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 잦은 전투기 추락 사고, 주민들 '아찔'...올들어 세 번째, 조종사 탈출만 하면 끝인가?
이슈 진단
또 추락했다. 올들어 세 번째다. 이번엔 주한미군 F-16 전투기 1대가 11일 군산기지에서 이륙 후 서해에 추락했다.
조종사는 비상탈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추락 원인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조류 충돌 가능성과 엔진 이상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주민들 피해 보상 대책에 대해서는 여전히 군 당국과 관할 행정기관들이 함구하고 있다.
군산기지 이륙 F-16 전투기 또 서해안 추락...불안한 주민들 가슴만 쓸어내려
군 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군산기지에서 F-16 전투기 1대가 이륙 직후 어청도 인근 바다로 추락했다. 사고 전투기에 탑승하고 있던 조종사는 비상탈출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원인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주한 미 공군 등은 사고 경위와 민간 피해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하지만 벌써 서해안 지역에서 군 전투기기 추락한 것은 올해만 세 번째란 점에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군산지역을 비롯한 전투기 이착륙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군 전투기 추락 때마다 불안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군산 공군기지는 우리 공군과 주한 미 7공군이 함께 사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잦은 훈련과 이로 인한 굉음 등으로 인근 주민들은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군산 뿐만 아니라 인근 오산과 광주 등의 기지에서 이륙한 전투기들의 서해안 추락이 잦아지면서 더욱 불안이 증폭되고 있지만 정확한 원인 규명과 피해 대책은 요원한 실정이다.
5월 6일, 오산기지 이륙 주한미군 F-16 평택 밭에 추락…조종사 탈출
올들어 지난 5월 6일 오산 미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주한미군 F-16 전투기 1대가 이날 오전 평택시 팽성읍 노와리의 밭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기 조종사는 탈출해 생명에 큰 지장은 없었지만 사고 인근 주민들은 물론 전투기 훈련 반경 내의 주민들은 언제 또 추락할지 모를 전투기 때문에 노이로제에 시달릴 정도라는 하소연이 늘고 있다.
지난 5월 사고 당시 기체가 밭으로 떨어져 추가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사고 현장 영상을 보면 추락한 전투기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산산조각으로 파손됐다.
경찰 관계자는 “해당 지역은 미군 부대가 상시적으로 훈련하는 곳”이라면서 “훈련 중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당시 사고 전투기는 주한 미 공군 제51전투비행단 소속으로 최근 군산 미 공군기지 활주로 공사 등으로 오산기지로 임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9월 21일, 공군 주력 KF16 전투기 충남 서산 추락...조종사 비상탈출
이 사고 후 불과 4개월 만인 9월 21일 공군 주력 전투기인 KF16이 이날 오전 8시 20분 임무를 위해 충남 서산 기지에서 이륙하다 추락하는 사고가 또 발생했다. 조종사는 비상 탈출했으나 주민들은 또 다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국산인 KF16 계열 전투기가 추락한 건 1997년 이후 9번째이며 지난해 11월 이후 10개월 만이었다. KF16은 미국 F16 전투기를 국산화한 부품을 이용해 조립·생산한 4세대 전투기지만 추락 사고가 잦다. 1997년 8월 처음 추락 사고가 발생했으며 다음 달 다시 추락 사고가 났다. 두 사고는 연료 도관 부식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어 2002년 2월에는 엔진 터빈 블레이드 파손으로 1대가 추락했고 2007년 2월 정비 불량으로 인한 추락 사고가 있었다. 그러더니 같은 해 7월 비행 중 착각으로 서해에 추락해 2명이 숨졌다. 2009년 3월 조종사 과실, 2019년 2월 부품 고장으로 각 1대가 추락했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지난해 11월 추락 사고는 정비 불량에 따른 엔진 연료펌프 손상 때문에 발생했다.
그런데 군 관계자들이 올 9월 발생한 추락 사고는 이륙 직후 발생한 ‘조류 충돌’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조류 충돌은 항공기 운항 중 새가 동체나 엔진 등에 부딪히는 현상을 말한다.
시민단체 "새만금 일대 조류 충돌 가능성 잦아...버드스트라이크 발생” 주장
군 전투기의 조류 충돌은 서해안에서 얼마든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최근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제기됐다. 2년 전인 지난 2021년 10월 5일 군산시 새만금 수라갯벌 상공에서 군산공항 활주로에 접근하는 F16 전투기가 민물가마우지 대열과 충돌하는 모습이 공개돼 충격을 주었다.
당시 새만금 신공항 예정지인 군산시 새만금 수라갯벌 상공에서 전투기와 조류가 부딪히는 이른바 '버드스트라이크'가 발생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공동행동)은 사고 당시 “오후 3시 12분께 훈련을 마친 뒤 군산공항 활주로로 향하는 K-F16 전투기가 민물가마우지 무리와 충돌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찍혔다”며 사진을 공개했다.
공동행동은 사진과 함께 “200여 마리의 민물가마우지 무리는 ㄱ자 모양으로 줄을 지어 움직이다가 전투기가 다가오자 순간 대열이 흔들렸으며 K-F16 전투기는 무리를 통과했고, 일부 민물가마우지는 기체와 부딪치면서 한 마리의 민물가마우지가 수라갯벌 주변 염생식물 등이 자라는 배후습지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제38전투비행전대 관계자는 "이날 비행한 조종사에게 확인해봤지만 조류와 충돌했다는 보고는 받지 못했다"면서 "비행을 하고 나면 조종사와 정비사가 기체 점검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조류 충돌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충돌 사실을 반박했다.
그럼에도 공동행동은 이날 오전 8시 45분께 민물가마우지 무리가 수라갯벌 주변 옥녀봉 터에서 새만금 산업단지 7∼8공구 쪽으로 날아갔다가 오후 3시께 다시 동북쪽으로 돌아가면서 사고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옥녀봉은 민물가마우지가 번식하는 곳으로 주변 서식지들이 대부분 개발로 사라지면서 새만금은 민물가마우지가 서식하기 좋은 장소가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따라서 앞으로 이 근처에서 얼마든지 항공기와 조류떼가 충돌할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전투기 추락 사고가 잦은 원인에 대해 조류와 충돌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시각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에 군산 공군 기지에서 이륙한 미 공군 전투기가 서해상에 추락한 지점은 군산 어청도 남서쪽 88km 해역인데다 군산공항에서도 전투기 추락에 따른 결항 등의 조치는 없었던 점에 비추어 조류 충돌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란 지적이다.
공군, 작년 1월 조류 충돌로 파손된 'F-35A' 도태 결정
앞서 공군은 지난 2022년 1월 조류와 충돌로 착륙하며 기체가 손상된 F-35A 1대를 도태하기로 결정했다고 1일 밝혔다. 공군에 따르면 해당 전투기는 지난해 1월 4일 공대지 사격임무를 위해 청주기지를 이륙한 뒤 사격장 진입을 위해 약 330m 고도로 비행하던 중 독수리가 좌측 공기 흡입구로 빨려 들어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때 충돌한 독수리는 F-35A 기체 격벽을 뚫고 무장 적재실 내부까지 들어갔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고로 인해 당시 전투기는 조종간과 엔진을 제외한 대부분의 장치가 오류를 일으켰으며 착륙에 가장 중요한 랜딩기어 3개 모두 정상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해당 전투기 조종사는 지상과의 교신에서 '비상착륙'을 선포하고 연료를 모두 소진한 뒤 서산기지 활주로에 '동체착륙'을 시도해 성공시켰다. 동체착륙은 기체 동체를 지면에 직접 대어 착륙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에 공군본부는 지난 11월 30일 장비도태 심의위원회를 열어 파손된 F-35A에 대해 도태를 의결했다.
이 항공기는 정밀조사 결과 기체, 기골, 엔진, 조종·항법계통 등 다수 부위에서 300여 점에 달하는 손상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공군은 ▲수리복구 비용이 신규 항공기 획득 비용보다 높게 산출(1,400억원 이상)됐다는 점 ▲복구에 4년 이상 장기간 소요되는 점 ▲복구 후에도 비행 안전성 검증이 제한된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공기 도태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전투기의 조류 충돌은 매우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게 이번 사례에서 드러났다.
미군 F-16 전투기 추락 원인 "엔진 속 고무 패킹 들어가"
그런가 하면 이번 전투기 추락 원인이 엔진 이상일 가능도 제기된다. 지난 9월 21일 충남 서산 기지를 이륙한 공군 KF-16 전투기가 이륙 1분도 안 돼 이상 현상을 보였는데 당시 엔진에 유입되는 공기의 급격한 변화로 추력이 일시적으로 약해지는 이른바 '엔진 실속' 현상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공군 등에 따르면 당시 이륙 직후 이상 현상이 반복돼 비행이 어려워지자 서산 기지로 기수를 돌렸지만 추력이 계속 줄어 결국 조종사는 고도 약 24m 높이에서 가까스로 비상 탈출 뒤 1초, 이륙 1분 31초 만에 전투기가 기지 내 활주로 사이 풀밭에 추락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3개월 가까이 조사를 벌인 공군은 엔진실 안쪽 진동을 줄여주는 러버실이라는 고무 패킹이 엔진에 들어간 게 사고 원인이라고 공군 측은 설명했다.
공군은 부품 자체 결함 때문인 걸로 보고 엔진 제작사와 민간 정비회사에 원인 규명을 요청했다고 밝혔지만 이날 오전에는 군산 공군 기지를 이륙한 미 7공군 F-16 전투기가 서해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해 공교롭게도 러버실 부실이 드러난 우리 공군 KF-16과 같은 기종이란 점에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이와 관련 주한 미 공군은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만 밝혔을 뿐 주민들의 피해 및 안전대책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군 당국은 이번에 추락한 전투기로 인한 어선이나 어민들의 피해는 없었다고 밝혔지만 사고 해역 인근 어청도 주민들은 사고가 언제 또 발생할까 우려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미 전투기 추락 피해 주민들 배상금 지급 어떻게?
이처럼 잦은 전투기 추락 시 피해 주민들의 배상금 지급도 논란거리다.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노와2리 주민 33명은 지난 7월 주한미군 전투기 추락으로 입은 피해에 대한 배상금을 지급해 달라는 신청서를 수원지검 산하에 설치된 수원지구 배상심의위원회에 접수했지만 정확한 피해 보상에 관한 로드맵이 없어 여전히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피해 주민들은 “지난 5월 6일 발생한 주한미군 F16 전투기 추락사고로 33개 농가 농경지 15만 4,800㎡가 피해를 입어 올해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됐다”며 “미군 임무 수행 중 난 사고로 발생한 피해인 만큼 미군 측이 조속히 배상에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주민들이 피해배상을 신청함에 따라 배상 여부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미군 또는 한미 합동 피해조사를 거쳐 배상심의위원회의 심의로 최종 결정된다. 심의 결과 피해의 책임이 전적으로 미군 측에 있는 것으로 드러날 경우 배상비용의 75%를 미군 측이, 나머지는 한국 정부가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군 측과 한국 측에 공동 책임이 있는 경우에는 배상비용을 양측이 균등하게 분담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배상이 순조롭게 이뤄지려면 배상심의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미군 측이 인정해야 하지만 이를 인정받고 배상 받기까지 과정이 쉽지 않다. 미군 측이 이의를 제기한다면 피해 주민들은 배상을 받기 위해 소송을 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미군 관련 사고가 났을 때 국민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헌법을 기반으로 정부와 지자체가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