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과 사랑
백승종의 서평
저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정한용을 손꼽습니다. 그가 쓴 좋은 시 하나를 함께 읽고 싶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프리카 어떤 부족은, 사람이 죽어도 그 영혼은 살아 있다고 믿는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 머릿속에 함께 살아가다, 그들이 모두 죽으면 그때서야 진짜로 죽는다고 한다. 지금 내 몸속에는 누가 살고 있나. 그렇구나,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는 아직 살아 계신 것이다.
젊은 나이에 간 규선이도 있고, 장례식에 못 가본 은사님도 아직은 내 곁에 있다. 고향 마을 뒷동산에서 잡았던 참새도, 썰매 송곳을 만드느라 베어낸 노간주나무도 아직은 살아 있다.
베란다에서 말라비틀어진 참죽꽃도, 생사불명의 아버지도, 아프간에서 쓰러진 검은 눈망울의 아이도, 죽은 것이 아니다. 이러다 내가 가면 그래, 그제야 모두 함께 떠나겠구나. 나 혼자 가는 게 아니구나. 내 몸에 깃든 모든 존재들이여, 그러니, 슬퍼할 것 없겠다. 나는 죽어도, 나를 기억하는 이, 세상에 서넛 둘 하나 남아 있을 때까지, 그때까지는 죽은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생의 끈을 풀 때까지."
과연 그런 것 같습니다. 시인의 말처첨 이것이 곧 인간의 삶일 것입니다. '기억하는 이'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는 인간은 아직 살아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질문이 하나 떠오릅니다.
우리는 누구를, 무엇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무엇인가를 기억할 때 가장 근본적인 잣대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사랑'인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산다는 것은 곧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