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독립선언' 주역 '백관수의 봄'은 언제 오려나?

유기상의 전북 문화 이야기(25)

2024-02-04     유기상

영화 <서울의 봄> 바람으로 불행한 현대사 한 쪽을 다시 읽는데, 어김없이 봄을 알리는 입춘이다. 역사책의 시원인 공자의 <춘추>에서, 정당한 대의명분을 잣대로 준엄하게 사실을 기록해야 한다는 뜻의 춘추필법이 유래한다. 역사의 혹한기에도 봄은 꼭 오고야 만다는 신념을 새긴 불원복 태극기를 든 의병에 이어, 범민족적 독립의식을 고취시킨 신호탄이 삼일독립운동이다. 이보다 한 달 앞선 1919년 입춘무렵인 2월 8일 적국의 심장 동경한복판에서 유학생 독립선언이 일어난다. 3ㆍ1운동의 도화선인 2·8동경유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이 고창사람 근촌 백관수(芹村 白寬洙 1889~1961)다.

2·8독립선언일을 앞두고 3·1운동의 불씨를 지핀 독립운동가이며 제헌헌법 제정, 정부수립의 주역이었던 근촌선생 묘소와 생가, 흥동장학당, 동상 등 유적지를 돌아보며 다시 참회하는 봄을 맞는다. 2·8독립선언은 근촌 백관수선생이 단장이던 동경 조선청년독립단이 주도하여,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역사적인 날이다. 조선독립의 정당성과 일제강점의 부당성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취지로 춘원 이광수가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백관수가 낭독했다. 항일운동사상 최초의 독립선언서이고, 기미독립선언서와 취지가 같다.

근촌 백관수, 한국 근현대사의 정당한 지도자

헌법전문은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ᆢ"으로 시작한다. 3·1운동의 불을 지른 도화선이 2·8독립선언이고, 그 주역이 바로 근촌 백관수다. 한국 근현대사의 빛나는 한 쪽을 쓰신 거인이다. 다시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다. 백관수는 고창 성내면 생근리 출신이다. 아호 근촌은 미나리가 많이 나던 고향마을 생근리의 미나리 근자를 따서 지은 걸 보면, 그는 천상 고창 사람이다.

2·8독립선언 직후 체포되어 1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명치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동아일보 사장, 한민당 총무, 제헌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등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해방후 건국운동 등 한국 현대사의 빛나는 별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61년에 사망하여 평양 신미리 묘역에 안장된 것으로 전해진다.

백관수는 수원백씨로 어릴적 간재 문하에서 한문수학, 경성법학전수학교에서 공부하였다. 동경유학 이전 1914년 이미 고향의 황서구, 이순열등과 함께 주도하여 고창흥덕 유림들과 흥동장학계를 설립하여 독립운동지원, 성내보통·고창고보 설립지원사업 등을 하였다. 일본 유학 후에 동아일보 등에서 언론 항일운동을 하다가 동아일보 폐간 날인 거부로 다시 옥고를 치렀다.

광복후 인촌 김성수, 고하 송진우 등과 손잡고 한민당 창당, 제헌국회 초대 법사위원장으로 헌법기초를 하는 등 해방정국과 정부수립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다했다. 불행히도 한국전쟁 때 납북 당한 탓에 아직도 독립운동 국가유공자 서훈을 못 받았고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우리 현대사의 그늘이다.

정정당당한 독립운동

근촌 선생의 집안 고창 수원백씨는 항일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항일독립투쟁 4의사의 한 분인 구파 백정기 의사, 백인수 순국지사, 백낙일 지사등 독립유공자가 많다. 관련유적으로 도지정문화재인 백관수 고택, 흥동장학당, 덕산사 등이 있고 국가현충시설로도 지정되었다. 그가 독립선언서 낭독후 현장에서 체포되어 1년간 옥고를 치른 동경 감옥에서 지은 한시 70여 수를 엮은 한시집 동유록(東幽錄)이 2·8 백주년에 출간되어 빛을 보았다. 시집의 첫번째 시인 5언절구 한시 정당(正當)에는 독립운동의 때가 왔고, 정정당하게 싸우며, 봄은 꼭 오리라는 간절한 심경이 잘 녹아 있다.

정당(正當)

마땅히도 2월은 이리 왔건만

봄 기운은 어찌 이리도 늦기만 한가?

한 평짜리 쪽방 감옥 봉창가라서

역시나 나만 홀로 모르겠지요.(번역 유기상)

정당2월시 正當二月時

춘색상하지 春色尙何遲

삼첩유창하 三疊幽窓下

야오독부지 也吾獨不知

정당한 역사의 봄을 기다리며

항일 독립투쟁에 모든 걸 바치신 선열들의 헌신 덕분에 나라는 광복하였고 독립자주국가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 6대 군사강국이 되었고, 식민지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본보기 국가가 되었다. 수많은 항일의병, 독립지사, 백관수 처럼 나라를 위해 좌우를 넘나들며 선공후사를 솔선한 이름모를 애국 애족 별들의 헌신 덕분이다. 머리숙여 감사할 일이다.

광복후 8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남북통일은 여전히 민족사의 제일 과제로 남아 있다. 여전히 해방 직후처럼 좌우 대립, 내로 남불, 토착 왜구, 좌빨 용공, 당리 당략의 늪을 넘지 못하는 양극 극단 대립정치 현실은 부끄럽기만 하다. 자리이타와 해원상생, 대화와 타협, 중도와 온건합리주의 정당한 정치의 봄은 언제 오려나? 독립운동가 백관수의 정당한 역사적 평가의 봄은 언제나 오려나?

백관수의 공적이 크고도 뚜렷하건만, 철지난 이념갈등의 벽에 갇혀 국가서훈도 못받은 근촌 선생의 독립운동 서훈이 시급하다. 타향 객지 평양 신미리 묘지에 계신 선생의 유해를 고이 모셔와, 성내 흥동장학당에서 노제를 지내고, 성내 고향집 뒷뜰 가묘에 안식하게 할 그 날, 선생의 정당한 봄이여 어서 오라. 다시 또 간절히 기도하는 갑진년 입춘이다. 

/글·사진=유기상(문학박사·전 고창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