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자전거를 탔을 뿐인데...동네가 보이며 즐겁고 행복해지네요"

김길중의 자전거 이야기(25)

2023-11-07     김길중 기자
11월 4일, 이 프로젝트의 마무리였던 두번째 자전거 행진에 앞서 가진 시상식 한 장면.

전주 혁신동 주민들의 흥미로운 도전, '자전거로 혁신을 꿈꾸다'

​정치와 현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때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등장하는 멘트가 있다. ‘지방의회가 왜 필요하지?’, ‘국회의원? 세비나 축내지 하는 일이 뭔데? 300명이 아니라 100명으로 확 줄여야 해!’, ‘선진지를 돌아보고 온다고? 관광이나 가는 거 아냐?’와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정치의 역할과 효능감, 그리고 현실에 대한 불신의 집약이라 할만하다. ​

이런 물음은 정당하며 현실에 관한 진지한 해법이 될 수 있을까?

4월 30일 진행했던 '2023 유럽 자전거 원정대 대시민 보고회'. 혁신동 복합문화센터에서 주민과 시민등 100여명이 참여하였다. 사진은 모두 마친후 가진 기념사진.

공무연수에서의 영감을 주민들과 공유하다 

지난 봄에 장기간에 걸쳐 유럽 자전거 원정대에 관한 연재기사를 썼다. 그 이후에 벌어진 일에 관한 이야기를 두 번에 걸쳐 정리해 본다. 준비과정과 진행과정, 그리고 보고회와 토론회라는 후속 작업까지 이어진 이 사례는 여러 사람들에 의해 회자되고 있다. 보고회를 가지고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었지만 담아 오고자 했던 고민과 영감은 현실과 실제로써 거듭 태어나고 있는 중이다.

보고회는 애초 ’팔복 예술공장‘에서 진행하기로 되어 있었다. 공간의 협소함이라는 문제도 있었지만 ’ 팔복동‘에서 ’ 혁신동‘으로 바뀐 데는 사연이 있다. 원정대원의 일원이었던 지역구의 시의원이 이 행사를 혁신동으로 ’유치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네덜란드와 파리에서의 일정 중 가지게 된 영감을 연수기간 틈틈이 보고 느낀 바를 지역주민들과 공유했다고 한다. 9박 10일이라는 일정 중 완성된 구상을 여러 일행과 상의하며 가다듬어 나가기 시작했다. 보고회 장소를 혁신동으로 ‘유치’한 배경이다. ‘혁신동이 만들 수 있는 미래를 이곳에서 보았습니다. 도시를 이렇게 활용하는 게 우리의 이익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어요'등의 표현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와 사례 근거를 반복적으로 올렸고 차츰 주민들 사이에서 ’그럼 해보자 ‘라는 식으로 공감이 확산되어 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4월 말의 보고회 이후 이런 구상을 보다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물론 외부 전문가들과도 상의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혁신동은 도로나 지형 등의 여건상 자전거를 탈만하다’, ’도로를 만들어주면 타겠다‘가 아니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타니 도로를 만들어 달라‘가 훨씬 자연스러운 접근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아진 의견이 ’우리가 참조할 만한 선진지 사례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토론해 보며 우리에게 적용할 변화를 같이 의논해 나가자‘였고 한편의 서사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전주시 혁신동에 위치한 '혁신동복합문화센터'. 이곳에서는 올해 여러번의 자전거 관련 행사가 진행되었다. 사진은 9월 23일의 첫번째 주민학교에서 '자전거로 꿈꾸는 혁신도시의 혁신'이라는 주제의 강연이 진행되기 직전의 참가자들 소개 사진이다.

전주 혁신동에서 이뤄지고 있는 실험...주민들이 도시를 바꾸고 혁신을 이야기 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두 달여의 일정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우선 9월 23일 첫 번째 배움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필자가 ‘자전거 전문기자’로써 강연하게 되었고 제목은 ‘자전거로 꿈꾸는 혁신도시의 혁신’이었다. 세계의 많은 도시는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꾀하고 있으며 그 변화의 성공 배경에 ‘시민들의 힘’이었다는 요지였다.

10월 11일에 가진 두 번째 강좌는 ‘대중교통과 자전거, 보행자가 편리한 도시’라는 주창자 정석 서울 시립대 교수의 이야기 마당이었다. 특유의 진지한 주제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어내는 재미난 강사 덕분에 이해가 깊어지기 시작한다. 두 번의 강의에 각각 50여 명 이상의 주민들이 참여하였다. 자전거를 많이 타는 유럽의 선진지 사례를 이리저리 접해보지 않았을 리 없는 주민들도 두 번의 강좌가 진행하다 보니 차츰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모양이다. 어느 참여자의 소감을 그대로 옮겨보겠다.

“사회자의 말처럼 재미는 없었지만(?) 의미는 있었습니다. 사실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습니다만 보고 들으니 생각이 많이 달라지더군요. 시민들의 협조와 참여를 기대하고 꾸준히 한 걸음씩 나간다면 벨로혁신의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들의 성공과 우리가 접한 거듭된 실패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지’, ‘이런 일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등에 관한 진지한 고민과 토론이 이어져 나갔다. 보고 듣고 배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직접 타보는 것’. 두 번의 자전거 행진을 가졌다. 아울러 10월 10일부터 3주간 진행된 ‘자전거 출퇴근 챌린지’를 진행하였다. 하루에 진행된 행사가 아니라 두 달여를 걸쳐 연인원 수백 명 이상의 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만들어진 퍼포먼스는 11월 4일에 진행된 ‘출퇴근 챌린지 시상식’ 및 ‘자전거 행진’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두 번째 자전거 행진과 시상식 진행에 앞서, 혁신동의 지도에 자기가 사는 위치와 문제점 해결을 위한 내용등을 담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자전거를 타니 부지런해졌어요. 그리고 동네와 이웃이 보이네요...보너스는 그야말로 덤!!!" 

이번에 진행된 ‘출퇴근 챌린지’에서 혁신동 자전거왕 2위를 차지한 신철 씨는 금암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이다. 오래전부터 자전거를 타왔다는 신 씨는 우연하게 접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내뱉은 마지막 말은 ‘도전과 성취’였다고 한다. 가끔씩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기도 했고 작년부터는 레저 목적으로 가까이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신철 씨에게 챌린지는 꽤나 많은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단다.

시작하다 보니 ‘기간 내내 자전거로 출퇴근을 해보자’는 목표가 만들어졌고 의외의 여러 소득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여유가 있을 때는 조금 우회하거나 더 가보는 방식으로 챌린지를 하게 되었고 덕분에 여러 길을 다녀보게 되어 좋았다고 한다. 남부시장의 새벽장을 지나치면서 사람 사는 풍경들을 생생하게 접하기도 했다. 3주 동안 달린 거리는 모두 670여 Km로 하루 평균 30Km가량을 달린 것이다. 출퇴근 거리는 편도 10Km이니 ‘챌린지’가 신철 씨의 3주를 좀 더 길게 만들어준 것일까?

“무엇보다 부지런해진 게 남는 것 같아요. 출퇴근 비용 절감은 보너스였던 것 같고 활력이 넘치는 3주였어요. 제일 중요한 건 몸에 베이는 습관과 익숙함으로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겨울이 되면 어떻게 다닐지를 알아보면서 방한모와 발열장갑 등을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습관으로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라며 (챌린지)이후의 포부를 밝힌다.

​혁신동의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황수덕 씨는 “의미가 깊었던 시간 같아요. 무엇보다 주민들 스스로 동네를 살기 좋게 만들어가는 주인공으로 상정한 프로그램 취지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유럽에 다녀온 연수단의 고민이 주민에게 공감하는 과정을 가지고 우리 동네에서 현실로 만들어 가니 뿌듯하기도 합니다. 출퇴근 챌린지에 열심히 참여했는데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된 것도 기분 좋은 일입니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야말로 도시를 이롭게 하는 공이 많은 사람들이잖아요? 전기차 보조금에 수천만 원이 지원되는 것에 반해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는 대접이 없습니다”라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날 행사에서는 아이가 어른들에게 편지를 전달하는 퍼포먼스도 펼쳐졌다. 아이가 전달한 편지의 내용을 펼쳐보이고 있다. 주민들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벨로 혁신'이라는 주민조직을 발족하였으며 향후 자전거를 즐기고 혁신동을 살기좋게 만들어가는 주역이 될것을 다짐하였다.

10월 10일부터 시작되어 3주간에 걸친 챌린지 기간에 279 킬로미터를 주행하였다. 이 기간 중 4킬로미터 이상씩 자전거를 탄 날이 20일. 이 덕분에 챌린지 성공 상품과 자전거왕 4위를 기록한 것까지 포함해 모두 23만 원의 상품권을 부상으로 얻을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나무를 얼마나 심어 가는지에 관한 효과, 환경이나 도시에 어떠한 경제적 이익을 만들어 내는지가 잘 연구되고 홍보되면 좋겠어요. 나아가 자전거가 도시교통 분담률을 얼마까지 올릴 수 있을지, 건강회복으로 건강보험지출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등 다각적으로 연구가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효능감을 주는 세련된 정책으로 연결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어요”라며 개인을 넘어 사회적 시각으로 해석하고 제안하기도 하였다.

​주부이자 재택근무를 하는 진여원 씨는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챌린지 시상식’에서 흥미로웠다는 후일담을 밝히기도 했다. “집에서 일을 하는데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탔습니다. 덕분에 우리 동네를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었는데 매우 아름다운 곳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이렇게 상까지 타게 되어 정말 즐거웠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힌다.

​지역구 신유정 신의원은 “자전거를 간간히 이용하기는 했지만 저에게도 주민들에게도 즐겁고 유쾌한 계기가 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전거 행진을 같이 하면서 눈앞에서 보이는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됐고 같이 타는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요. 생각했던 것보다 직접 접하게 되니 혁신도시가 정말 자전거를 탈만하다는 확신도 들었고 인프라를 크게 손보지 않고도 잘만 활용하면 혁신도시의 설계 목적에 맞게 도시를 활용할 수 있다는데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의 짧은 기간의 행사가 아니라 보다 많은 주민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정착하고 혁신동의 변화가 이뤄지는 움직임으로 이어지면 좋겠다는 주문과 스스로의 정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계속)

/김길중(자전거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