지역으로 공공기관들이 이전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수도권 중심의 인구 증가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녀들의 학교 진학과 취업 등을 이유로 아예 집은 서울과 수도권에 둔 채 혼자 외로이 지역살이를 하는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대부분인 것을 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전북, 저출산·고령화 심각 속 매년 1만명 이상 감소...지역소멸 가속

2022년 시도별 합계출산율(자료=통계청 제공)

출산율이 전국 17개 시·도 중 광역(도) 단위에서 가장 낮은 데다 매년 1만명 이상의 인구 유출이 이뤄지고 있는 전북지역은 어떨까? 인구 감소세가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두드러진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23년 말 기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전북 인구는 175만 4,757명으로 2022년 176만 9,607명과 비교해 1만 4,850명 감소했다. 2000년 200만명 선이 무너진 후 지난 2021년 178만 6,855명으로 180만명마저 붕괴했다. 2013년 187만 2,965명과 비교하면 10년 새 11만 8,208명이 줄었다. 매년 1만명 이상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소멸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음을 알리는 증좌다. 전북 인구는 농촌과 도시지역을 가리지 않고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전주시 인구는 64만 2,727명으로 전년보다 8,768명 줄었고, 익산시는 3,661명, 군산시는 2,487명, 정읍시는 1,461명 감소했다. 완주군과 순창군이 지난해 각각 5,405명, 37명 늘었으나 나머지 12개 시·군 모두 전년과 비교해 인구가 감소했다. 인구 감소 문제와 함께 고령인구(65세 이상) 비중은 2023년 24.11%로 높아져 인구 고령화도 심각하다.

전북지역의 출산율도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출생·사망 통계 잠정 결과'에 따르면 전북지역의 합계출산율은 0.82명으로 전국 광역도 지역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집과 직장을 얻으려는 경향이 여전히 뚜렷한 결과로 분석됐다. 이 때문에 전북특별자치도가 출범을 맞아 가장 고민하며 해결해 나가야 할 분야 중 하나로 인구 문제가 부각됐지만 여건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전북은 인구 자연감소와 수도권 유출이 겹치면서 지역소멸이 더 빨라지는 추세다. 명절 때마다 찾는 고향이지만 갈수록 사람 수가 적어 썰렁하고, 문 닫은 학교들이 느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풍부한 지역 담론의 생산 기지이자 공동체 문화 형성의 장이었던 학교들의 폐교는 심각한 지역사회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올해 대입 정시전형에서 지원자 수가 적어 정원을 채우지 못한 전북지역 대학이 4곳이나 됐다. 지방대학 소멸이 현실화 됐음을 보여준 대목이다.

'지방대학 미달' 매년 반복, '초·중교 폐교·통합' 증가...지역 공동화 ‘심각’

전북지역 폐교 현황(자료=전북교육청 제공)

전국적으로는 35개 대학에서 정시정원 미달을 기록한 가운데 전북지역의 미달률은 전국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났다. 2024학년도 정시모집 전국 190개 4년제 대학 중 35개 대학 내 163개 학과에서 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이 중 경기권 대학 1곳을 제외하고 34개 대학이 모두 비수도권 대학으로 집계됐다. 전북지역에서는 4개 대학 30개 학과에서 정원 미달을 기록해 전국 두 번째로 심각했으며, 정시정원 미달이 발생한 대학 4곳 중 1곳은 24개 학과에서 정시모집 정원을 다 채우지 못했다. 전북지역 대학의 정원 미달 학과는 지난해에도 4개 대학 44개 학과에서 발생했다.

이러한 원인은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대학 쏠림 현상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학령인구 급감에 따라 급기야 입학식 없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늘면서 이로 인한 폐교 증가 및 인근 학교들 간의 통합 추진이 전북지역에서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은 지방대학 소멸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올해 전북지역에서 입학 예정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어 입학식이 사라진 초등학교는 32곳에 달할 정도다. 

전북지역 415개 초등학교의 7.7%에 해당하지만 이 같은 현상이 앞으로도 더욱 가파르게 증가할 전망이어서 지역소멸이 점차 현실로 다가왔음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전북지역에서는 앞서 지난 2021년과 2022년에 3곳의 초등학교가 입학생이 전무했으나 지난해에는 20곳으로 늘더니 올해는 12곳이 더 늘었다. 지역별로는 군산 6곳, 임실 5곳, 고창·익산 각 4곳, 김제 3곳 등이다.

올해 전북지역 초등학교의 전체 입학생 수는 1만 1,523명으로 지난해 1만 2,905명에 비해 1,382명(10.7%)이 감소했다. 장수, 무주, 순창 등 3곳은 입학생 수가 각각 74명, 93명, 98명으로 100명 미만으로 나타났다. 입학생 수가 단 한 명도 없는 지역은 저출생과 인구 유출 현상 심화에 따른 것으로 이미 수년 전부터 신입생이 없거나 재학생 수가 너무 적어 학교 문을 잠시 닫은 휴교도 늘고 있다. 학생 수가 급격히 줄면서 인근 학교와 통폐합되거나 폐교되는 사례도 줄을 잇고 있다. 

폐교만이 능사일까?...미래 세대에 물려 줄 소중한 자산 '고향'에 관심을 

폐교된 농촌 초등학교(자료사진)

전북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학생 수 10명 미만의 ‘작은 학교’ 9곳(초등학교 7곳, 중학교 2곳)이 문을 닫게 된다. 남원지역에서는 중학교 4곳이 유례없는 대규모 통합 절차를 밟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도 전해졌다. 전북교육청은 남원 금지중·대강중·송동중·수지중을 단일 중학구로 개편하고 통합중학교 설립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그간 학교 통폐합이 통상 1:1로 이뤄졌지만, 이처럼 읍·면·동을 넘나드는 대규모 통폐합이 시도되는 것은 첫 사례라는 점에서 지역의 공동화는 물론 농촌 붕괴를 더욱 가속시킬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마을 공동체 형성의 장으로 활용돼 온 학교를 학생 수 감소 이유로 문을 닫는 게 해결의 능사만은 아니란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학교 시설의 대체 활용 방안을 좀 더 면밀히 교육당국과 지자체들이 고민하는 것이야 말로 지역소멸을 가속시키는 것과 정 반대의 지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처절한 환경 때문에 고향을 더욱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고향을 더욱 지키고 가꾸며 소멸만은 막아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전자든 후자든 언제나 늘 그립고 정답게 느껴지는 곳이 바로 고향 아니던가. 비록 고향을 등지고 외지로 나가 사는 사람들도 잊지 않고 언제든지 반겨 주는 곳이 바로 고향이다. 고향이야말로 우리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소중한 자산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소멸 위기에 놓인 고향에 대한 관심부터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