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하여
이화구의 '생각 줍기'
요즘 한국의 직장인들 정년이 60세라고는 하나 공무원, 공기업, 교수(65세 정년) 등 일부 직종을 제외하곤 60세까지 한 직장에서 버티기가 쉽지 않습니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직장인이 근무한 회사를 그만두는 나이는 평균 50세 미만이라니 법정 정년보다 10년이나 빠르며, 명예퇴직 등으로 50세 이전에 직장을 나오는 경우가 그만큼 많습니다.
그러면 그만두고 나서 노후에는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가 문제인 거 같습니다. 특별한 대안이 없는 점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60세까지는 어떤 직종에 종사하던 일을 해서 벌이를 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옛날 사람들은 인생을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점이 궁금합니다. 이런 때 생각나는 분이 왕자의 지위와 처자식도 버리고 출가한 인도의 성자 석가모니의 일생이 그려집니다.
고대 인도의 전통을 모르는 분들은 석가모니의 출가를 무책임하게 가정을 버린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당시 인도인이라면 출가는 평생 한 번은 겪어야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고대 인도인들은 인생을 4단계로 생각하였습니다.
첫째는 학습기(學習期)입니다. 태어나서 지금 나이로 계산하면 약 30세까지의 기간으로, 이 시기는 스승으로부터 삶의 경험과 지혜를 배우는 기간이었습니다. 둘째는 가주기(家住期)로 지금 나이로 추정하면 대략 60세까지의 기간으로 이 시기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경제활동을 통해 부(富)를 추구하며 사회적인 의무를 다하는 기간인 셈입니다. 자신을 키워준 부모와 조상에 대한 은혜에 보답하는 측면도 있는 셈입니다.
셋째는 임서기(林棲期)로, 한때 한국에서 중장년들의 로망이었던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숲속에 머무르는 기간으로서 지금 나이로 보면 대략 70세까지의 기간입니다. 그동안 사회적인 의무를 다하였으므로 이제부터는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시간을 투자하는 단계인 셈입니다. 숲에서 명상과 고행을 통해 수행함으로써 해탈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넷째는 유행기(遊行期)로 삶의 마지막 단계로서 세속적 집착을 완전히 버리고 무소유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시기로 걸식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더러는 길에서 죽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한국의 유명한 천문학자 한 분도 자신의 시신을 병원에 기증하기로 등록하고 ‘기증희망등록증’을 항상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자신이 길 위에서 죽으면 등록증을 발견한 사람이 병원에 전화하면 바로 시신을 가져가도록 해놓고 사시는 분도 계십니다.
우리 인간은 짧게는 순간순간, 시간적인 측면에서는 하루하루, 일생으로 보면 평생동안 깨달아가면서 깨달은 바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며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인간은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계속 발전해 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사회로부터 은퇴했다고 매달 나오는 연금으로 백세까지 살기 위해 운동이나 하거나 이곳저곳 여행하며 맛집이나 찾아다니며 인생을 즐기는 건 바람직한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그동안 나를 키워준 주변에 대한 보답으로 주변의 어려운 분들을 돕는데 기여를 하는 게 인간다운 삶을 살다가 가는 것일 겁니다. 인간의 삶은 크게 나눠보면 서른까지 공부하고 예순까지 일하고 그다음부터는 남을 섬기고 남을 가르치고 남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게 바람직한 인생의 삶을 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께서는 인간은 태어나서 배우고 일하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3단계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세 번째 단계라는 겁니다. 서양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도 인생을 미적 실존의 단계, 윤리적 실존의 단계, 종교적 실존의 단계 등 3단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의 삶도 1단계는 공부하는 때이었고, 2단계는 목수로 집 짓는 시절이요. 3단계는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공자님의 일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단계는 공부하는 것이요. 2단계는 벼슬하는 것이요. 3단계는 온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이상 국가를 세워보자고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자님께서 설하신 논어나 주역이란 책들도 모두 3단계인 68세부터 73세에 나온 것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서른에 죽었다면 예수님의 삶은 그냥 목수로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마지막 3년을 사시는 동안에 복음이 나온 셈입니다. 인생의 1단계와 2단계 만을 살다 간 분들은 참 인생을 모르고 산 사람인 셈입니다. 이처럼 인생에 있어 세 번째 단계가 가장 중요한 시기인 거 같습니다. 그러니 3단계를 살아야 진짜 사는 것입니다. 성인(聖人)이라는 분들은 모두 이 3단계를 살다 가신 분입니다.
물론 대한민국 60대 이상의 많은 퇴직자들이 국민연금으로 생활하기에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퇴직 이후에도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아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기는 합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먼저 태어나 훨씬 더 어려운 시절을 살다 가셨던 분들의 지혜를 배워 보다 나은 인생 후반을 설계하며 살아가는 게 더 절박한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글·사진: 이화구(CPA 국제공인회계사·임실문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