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리망의(見利忘義)’ 가고 ‘견리사의(見利思義)’ 오길
토요 시론
‘견리사의(見利思義)’
‘눈앞의 이익을 보면 먼저 의리나 주변을 생각한다’는 의미로 ‘논어(論語)’에서 유래한 말이다. 원문은 ‘견리사의 견위수명 구요불망평생지언(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으로 ’나에게 이익되는 것을 접하면 옳은지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며 오래 전 약속도 평생토록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참 좋은 뜻을 지닌 사자성어다. 그런데 과연 눈앞의 이익을 보면 먼저 주변을 생각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있을까?
교수사회 올해의 사자성어 ’견리망의‘ 선정, 왜?
'견리사의'와 같은 좋은 뜻의 사자성어가 있는데 왜 하필 ’견리망의(見利忘義)‘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채택되었을까? '견리망의'는 '견리사의'와는 정 반대의 뜻을 지닌 사자성어다. 그런데 교수신문은 전국의 대학 교수 1,315명을 대상으로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하는 설문조사 결과 ’견리망의‘를 꼽은 응답자가 전체의 30.1%(396표)를 얻어 가장 많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했다고 최근 밝혔다.
김병기 전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명예교수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인은 바르게 이끌기보다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것 같다”며 “출세와 권력이라는 이익을 얻기 위해 자기편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한 경우로 의심되는 사례가 적잖이 거론되고 있다”고 올해의 사자성어인 '견리망의'의 추천 이유를 교수신문에 밝혔다.
교수신문은 “현대를 사는 우리 사회에 견리사의’보다 정반대의 ’견리망의‘가 난무해 나라 전체가 마치 각자도생의 싸움판이 된 것 같다”며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책무는 팽개치고 권리만 주장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추천 이유를 덧붙였다.
대통령의 친인척과 정치인들이 이익 앞에 떳떳하지 못하고, 고위공직자의 개인 투자와 자녀 학교 폭력에 대한 대응, 개인의 이익을 핑계로 가족과 친구도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현직 의원과 예비 후보가 공천권자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상황도 '견리망의'가 선정된 배경에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다’라는 뜻의 ‘견리망의’의 사례는 우리 주변에 흔하디 흔하다. 지난 대선 기간에 어느 후보는 전북지역을 방문해 장장 30년 넘게 터덕거려 온 새만금사업을 금세 매듭지을 것처럼 자신하며 공항과 항만 등의 조기 완공을 공언했다. 또 전북을 서울과 부산에 이은 제3금융중심지로 만들겠노라고 장담했다. 그러더니 선거에서 당선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도가 돌변했다.
새만금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가 하면 금융중심지 지정과 관련해서도 별 관심이 없다. 자신의 대선 공약이자 집권 여당의 공약임에도 ‘전북 금융중심지 지정’이 끝내 ‘제6차 금융중심지의 조성과 발전에 관한 기본계획’에 포함되지 못해 현 정권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사실상 희박한 상황에 처하게 됐는데도 아무런 말이 없다.
일단 표만 얻으면 그만, 당선 후 180도 달라지는 ‘권리망의‘...수두룩
일단 표만 얻으면 그만이고 당선되면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전형적인 ‘견리망의‘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고약한 '견리망의' 사례는 지방선거 이후에도 줄곧 우리 주변에 나타나고 있다. 단 한 표가 아쉬운 후보 시절엔 온갖 감언이설 (甘言利說)로 유권자들을 현혹시킨 뒤 당선 이후에는 공약을 헌신짝 여기듯 하며 주민들 민원에 '나 몰라라' 하는 단체장들을 우리는 수없이 목도하고 있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차기 선거를 위해 과잉 홍보에 열을 올리며 치적 쌓기와 알리기에 급급하다. 오죽했으면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지방의회로부터 지적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혈세를 들여 만든 시정 홍보책자에 단체장의 얼굴과 치적을 무려 수십 페이지 게재했다가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일부 국회의원과 단체장은 선거기간에 오로지 자신의 당선 목적을 위해 내뱉은 말과 행동이 부메랑이 되어 재임 기간 내내 재판장을 오가거나 결국 배지를 떼는 경우도 있다. 이 또한 ’견리망의‘에 다름 아니다.
불공정·불의 판치는 '견리망의'...새해엔 ’견리사의‘ 오길 간절히 소망
선출직 외에도 고위공직자가 개인의 이익과 친인척 등 주변의 특혜를 위해 직무를 망각하며 편법과 충성 경쟁을 조장하는 경우는 물론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상대편을 헐뜯거나 하급자들에게 갑질하는 사례도 다반사다. 이처럼 갈수록 심각해지는 ’견리망의‘ 사례들은 법의 경계는 물론이고 도덕과 윤리를 무너뜨리기 일쑤다.
심지어 부동산·금융 투기부터 명품 상납까지 권력을 이용한 사적 이익 추구는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면 그만이다. 공익과 정의를 외면한 편파적이고 사리사욕에 입각한 것은 정치권 뿐만 아니라 교육현장과 사법권에서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불공정하고 불의한 수사와 재판으로 나라 전체가 혼란스러운 일을 우리는 언제까지 바라만 보아야 할까.
지나고 보면 계묘년 1년은 자신의 이익만 쫓는 아수라장 같은 한해였다. 한해가 저무는 이 시기에 '견리망의' 추구자들에게 '통렬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듬뿍 선물하고 싶을 정도다. 의로움을 잊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 챙긴 '견리망의'의 2023년이 물러가면 다가올 2024년 새해는 눈앞의 이익 앞에서 먼저 주변부터 생각하는 ’견리사의‘가 우리 사회에 가득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