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마크롱' 소환한 ‘폭력 경호’...윤 대통령은 전북도민·전주시민들에게 사과부터 해야
토요 시론
[#1] 연설 방해한 시민 칭찬한 ‘품격 있는 대통령’
2013년 11월 25일.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이민 개혁’을 주제로 연설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연설하는 대통령 뒤에서 소리치는 시민이 등장했다. 이날 방송의 중계 화면에 비친 이 남성은 한국계 대학생이었다.
그는 “강제 추방을 멈춰주세요”라고 말한 뒤 대통령이 계속 발언을 이어가자 두 손을 모아서 '손 고깔' 모양을 만든 후 “강제 추방을 멈춰주세요”라고 크게 외쳤다. 그러자 장내가 술렁이며 미국 대통령 경호를 담당하는 비밀경호국(SS) 요원들이 그를 퇴장시키려고 접근했다.
그런데 이 때 오바마 대통령이 침착하게 대응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경호원이 다가서려 하자 “아니다. 괜찮다. 그냥 놔두라"며 "내가 마저 연설을 마칠 수 있게 해 달라. 가족을 걱정하는 저 청년의 열정을 존중한다“고 말렸다. 그러면서 ”이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소리 지르는 것만큼 쉬운 게 아니다"며 자신의 연설을 훼방한 청년에게 오히려 경의를 표한 뒤 “민주적 절차를 지켜야 한다”고 말해 장내가 숙연한 분위로 돌아섰다.
당시 생생하게 중계된 방송 화면에는 이 대학생의 외침에 주변 사람들도 같이 “추방을 멈춰달라”며 손뼉까지 치면서 상황이 급속도로 술렁거린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경호원들을 제지하며 “이 사람들은 나갈 필요 없다”(These guys don't need to go)라는 말로 오히려 크게 주목을 받았다. 많은 미국 국민들은 이 장면을 지켜보며 “클래시 프레지던트”(classy president, 품격 있는 대통령)를 연호했다.
[#2] 뺨 맞고도 군중에게 여유 보이며 다가선 ‘용기 있는 지도자’
2021년 6월 8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방 순회 도중 길거리에서 20대 남성에게 뺨을 맞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현지 언론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이날 오후 프랑스 남동부 드롬주의 작은 마을 탱레흐미타주 순방 도중 이 같은 봉변을 당했다’며 대서특필했다.
이날 마크롱 대통령은 경호 차원에서 설치해놓은 울타리 건너편에 모여있는 군중을 향해 다가갔고, “고맙다”고 말하며 맨 앞줄에 있는 남성의 왼팔을 잡았다. 이때 남성은 프랑스 왕정시대 회귀를 꿈꾸는 우익세력의 구호 “생드니 만세”와 “마크롱주의 타도”를 외치며 오른손으로 마크롱 대통령의 얼굴을 가격했다. 경호원들이 곧바로 달려들어 남성을 제지했지만 이러한 소동에도 마크롱 대통령은 지근거리에서 시민들과 만나 소통하는 것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어떤 사람이 표출하는 분노가 정당하다면 응대하겠지만, 어리석음과 폭력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항상 추구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무것도 나를 막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장면이 방송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금세 전 세계로 전파됐다.
이날 일로 인해 프랑스 정치권과 언론, 시민사회에서는 일제히 “프랑스 대통령을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대통령을 겨냥한 것은 민주주의를 겨냥한 것과 다름없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다. 그러면서 마크롱을 향해 ‘용기 있는 지도자’라고 치켜세웠다.
[#3] 직언 국회의원 입 틀어 막고 사지 들어 내쫓는 모습 바라만 본 대통령
2024년 1월 18일.
윤석열 대통령은 전주시에 소재한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 참석해 정치인들과 인사를 나누며 전주을이 지역구인 강성희 진보당 국회의원과도 악수했다. 이 때 강 의원은 윤 대통령을 향해 “국정 기조를 바꾸어야 합니다”라고 말한 뒤 스쳐 지나가는 대통령을 향해 다시 말을 하려 하자 경호원들이 갑자기 강 의원의 입을 틀어막고 사지를 들어 행사장 밖으로 끌어냈다. 이 장면이 생생하게 중계돼 이날 전북도민들은 물론 온 국민들이 지켜보며 큰 충격에 휩싸였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이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아무런 만류도 하지 않은 채 행사를 태연히 소화해 더욱 충격과 파장이 컸다.
‘내 발로 가겠다’, ‘여기가 대한민국이냐?’며 저항하는 현직 국회의원을 강제로 끌고 가는 수십초짜리 영상을 지켜보며 ‘모멸감과 공포를 느꼈다’고 말하는 도민들이 적지 않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백주대낮에 어떻게 저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놀라운 반응이 행사장 안팎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강 의원이 대통령 손을 잡아당기고 소리를 질러 경호상 위해 행위로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군부독재 시절 떠오르게 하는 대통령 ‘과잉 경호’...특별자치도 출범일 전북도민들 ‘비통’
그러나 대통령실이 제공한 영상을 보더라도 강 의원과 윤 대통령이 접촉한 시간은 매우 짧고, 강 의원이 인위적인 물리력을 행사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경호원들이 제압에 나선 시점도 이미 윤 대통령이 강 의원을 지나 다른 참석자 3명과 잇따라 악수를 나누는 상황에서였다.
강 의원이 윤 대통령을 향해 정치적 발언을 큰 소리로 외친 것이 적절했느냐를 두고는 이견이 있지만 대통령이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아무런 만류도 하지 않은 채 전북특별자치도 행사를 마무리하고 돌아갔다는 점에서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언론들이 과잉 경호 문제를 지적하고 당시 영상 화면을 계속 보여주며 심각성을 제기하고 있는데도 이와 관련해 일언반구도 없이 대응하지 않은 대통령의 모습에선 과거 폭압적으로 억누르며 통치했던 군부독재 정권 시절 모습이 떠오르게 할 정도였다.
전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군중을 대하는 모습이 최근 대한민국 사회에 재소환되고 있는 이유다. 과잉 경호 논란을 방관하는 윤 대통령과 오버랩되는 장면은 두 눈을 의심케 한다.
사과 없이 떠난 대통령, 정당화하는 대통령실...납득 어려워
가뜩이나 지난해 새만금에서 열린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가 파행으로 막을 내려 심한 좌절과 함께 자존감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전북도민들은 잼버리 직후 정부의 새만금 예산 대규모 삭감으로 더욱 실망과 분노가 응어리진 상황이다. 그런데 전라북도가 1896년 8월 4일 갑오개혁 이후 128년 만에 전북특별자치도로 바뀌는 역사적인 날에 전주시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행사장에서 직언 한마디 못 하게 입을 틀어막고 사지를 들어 밖으로 내동댕이친 모습을 바라본 전북도민들과 전주시민들은 형언하기 어려울 만치 치욕스럽고 비통하기 짝이 없는 가슴을 다시 쓸어내리고 있다
지역 국회의원이 대통령에게 하고자 한 말은 ‘국정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국민들이 불행해진다’는 게 다였다. 그런데 그 짧은 말 한마디조차 다하지 못하게 입을 강제로 막고 밖으로 내쫓았으니 그런 괴이한 모습에 얼마나 속이 상했겠는가. 이날 역사적인 특별자치도 출범식 행사장에서 ‘내 발로 가겠다’며 저항하는 국회의원을 강제로 끌고 가는 수십초짜리 영상을 지켜보며 심한 모멸감과 공포를 느꼈다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
누가 봐도 실질적 '위해 행동'이 없었는데도 물리력으로 제압한 과잉 경호이자 엄연한 폭력이었다. 이는 전주시민과 전북도민에 대한 폭력 행위와도 같다. 주민들 다수에 의해 선출된 현직 국회의원 신분임에도 온 국민이 지켜보는 행사에서 강압적인 폭력으로 입을 막았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공화국 아닌 민주공화국 걸맞는 경호 매뉴얼로 바꿔야
더욱이 대통령은 이날 행사장에서 이를 똑똑히 지켜봤지만 아무런 말 한마디, 사과조차 없다. 특별자치도가 막 출발하는 날 전북도민들의 가슴에 깊은 대못을 박은 것과 다름없다. 전주시민들과 전북도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모멸감과 상처를 안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사과부터 해야 한다. 총선이 이제 겨우 2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민심의 향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과잉·폭력 경호를 정당화하며 정치적 정쟁 수단으로 삼으려는 후안무치한 행동을 더는 보여줘선 안 된다. 당시 장면을 아무리 복기해 봐도 윤 대통령에게 시선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경호원들이 강 의원을 물리적으로 제지했을 때 대통령이 ‘그러지 말라’고 말렸어야 했다.
강 의원 발언에 대해 되레 웃으며 ‘잘 참고하겠다’, '좋은 제안이다'는 정도의 말을 건네는 여유를 보였더라면 오바마와 마크롱이 재소환돼 비교 당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며, ‘진보당을 도와준 한국의 보수당 대통령’이란 외신들의 조롱 섞인 비난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날 행사장에서 강성희 의원의 목소리가 더욱 작아졌을 것이다.
대통령실은 ‘경호상 위해 행위였다’고 해명하지만 만일 경호 매뉴얼이 이처럼 강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이라면 그것부터 시대에 맞게 바꿔야 한다. 검찰공화국이 아닌 민주공화국 수준으로 말이다. 강 의원이 대통령실 경호원들에게 사지를 들린 채 연행당하듯 퇴장당한 사건과 관련해 온라인에선 “독재정권에서도 못 봤던 장면”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과거 '폭력·심기 경호'를 하며 폭압적으로 억눌렀던 ‘박정희·전두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는 말을 대통령부터 겸허히 새겨들어야 한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