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가 횡행하는 지금, 우리는 도대체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인가?

백승종의 역사칼럼

2023-10-31     백승종 객원논설위원
백승종 역사학자

윤리적 인간의 시대 -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선비의 가치관이 사회 전체를 지배했다. 그때는 도리(道理), 즉 의리와 지조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었다. 이런 가치관이 한 세상을 풍미하게 되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선비들의 상당한 희생과 노력도 요구되었다. 그것은 성리학이 처음 수용되고 200여 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15~16세기, 조정에서 배척당한 선비들이 조선 사회 곳곳에 둥지를 틀었다. 그들은 강학(講學: 학문을 닦고 연구함)에 몰두했다. 그리하여 조선 사회의 분위기가 점차 달라졌다. 방방곡곡에 ‘윤리적 인간’을 으뜸으로 여기는 풍조가 널리 퍼졌다.

선비다운 선비를 등용하자는 목소리도 커졌다. 과거제도의 폐단을 지적하고, 대안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어떻게 하면 선비를 제대로 기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선비들도 적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논의의 한복판에는 출처(出處)의 문제가 자리했다. 과연 선비는 언제 벼슬에 나아가고, 언제 물러서야 하는가. 이를 둘러싼 숙의가 거듭되었다.

윤리적 인간은 선비의 이상형이었다. 보통 우리가 군자(君子)라고 부르는 이를 말한다. 당연히 그는 출처의 달인이어야 했다. 17세기부터 여러 당파 간의 정쟁이 더욱 격화되자, 출처의 문제는 더욱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었다. 때로 그것은 선비의 목숨이 걸린 중대 사안이었다.

타인에게는 윤리적인 삶을 강요하는 세상

서양의 기사와 젠트리에게 출처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의 사무라이들에게도 낯선 개념이었다. 그들은 어떤 경우가 되었든지 지배 권력의 일부로서 기능하는 것 이외에 다른 가능성이 없었다.

즉, 현실권력의 일부라는 뚜렷한 정체성이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선비들의 생각은 달랐다. 나아갈 때를 판단하는 것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이 물러설 때를 정확히 아는 것이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윤리적인 가치를 실천하느라 애쓰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도, 타인에게는 윤리적인 삶을 강요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타인의 위장전입과 배임 혐의, 그리고 그 유명한 표창장 한 장은 끝까지 추궁해야 되는 것이고, 내가 사용한 수십억 원의 공금은 백지 영수증이라도 좋다는 이율배반이 이 세상의 공기를 지배한다.

자신들은 날마다 가짜뉴스로 지면을 도배해도 괜찮으나, 페이스북에는 단 한 글자라도 권력자에 대한 혐오와 비판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억지가 횡행한다. 우리는 지금 도대체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인가.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