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선거구 획정 지연 ‘고질적 만성병’, 총선 4개월여 임박 '깜깜'...정치 신인들 '좌불안석', 현역들 ‘모르쇠’ 일관 '눈총'
진단
내년 4월 10일 실시될 22대 총선이 4개월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국회가 예비후보자 등록인 12월 12일을 코앞에 두고도 여전히 선거구 획정을 미루면서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특히 총선 때마다 선거구 획정을 선거 직전에 확정하는 등 현역 의원들의 전횡이 선거 때마다 이어지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전국 각 지역에서 제기되고 있다.
25일 지역 정치권에 따르면 총선을 불과 4개월여 앞두고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제도 개편은 오리무중인데다 선거구 획정 기준인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는 물론 비례대표 배분 방식 등 기본 규칙도 정하지 못해 유권자들은 물론 후보자들의 혼란이 불가피하다.
지역구 모른 채 깜깜이 선거운동...언제까지?
내년 4월에 치러질 22대 총선을 위한 선거구 획정 법정 시한은 지난 4월 10일이었지만 이를 논의할 국회 정개특위는 아직 아무 것도 결정하지 않은 채 지난 7월 회의를 끝으로 4개월 가까이 개점휴업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당장 피해는 정치 신인들을 중심으로 총선 입지자들에게 미치고 있다. 내달 12일부터 시작될 예비후보자 등록을 앞두고 각 입지자들은 자신의 선거구 운명도 모른채 ‘깜깜이 선거운동’에 나서야 할 처지다.
특히 민주당의 총선 후보 선출은 권리당원과 일반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선거인단 경선방식이라는 점에서 선거구 획정이 지연되거나 결정되지 않으면 법률 위반으로 공천 무효 등 법적 분쟁과 후유증이 뒤따를 수 있다.
전북지역 5개 선거구 '불안'...국회의원 10석 중 9석으로 축소 가능성도
전북지역의 경우 현재 10개 선거구 중 전주갑·을·병 3곳과 익산을, 군산 등 5곳을 제외하고 국회의원 인구 하한선 미달로 선거구 변경이 예상되는 등 인근 선거구와 조정·변경이 불가피한 익산갑, 완주·진안·무주·장수, 남원·순창·임실, 정읍·고창, 김제·부안 등 5개 선거구의 후보들은 선거구 획정이 확정되는 순간까지는 입지자들이 불안한 총선 행보를 이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들 지역의 일부 입지자들은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서 출신 지역을 중심으로 우선 인구가 많은 곳부터 인지도 기반을 넓혀가고 있지만 정치 신인들의 경우 선거운동을 어떻게 펼쳐나갈지 막막하다는 하소연이 늘고 있다. 이처럼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서 현역과 정치 신인 등 도전자들 간 정치적 형평성이 선거 때만 되면 제기되고 있다.
현역 의원들 4년 내내 선거운동, “아쉬울 것 없다”...정치 신인들, “어디서부터 어떻게 뛰어야 할지 막막”
현역의 경우 4년 동안 의정활동, 국회 국정감사, 예산확보 등을 통한 지역 내 인지도는 정치 신인이나 다른 도전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역 의원들은 조급하거나 아쉬워할 것 없다는 반응이다.
반면 정치 신인들은 선거가 점점 다가오고 있지만 선거구도 모른 채 선거운동을 펼쳐야 하는 답답함을 곳곳에서 하소연하고 있다. 더욱이 22대 총선에서 전북 국회의원 선거구는 현 10석 유지와 9석으로 축소될 것이라는 엇갈린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국회 안팎에서는 단순 인구비례대로 선거구 획정이 이뤄질 경우 경기도와 인천을 제외하고 서울을 비롯 부산, 전북, 전남 등 많은 광역단체의 국회의원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북지역 국회의원이 1석 줄어든 9석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국회의원 인구 기준에 따른 것으로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전북은 익산갑과 김제·부안, 남원·임실·순창 3개의 선거구가 인구 하한선에 미달된 상황에서 축소·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에 따르면 전국 253개 선거구 중 인구가 늘어 지역선거구별 상한 인구(27만 1,042명)를 초과한 선거구는 18개다. 올해 1월 31일 기준 인구가 상한 인구보다 많은 선거구는 지역구를 나누는 '분구' 대상이 된다.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이 1명 늘어나는 것이다. 전북지역에서는 '전주병' 선거구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인구가 하한 인구수(13만 5,521명) 아래로 내려가 지역구가 합쳐지는 '합구' 대상으로 거론되는 지역도 있다. 전북에서는 '익산갑', '남원·임실·순창', '김제·부안' 선거구가 하한 인구수에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인접 선거구 등과 조정·변경이 불가피하다.
이처럼 선거구에 큰 변화가 예상되고 있음에도 기득권 관행으로 인해 선거구 획정이 만성적인 고질병처럼 지연되고 있다. 따라서 여야 모두 현역 물갈이론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치 신인 발굴 등 개혁 공천은 공염불에 그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선거구 획정 늑장은 기득권 관행...언제까지 두고 볼 수 없다” 출마 예정자 '국민청원' 제출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논의가 이처럼 지지부진하자 국민청원까지 제출돼 주목을 끌고 있다.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 출마 예정자인 손훈모 변호사는 14일 국회에 ‘상습적인 국회의원선거구획정 지연사태 종식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 국민동의청원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손 변호사는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막강한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가장 모범적으로 법을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상습적으로 위법행위를 자행함으로써 큰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한 뒤 “선거구 획정 권한을 계속 국회의원들에게 맡겨둘 경우 1년 전까지 확정하도록 규정한 법정기일 위반사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선거구획정위원회 구성방식을 바꿔 독립성을 보장하고, 선거구획정안 의결정족수를 현행 재적위원 3분의 2에서 2분의 1로 완화하여 국회의원들이 만들자마자 사문화시켜 버린 법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동의청원은 30일 이내 100명의 찬성을 얻으면 ‘공개 청원’으로 전환된다. 이후 30일 이내 5만명의 동의를 얻으면 정식으로 청원이 접수되고, 국회 소관위원회에 회부 된 뒤 처리 결과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 그동안 국회는 지난 제17대부터 21대까지 선거구 획정안 처리 결과를 선거일로부터 평균 38일 전에 의결했다. 그러나 공직선거법은 '선거구 획정을 선거일 1년 전까지 확정하도록' 하고 있다. 선거구 획정이 얼마나 늦게 처리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