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아내 사랑
백승종 칼럼
이순신은 두고 온 아내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밤 열시에 집에 편지를 썼다.”(<난중일기>, 1597년 12월 24일)고 했다. 또, 서남해안을 누비고 다니는 ‘탐후선’(정탐선)이 며칠이 멀다하고 아산 본가와 이순신의 진중을 왕래했다. 이와 별도로 방씨는 번갈아가며 남녀 노복을 보내 이순신의 진중생활을 보살폈다.
7년의 전쟁기간 중 이순신은 한 번도 휴가를 얻지 못했다. 아내를 만나 회포를 풀 기회는 사실상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러 경로를 통해 아내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아내의 편지에는 면(셋째 아들)이 더위를 먹어 심하게 앓았다고 했다. 괴롭고 답답하다.”(난중일기, 1594년 6월 15일) 이런 식으로 부부는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희로애락을 나누었다.
이순신의 한 가지 걱정은 아내의 건강이었다. “아들 울의 편지를 보니 아내의 병이 위중하다고 했다. 그래서 아들 회를 내 보냈다.”(<난중일기>, 1594년 8월27일) 그로부터 사흘 뒤, 이순신은 일기에 또 이렇게 기록했다.
“탐후선이 들어왔는데, 아내의 병이 몹시 위독하다고 한다. 벌써 죽고 사는 것이 결딴 나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라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다른 일은 생각이 미칠 수 없다. 허나 (아내가 죽는다면) 아들 셋, 딸 하나는 장차 어떻게 살까.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중략) 마음이 어지러워 잠을 못 잤다.”(<난중일기>, 1594년 8월 30일)
그 무렵 그는 조정의 비판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아내의 병환이 더욱 마음 쓰였다.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촛불을 밝힌 채 밤새 뒤척였다. 이른 아침 손을 씻고 조용히 앉아 아내의 병세를 점쳐보았다. ‘중이 환속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다시 점을 쳤더니, ‘의심이 풀려 기쁨을 얻은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아주 좋다! 또 병세가 나아질지 점쳤다. ‘유배지에서 친척을 만난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이 역시 오늘 중 좋은 소식이 들려올 조짐이었다.”(<난중일기>, 1594년 9월 초1일)
그 다음날 이순신은 탐후선을 통해 기쁜 소식을 들었다. “아내의 병이 좀 나아졌으나, 원기가 몹시 약하다고 하니 염려스럽다.”(<난중일기>, 1593년 9월 2일) 이처럼 아내 이야기를 소상히 기록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아내를 향한 그의 심정이 어떠하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출처: 백승종, <<조선의 아버지들>>, 사우, 2016; 세종우수교양도서, 경기도 평택시 한 책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