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도 모르는 잘난 사람들 판치는 세상...이런 대법원장감은 없나요?
유기상의 전북 문화 이야기(14)
부끄러움도 잊은 '숫자사회'
요즈음 우리 정치판은 정의와 양심의 분별심이라는 부끄러움도 잃어버렸다. 부끄러움도 옳고 그름도 분별할 수 없는 철면피들이 고위직 밥그릇 싸움에 내로남불 타령으로 부끄러운 현실이다. 양심의 마지막 보루여야 할 대법원장 후보가 문민시대 이후 최초로 국회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정치가 실종된 국회에서 애시당초 상대측에서 깜냥이 안된다는 인사를 추천한 인사실패지만, 인사검증시스템, 고위법관 인사시스템 전반의 개혁이 절실함을 보여준 모양새가 국민들을 웃프게 한다.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 대법원장은 일반국민의 평균적 역사관이나 윤리의식과 준법정신보다도 훨씬 엄격한 잣대가 요구된다. 일찍이 우리 전북은 수많은 정치지도자를 배출하여 정부수립 과정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다했지만, 대한민국 사법부를 대표하는 법조3성을 배출한 고장이다.
최근의 법조인물중 참 법관으로 양심을 실천하며 살다 가신 법조계 어른을 꼽자면 단연 고창 출신 이홍훈 대법관이 떠오른다. 대법원장 후보 낙마를 계기로 우리 법조계와 정치권이 청백리이며 유능한 법관이던 이홍훈의 발자취를 거울삼아, 법조계와 정부의 자성이 시작되면 참 좋겠다.
요즘 보기 드문 된사람 '이홍훈'
조선후기 정조와 함께 국가개조를 꿈꾸던 다산 정약용이 한국사 최고의 청백리로 꼽은 인물은 고창 출신 무송유 씨 고려중기 문신 유응규다. 그는 수신제가에도 빈틈이 없었지만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단식투쟁으로 황제에게 국서를 받아 국익에 헌신한 열정가였다. 그는 인품이 구슬처럼 곱다해서 옥인(玉人)이란 호를 가진 인물이다. 다산의 청백리 기준으로 보더라도 요즘 보기 드믄 최고의 법조 청백리로 이홍훈 대법관을 꼽을 수 있다.
이홍훈 대법관(1946~ 2021)은 고창군 흥덕면 출신으로 흥덕초, 전주북중을 거쳐 경기고와 서울법대를 나와 사시합격하여 법조인이 되었다. 서울대 재학시절 기본권과 민주화운동에도 깊은 인식을 갖추어 민주화운동가인 손학규, 김근태, 조영래 등과 절친이었다. 훗날 민주주의자 김근태 의원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조용히 찾던 친구가 이홍훈이었다.
대법관 퇴임사에 대법관이 아닌 법관 이홍훈이라고 썼을만큼 법관을 명예롭게 여겼다. 대법관과 서울, 수원, 제주지법원장 등 법원내 요직을 두루 거쳤지만, 그는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하는 겸손과 근검한 생활이 몸에 배어있었다. 가족들에게도 법관 가족의 마음가짐을 체화하도록 하여, 학교에서도 아버지 직업을 공무원으로만 적도록 했다고 한다.
그가 군법무관시절 아기 업고 찾아 온 아낙네가 가져온 고기 한 근을 거절하면서 마음이 짠했다는 부인 박옥미 여사도 천상 법관 부인의 절제와 기품을 지니고 있다. 이대법관 부부를 뵐 적마다 우선 온화하고 겸손한 인품에 머리가 숙여진다. 대법관 퇴직 후 고창 생가로 귀향하여 손수 땀 흘려 노동하여 버려진 고향집 주변을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꿨다.
모 방송사에서 아버지의 정원이란 다큐로 제작하여 인기 몰이를 하기도 했다. 고창에서 살 때도 대법관의 낡은 소형차와 낡은 구두를 볼 때마다 우리 공직자들에게는 채찍이 되었다. 우주는 하나의 꽃, 삶과 죽음 모든 생명체는 하나로 연결된다는 철학을 실천한 그는 생사를 초월하는 대선사의 풍모를 체득했다. 돌아가시기 전 해의 가을 구절초가 흐드러진 대법관의 정원에서 지역 예술인들이 열어준 작은 음악회 인사말은 생노병사를 초연한 도인의 경지였다. 암 판정 이후 여명이 2년쯤 된다 했는데 벌써 3년이나 살았으니 감사할 일이고 내년 음악회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미소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한마디로 인간 이홍훈은 수신제가를 잘 하신 요즘 보기 드문 된사람이다.
국민의 기본권 수호를 위해 헌신한 유능한 법관
노무현 정부 시절 2005년 문재인 수석이 대법원장 후보로 추천하고자 그의 의견을 물었으나 고사했다. 당시 수원지방법원장이던 그는 대법관을 거치지 않고 대법원장이 되는 일은 전례도 없고 바람직하지 않다는 공적인 이유였다. 법조인으로서의 그는 유능하고 소신 있는 진보적 판사였다. 환경법과 행정법에 정통하여 유명한 4대강 사업 집행정지 판결에서 반대하는 소수 의견을 내었고, 그 후 그의 소수 의견서는 4대강 연구 조사자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환경권·일조권을 인정하는 최초의 판례, 노동자 파업의 업무방해죄 구성 요건에서 노동자 권익강화 판례, 법원행정처에서 법원도서관 독립 등은 법관이 국민기본권의 마지막 수호자여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법관 이홍훈은 소신 있고 유능한 법률전문가였다.
은퇴 후에 귀향해서도 주로 공익적활동을 지속한다. 전북대 석좌교수, 사법발전위원장, 서울대 이사장, 법무법인 화우공익재단 이사장 등으로 사회공헌 사업에 힘썼다. 이찬희 전 대한변협 회장은 이홍훈을 "따뜻함과 올바름을 지닌 선배, 소수의견 등 개혁성향 판결로 강직한 이미지와 달리 한없이 소탈하고 푸근한 법조의 귀감"으로 평가했다.
고위 공직자, 은퇴 후 귀향하는 것도 '지방 살리기'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모든 수를 다 써봐야하는 비상한 시절이다. 이 대법관처럼 존경받는 고위공직자 출신들이 은퇴 후 귀향하여 봉사활동을 한다면 고향 후배들의 든든한 병풍이 되고 지역사회에 큰 도움이 된다. 고창군민 교양강좌를 앞두고 급하게 가신 대법관님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요즘 대법원장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법관 이홍훈이 사무치게 그립다. 이런 법조인이 없는 것인가? 안쓰는 것인가?
공자는 논어 자로편 중궁과의 대화에서 정치는 유능한 어진 인재등용이 긴요하고, 어진 이를 등용한다는 소문이 한번 나면 유능한 인재들을 계속 추천할 것이라고 했다. 고시출신 동기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레 장관감, 총장감, 대법관감이라는 깜냥 평판이 나돈다. 가까이서 여럿이 평가한 평판이라 거의 정확하다. 깜냥이 되는 인재를 추천하는 인사검증의 혁신, 하기 싫다는 사람도 깜냥이 되는 이를 찾아 쓰는 인사발탁으로 정부와 공직사회가 신뢰를 회복하길 바란다.
/글·사진=유기상(문학박사·전 고창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