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들
토요 시론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庭園)의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질 때,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동물원에 잡힌 범의 불안 초조가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독일의 문학작가 안톤 슈나크(Anton Schnack, 1892~1973)는 그의 시에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어디 그 뿐이랴. 가을이면 더욱 떠오르게 하는 그의 시 안에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많다.
”오뉴월의 장례 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바이올렛 색과 흑색과 회색의 빛깔들. 둔하게 울리는 종소리. 징소리. 바이올린의 G현. 가을 밭에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져 있는 비둘기의 털. 자동차에 앉은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유랑극단의 여배우들.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광대.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 날. 사무실에서 때묻은 서류를 뒤적이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 보름밤의 개 짖는 소리. ‘크누트 함순’의 두세 구절. 굶주린 어린 아이의 모습. 철창 안에 보이는 죄인의 창백한 얼굴.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는 하얀 눈송이...“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고 작가는 시에서 한탄했다. 지금 전라북도와 도민들이 처한 상황이 이 시와 닮았다. 아니 오히려 이 시보다 더 슬프게 하는 소재들이 많다.
전북도민들에게 새만금은 어쩌면
가을 밭에 보이는 연기보다도, 줄에서 떨어진 광대보다도,
굶주린 어린 아이의 모습보다도
더 슬프게 한다.
10조원 가량의 경제적 유발 효과를 낼 것이라고 자랑하던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 실패도 모자라 내년도 국가 예산 대폭 삭감의 된서리 앞에서 전북도민들은 치미는 슬픔을 억누르고 있다. 33년의 긴 세월 동안 숱한 정치인들의 감언이설(甘言利說)과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온상이 되어버린 새만금을 바라보면 더욱 슬프게 한다.
더구나 앞으로 20년도 더 걸릴 희뿌연 미지의 종착지를 갈망하며 완공의 그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도민들에게 새만금은 어쩌면 가을 밭에 보이는 연기보다도, 줄에서 떨어진 광대보다도, 굶주린 어린 아이의 모습보다도 더 슬프게 한다. 대통령이 무려 여덟 차례나 바뀌면서 기본계획이 대통령 바뀔 때마다 바뀌고, 심지어 총사업비가 43번이나 바뀌었다.
오락가락을 반복하는 사이에 가두어 둔 바다는 이미 썩을 대로 썩어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지경이다. 인근 바다 오염마저 심각한 상황이다. 그나마 환경단체 등의 끈질긴 주장에 못 이겨 2020년부터 정부는 야간 해수유통을 재개해 두 차례씩 새만금 배수문을 열고 있지만 여전히 바다 밑바닥은 산소가 없어 생물들이 살 수 없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안톤 슈나크는 ‘정원(庭園)의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질 때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했지만 지금 새만금에서 죽어가는 생명체들은 그 보다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많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와 김관영 민선 8기 전라북도는 새만금에 이차전지 특화단지를 조성하는데 올인하며 마치 새만금이 조기에 완공될 것처럼 이차전지 투자 실적을 자랑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새만금 빅 피처’를 외쳐대면서도 새만금 예산은 78%나 삭감하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이는가 하면 새만금 산업 생태계 기반시설을 마련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면서 은근히 이차전지 관련 기업 유치에 몰두하는 양태다.
'화학 에너지로 바꾸어 모아 둔 전기 에너지를 필요한 때에 전기로 재생하는 장치'를 통틀어 이차전지라고 부르지만 전북도의회의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원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한 위원은 ”영양가 없는 사업, 핵심 광물 및 리사이클링 분야의 최하위 사업“이란 지적을 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현 정부와 민선 8기 전북도정은 이차전지 특화단지를 마치 새만금을 대변하는 사업으로 포장하며 슬그머니 안착시키려는 형국이다. 제법 그럴싸하기는 하지만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새만금 이차전지 업체가 쏟아내는
고염도·고농도 폐수 바다로 그대로 방류?...
일본 핵 오염수 무단 방류만 탓할 문제 아니다.
당장 투자와 기업 유치에 목마른 전라북도는 그렇다 치자. 내년도 새만금사업 예산을 대폭 삭감해 놓고도 ‘빅 피처’를 다시 그리겠다며 시간을 벌어 놓고 정부가 하는 일은 고작 이차전지 특화전략 외에 특별히 내놓은 게 없다. 그러는 사이에 늘어나는 새만금산업단지의 이차전지 입주 업체들에서 발생하는 고오염도 폐수를 먼바다에 방류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방침이어서 해양 오염이 심히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새만금위원회가 이차전지 기업 투자 급증에 대비해 환경대책을 수립하기로 했지만 새만금산업단지에 유치된 이차전지 업체가 쏟아내는 고염도·고농도 폐수를 바다로 그대로 방류할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환경단체 등 일각에서 거센 비판을 제기하고 나선 이유다. 일본의 핵 오염수 무단 방류만을 탓할 문제가 아니다.
정부와 새만금개발청은 양극재나 전해질 등 이차전지 소재를 생산할 때 발생하는 폐수는 염도가 높아 자체 처리로 방류 기준을 맞춘 뒤 먼바다인 외해(外海)에 방류한다는 계획이지만 고염도 폐수는 미생물이 살 수 없어 공용 처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뜩이나 오염이 심각해져 가는 새만금 일대와 먼바다까지 오염을 확산시킬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 당연히 나올 만도 하다.
게다가 지난 2020년 군산에 제2공장에 이어 올해 제3공장까지 만든 새만금의 대표적인 이차전지 기업은 이미 헝가리 등 유럽에서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지어 환경오염이 우려되는 폐기물 허용치 1,600톤을 초과해 공장에 보관하다가 2억여원 상당의 과태료를 문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충격을 주었다.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해당 기업이 전라북도와 새만금개발청 등이 자랑하는 이차전지 선두기업이란 점이다.
해외에서 이미 인체에 해로운 유해 물질임이 알려지면서 해당 국가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운영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는 등 반발이 끊이지 않는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됐을 정도다. 코발트‧니켈‧리튬 등 이차전지 양극재 원료를 폐배터리에서 추출해 전지 제조회사에 공급하는 이 업체는 배터리 재활용의 선두주자로 꼽히지만 실상 폐기물 처리가 쉽지 않은 유해 산업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준 사례다.
그럼에도 이차전지는 내년도 전라북도정의 주요 사업으로 꼽히는 등 벌써 새만금 입주 예정 기업 68개 가운데 25%인 17개가 이차전지 기업으로 메워졌다. 이러려고 33년의 긴 세월을 기다려왔단 말인가?
해외에서는 이미 기피 혐오 업종으로 통하는 이차전지 기업들
새만금에 우후죽순 자리 잡고 있는 모습, 더욱 슬프게...
설상가상, 기존에 추진돼왔던 사업들이거나 유치된 기업들의 투나 실적까지 현 정부의 실적으로 둔갑시키며 국가 예산의 조삼모사식 지원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묻지마 삭감으로 시간을 더욱 늘리고 있으니 도민들을 슬프게 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기피 혐오 업종으로 통하는 기업들이 새만금에는 우후죽순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은 더욱 더 슬프게 한다.
오죽했으면 한 전북도의원은 "이차전지라는 건 서울·경기 등에서는 친환경적이 아니라고 해서 조례로 유치 규제가 묶여 있다“며 ”다른 지역에서는 못 오게끔 하는 기업들이 새만금에 우수수 들어오는 게 말이 되냐“고 흥분할 정도다. 가뜩이나 새만금산업단지 인근에서는 최근 이차전지 업체들에서 가스 등 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지난 5월 이후 매달 발생하고 있어 주민들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겉으론 친환경을 내세우면서도 단 하나의 기업 유치에 목마른 새만금개발청과 전라북도가 이차전지 기업의 유해성을 알고서도 투자 성과에만 급급하는 모습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안톤 슈나크가 오늘의 이런 전북의 모습과 새만금의 처지를 본다면 어떻게 표현할지 자못 궁금하다. 아마 이런 표현을 그의 시 말미에 덧붙이지 않았을까?
‘정치 사기꾼들의 무성한 감언이설에 죽어가는 수많은 생명체들과 회색의 빛깔들, 바로 그 곳 새만금 안에 갇힌 도민들의 창백한 표정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