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희가 득음한 '옥녀탄금혈'과 전주사고 지켜낸 '도암 오희길'
유기상의 전북 문화 이야기(24)
우리 겨레는 북두칠성 별에서 태어나 땅에서 살다가 다시 칠성판에 올라 하늘의 별로 돌아가는 민족이다. 단군사화를 비롯하여 우리 고대국가의 건국사화는 한결같이 하늘의 자손이라는 천손의식을 나타낸다. 야행성인 곰은 달, 주행성인 범은 해, 신단수는 은하수의 은유로 본 전관수의 <단군신화는 천문학이다> 는 해석은 탁견이다.
같은 시대 지표 유적인 고창 고인돌이 이미 고도의 천문지리원리에 따라 조성되었음을 이병렬 박사가 밝힌 것도 같은 이치다. 하루 종일 해 달 별을 보고 살던 고대인들에게 하늘은 경외의 대상이었다. 못된 자들에게 하늘이 보고 있다거나 천벌을 받는다거나 하는 우리 말 속에도 늘 하늘이 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갈망한 유교의 순천, 천명, 천리 속에도, 하늘은 착한사람 편이다는 노자의 천도에도 늘 지고지선의 한울님이 있다.
경외의 대상인 하늘과 인간과의 소통 매개체로 삼족오, 선녀, 신선, 무당들 이야기가 함께 있게 마련이다. 전통의 천손의식과 유학의 천명의식이 있었기에, 천주교 전래당시에 서학의 천주사상을 쉽게 받아들였고, 요즈음 기독교의 하나님 나라가 되어간다. 하늘 세계를 주재하는 옥황상제의 딸인 선녀나 옥녀이야기가 사람과 하늘을 이어주는 소재로서 우리 곁에 친근하게 전승되고 있다.
이것은 권선징악의 교훈과 함께, 산줄기 물줄기, 자연을 모두 생명체로 인식하는 조상들의 생태적 자연관인 풍수형국론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을마다 있는 신선봉, 옥녀봉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옥녀봉은 둥그런 모양의 예쁜 봉우리로서 오행상 금형에 해당한다. 옥황상제의 딸로서 착한 이에게 복을 주려고 우리 곁에 내려 온 옥녀는 부귀와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고창출신 국창 김소희가 득음한 '옥녀탄금혈'
고창에도 십여군데 옥녀이야기가 지명에 새겨져있다. 유형별로는 옥녀가 길쌈하거나 베를 짜는 모양의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 옥녀척토형(玉女尺土形), 가야금을 타는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 머리를 풀고 화장을 하는 옥녀단장형(玉女丹粧形),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 옥녀의 금비녀가 떨어진 곳이라는 금차낙지형(金釵落地形) 등이다.
고창읍 월산리와 화산리 사이에 옥녀탄금형 옥녀봉이 있다. 산정마을 뒷편 도깨비도로 능선이 높은 등이란 뜻의 모릿등이라 불렸고 성황당이 있었던 가느다란 산줄기가 가야금 능선이다. 노동저수지 쪽에서 옥녀봉에 이르는 기왓등 모양 능선을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된다는 적벽부의 우화등선(羽化登仙)에서 따온 등선봉으로도 부르는데 옥녀봉 아래 등선마을, 등선정이 여기서 유래한다. 아산 반암리 마명마을 주산도 옥녀봉인데 존좌바위에 연결하는 일자문성이 가야금이다.
판소리 발상지 고창 출신 국창 김소희가 옥녀탄금혈에 해당하는 바로 이곳 두암초당에서 오케이레코드 녹음과 김종기 가야금을 사사하던 해인 방년 18세에 득음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심원 연화리 금산마을도 옥녀탄금에서 거문고금자를 따서 금산마을이다. 옥녀는 보다 친근하게 각씨로도 나타나는데 이곳 금산마을 옥녀봉을 각씨봉이라고도 부른다. 성송 백토마을 뒤 옥녀봉은 옥녀직금형으로 그 아랫 마을에 베틀, 비단실을 뜻하는 금사(錦絲)마을이 있다. 상하면 검산리 옥녀봉은 관복의 띠인 라대를 짜는 옥녀직금형이다. 상하의 어원인 인근 마을 상라와 하라도 이 라대에서 연유한 지명이다. 공음면 덕암리 옥녀봉은 옥녀가 옷감 재단을 위해 자(尺)로 땅(土)을 잰다는 옥녀척토형이다.
'전주사고' 지켜낸 도암 오희길...왜 금암사에 모셨을까?
대산면 상금리 차동마을은 옥녀의 금비녀가 떨어진 자리라서 마을 이름이 비녀차(釵)자 차동(釵洞)이다. 고창 출신 4선 국회의원인 안규백 의원 선영이 금차낙지, 금비녀 명당이라 전해온다. 흥덕면 용반리 대양마을은 옥녀단장형이다. 단장형이나 산발형에는 화장도구인 거울, 세숫대야, 빗, 비녀 등이 배치된다. 대양마을은 옥녀의 세숫대야에 해당하는 대야의 방언이다. 이 밖에도 고창읍 죽림리 송암마을, 공음면 신대리에도 옥녀봉이 있다.
아산면 반암리 선동 뒤의 선인봉이나 공음면 선산의 선인봉도 옥녀봉과 유사하게 사람과 하늘을 잇는 신선이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전주 경기전 참봉으로 전주사고를 옮기고 보존한 총책임자가 고창 출신 도암 오희길이다. 명당인 자기 집터를 고창 향교 터로 기증하기도 한 도암 오희길을 모신 사우가 아산면 반암리 금암사(琴巖祠)다.
왜 가야금 금자를 썼을까? 금암사 뒷산이 바로 옥녀탄금형의 가야금 바위 곧 금암인 까닭이다. 심원 연화리 가야금을 뜻하는 금산을 어려운 한자라고 쇠금자로 바꿔버린다면, 대를 이어 구전되어 온 우리 조상들의 아름다운 상상력과 역사문화를 순식간에 영원히 파괴하는 죄를 짓는 일이다. 국창 김소희가 때를 만나 방년 18세에, 명창이 탄생할 소리 명당 옥녀탄금대에서 득음한 이야기 속에는 하늘 땅 사람이 함께 있어서 찰진 스토리가 되는 것이다.
베를 짜던 베틀이 도자기 굽는 백토로 왜곡...땅 이름은 역사문화의 압축 정보
백제 고성이 있는 고산 옥녀봉 아랫마을 성송면 암치리 백토(白土)마을은 옥녀가 베를 짜는 모양이라 옥녀직금혈의 베틀에 해당하여 본디 베틀마을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발음은 비슷하나 뜬금없는 백토로 바꾸었다. 현재도 마을 유래를 모르는 연구자들이 제멋대로 도자기 고장으로도 유명한 고창의 도자기 원료인 백토가 나는 곳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백토 옆마을은 옥녀가 짜낸 비단실이라는 뜻의 금사(錦絲)마을 이름을 지켜서 그나마 다행이다. 정치적 변화기때마다 역사말살을 위해 엉뚱한 지명으로 바꾸면서 수천년간 지켜온 지역의 전통과 역사가 무수히 사라져버려 안타깝다. 최근의 새주소 사업 과정에서도 성과에만 집착하고 역사문화를 소홀히 하다보니 소중한 마을역사가 송두리째 사라졌다. 전국에 벚꽃길이란 이름만 수백 군데라니 대대로 켜켜히 쌓아온 역사문화를 이렇게 없애버리면, 우리 전통문화는 무엇으로 존재할 것인가?
지역의 사업명이나 지명을 제정할 때에도 지역 정체성과 역사문화를 살리고 지역 브랜드와 이야기 소재로 활용가능하도록 전문가들과 주민들이 심사숙고하여 정해야 한다. 잘잘못을 덮어두고 과도하게 지난 정부, 전 정권 실적 지우기로 사업명, 건물명, 지명을 바뀌치기하는 일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오만이자 하늘의 도를 거스르는 일이다. 역사의 심판, 천벌 받을 짓이다. 방탄소년단(BTS)과 한류 바람은 우연한 게 아니다.
수천년간 겨레의 유전자에 축적해 온 천지인 상생의 고운 마음씨, 생태인문학적 상상력의 이야기 꽃씨에 담긴 신명이 디지털 소통 수단의 시절인연을 만나 활짝 피어나는 것이다. 한류의 근원은 바로 하늘 땅 사람이 사이좋게 함께 사는 우리 전통문화다. 지구 온난화로 인류 소멸 위기를 맞은 지구촌을 살릴 지혜 틀이 천지인 상생의 한국 자생 풍수사상이다.
/글·사진=유기상(문학박사·전 고창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