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활 타는 장작 불빛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며

신정일의 '길 위에서'

2023-11-27     신정일 객원기자

활활 타는 장작불은 내 지나간 유년의 한 시절을 불러온다. 유년의 기억들은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가끔씩은 감미롭다. 특히 아궁이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거나 저물어 가는 시간에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볼 때, 문득 유년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진다. 돌아갈 집도 없고, 기다리는 그 누구도 없는데, 대책도 없이 떠오르는 이런 생각들이 나를 그렇게 먼 길로 내몰았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그림자도 없는데, 누군가 지핀 불은 저 혼자 타오르고, 검은 솥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며 내 피로한 영혼은 상상의 나래를 편다. 필시, 이 집 주인은 산 자락 감나무에 매어둔 소를 데리러 갔을 것이고, 곧이어 ‘음메’하고 따라오는 어린 송아지와 함께 느리게 느리게 이 집으로 들어설 것이다. 그는 낯선 이방인인 나에게 무어라고 말할까? 

“불이 따뜻합니까?” 하고 물을지도 모르고, “저기 고구마 있는데, 아궁이에 왜 넣지 않았소” 라고 살갑게 말을 건넬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디서 왔소? 밤이 왔는데, 하룻밤 묵어가지 않겠소”라고 나에게 다정한 말을 건넬지도 모른다. 이 또한 나의 부질없고 부질없는 생각들이다. 불빛은 타오르고, 타오르는 불빛을 보며 고독한 철학자 니체의 말에 귀를 기울일 뿐이다.

“밤에 해가 저물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가까운 것들에 대한 우리들의 느낌이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한다. 바람은 지나쳐서는 안 될 그런 길을 배회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속삭이는 듯한 한숨 소리를 내기도 하고, 찾고 있는 것이 끝내 발견되지 않아 언짢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다.

램프의 따뜻한 불빛도 그렇다. 그 소담스러운 불빛은 피곤한 듯한 불빛을 던지고 있어 억지로 밤을 새우는, 어쩔 수 없이 인간에게 봉사하고 있는 노예처럼 보인다. 그리고 잠자는 사람의 숨소리가 낮아져 정적이 내려 덮일 때에는 ‘잠시 동안 쉬어라. 번뇌에 괴로워하는 불행한 정신이여!’라고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게 된다.

우리들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그렇게도 심하게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영원한 휴식을 갈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밤은 이처럼 우리에게 죽음으로 들어가는 것을 속삭여준다. 인간에게 태양이 주어져 있지 않았다면, 그래서 달빛과 등불만으로 밤을 상대해서 싸워야 한다면 우리들은 어떤 철학의 베일 가운데 숨어 있게 되었을까?“

'니체'의 <방랑자와 그 그림자> 중 '밤에'라는 글의 일부 내용이다. 나도 그렇고 니체도 그렇고 타오르는 불빛도 그냥 그렇다. 그냥 아궁이 속에서 장작불은 활활 타오를 뿐이고, 그 불이 다 타고 나면 재가 되고 말 뿐이다. 나 역시 잠시동안 머물렀던 이 지상에서 트일 것 같지 않은 어둠을 헤치고 돌아갈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활활 타는 장작 불빛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보며 쓸데없이, 아무 쓸데 없이 사념에 잠긴 채 세월을 좀먹고 있는 것일까.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