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책임 증발한 '새만금잼버리 실패' 그 이후
토요 시론
“세상에는 늘 속이는 자와 속는 자가 존재한다. 진실 입장에서는 둘 다 위험한 존재다.”
미국의 과학철학자 리 매킨타이어(Lee McIntyre)는 그의 저서 ‘포스트 트루스’(Post-truth)에서 이렇게 썼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진실을 소중히 여긴다면 반드시 인지편향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 인지편향(認知偏向)은 경험에 의한 '비논리적 추론'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진실보다 감정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사실과 진실의 가면을 쓴 거짓들을 마주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인지편향에 늘 노출돼 있다.
그래서일까. 리 매킨타이어는 사실보다 감정이 여론 형성에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포스트 트루스’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러한 현상이 더욱 잦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한 이른바 ‘탈진실’이 건강한 토론을 막고 혐오를 부채질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고도 경고했다.
반복된 언론의 의제설정 효과와 인지편향
바로 우리 현실 앞에 던져진 새만금잼버리 파행과 실패 문제가 그렇다. 진실과 책임이 증발한 채 인지편향이 난무하고 심지어 전체주의 그림자가 기웃거린다. 6년 전 전북도민들은 “새만금잼버리 유치는 전북에 7조 이상의 엄청난 유무형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도지사의 말 중 다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가치는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 유무형의 가치가 '낙후 전북'이란 이미지를 탈피시킬 기폭제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기여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한 믿음을 갖게 한 데는 반복된 언론의 의제설정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앵무새와 필경사처럼 거의 6년 동안 새만금잼버리의 경제적 낙수효과를 반복하며 도민들의 눈과 귀를 세뇌한 '친관' 언론들이 그 역할을 했다. 당시 송하진 전 전북지사는 7조 이상의 경제적 효과는 물론 ”지금까지 세계잼버리대회는 완공된 지역에서 개최됐지만 새만금지역은 개발을 해야 하는 곳에서 대회를 치러야 한다”며 “지금부터 공항과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을 구축해 전 세계인들이 새만금에서 야영하고 싶은 지역으로 만들겠다”고 언론을 통해 포부를 밝힌 바 있다.
2017년 8월 1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개최된 세계스카우트연맹 총회에서 ‘2023 세계잼버리대회’를 새만금에 유치하는데 성공한 송 전 지사가 그해 8월 31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밝힌 내용이 대부분 지역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전주시장을 두 번 연임하고 2014년 도지사로 당선된 이후 다시 도지사 연임에 도전을 앞둔 터라 파급력이 컸다.
'선거용'이라는 의심도 할 만 했을 텐데 당시 언론들은 무비판 일변도로 그의 잼버리에 관한 말이라면 동조하며 힘껏 날개를 달아주거나 애드벌룬을 띄웠다. 그러니 이를 바라본 도민들은 사실과 진실로 받아들일 수 밖에. 아닌 게 아니라 그는 도지사 연임에 성공한 뒤에도 언론(인)과 마주할 때면 늘 새만금잼버리 유치를 자화자찬하며 성공적 개최와 그에 따른 경제효과를 빼놓지 않고 자랑했다. 자신의 유일한 치적 중 하나로 자부했다.
세상에는 늘 속이는 자와 속는 자가 존재
리 매킨타이어가 지적했던 ‘세상에는 늘 속이는 자와 속는 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이. 그러더니 어느덧 선거철이 다가오고 다시 3선 연임에 자신만만하게 도전했던 그는 '김관영'이라는 정치 신예의 파죽지세에 밀려 전북도 수장 '3회 수성'에 실패하고 말았다. 새만금잼버리를 불과 1년 앞두고 퇴장한 송 전 지사의 그동안 공언과 달리 본대회 1년 전인 2022년 치렀어야 할 프레잼버리가 취소되는 등 불안한 징후를 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결국 잼버리 본대회를 앞두고 송 전 지사의 바통을 이어받은 김관영 지사는 잼버리집행위원장 역할을 맡아 마무리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자부하며 역시 성공적 개최를 자신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막상 본대회가 시작되자마자 위기를 느꼈는지 신발 끈을 조여매고 부안 새만금잼버리 현장으로 급히 달려가 텐트를 치고 위기 관리의 야전사령관으로 나선 모습이 많은 언론에 부각됐다.
그는 당시 언론 인터뷰 때마다 '스카우트 정신'을 강조하며 성공 개최를 장담했건만 결과는 허무하게도 파행과 실패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여기서 ‘파행’이라고 부른 이유는 당초 운영하기로 했던 잼버리 계획에 훨씬 미치지 못했거나, 많은 참가자들의 이탈 속에 전혀 다른 프로그램들이 땜질식으로 대체 운영됐기 때문이다.
전북-새만금 이미지 동시 실추...책임론 앞에선 모두 '손사래'
동시에 ‘실패’라고 부른 이유는 당초 새만금에서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겠다는 계획과 달리 대회 중도에 전 참가자들이 조기 철수한 데다 경제적 낙수효과 대신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전북과 새만금 이미지가 동시에 실추되고 망신살만 뻗쳐 득보다 실이 많은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결과가 전적으로 전북도와 현 도지사의 책임만은 아니다. 새만금잼버리 개최 이후 파행을 겪는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최종 판단과 결정은 대통령과 국무총리, 조직위원회에서 이뤄지고 실질적인 집행은 전북도와 부안군 등을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대규모 국제행사인 만큼 새만금잼버리조위원회와 별도로 정부지원위원회가 구성돼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실무위원회(위원장)는 여성가족부(장관), 공동조직위원회(위원장)는 여성가족부(장관)와 행정안전부(장관),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윤덕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전주갑), 한국스카우트연맹(총재)으로 구성됐다. 모든 기관·단체장이 당연직으로 위원장 역할을 맡았지만 유일하게 개인 자격으로 위원장을 오랫동안 맡은 사람은 김윤덕 의원 뿐이라는 점에서 더욱 책임론이 강하게 지목되고 있다.
여기에 전북도(도지사)는 집행위원회(위원장)의 역할을 맡아 조직위원회와 함께 실무 준비 등을 해왔으니 복잡한 역할과 책임 구성 시스템에서부터 실패의 조짐은 이미 엿보였다. 그럼에도 잼버리대회가 성공적으로 끝났더라면 각자가 모두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웠을 텐데 아쉽게도 파행과 실패로 막을 내리자 책임론 앞에서 모두가 고개를 떨구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전 국민과 도민들 앞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아마 본인들만 모르고 있는 듯하다. 잼버리 종료 이후 파행 원인과 실패 책임을 규명하겠다던 정치권은 내내 정쟁으로 시간을 허비해왔다.
'거짓' 방관하면 위험한 재앙, '독재' 시작
그러더니 24일 열린 전북도에 대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새만금잼버리 파행과 실패 책임을 놓고 여야 국회의원들은 '네탓' 공방을 벌이며 고성만 오갔을 뿐 진실의 실체에는 전혀 다가서지 못했다. 책임을 회피하느라 가시 돋친 설전이 오가면서 이날 국감은 알맹이 없는 ‘맹탕’으로 막을 내렸다.
지금도 전북도에선 감사원의 감사가 대규모로 진행 중이지만 결과에 대해 얼마나 공감과 신뢰를 얻을지 의문이다. 결국 리 매킨타이어의 말처럼 진실 앞에서는 모두 거짓이거나 위험한 존재들 뿐이다. 그러나 그는 "거짓을 방관하면 언젠가 위험한 재앙과 독재가 시작된다"고 했다. 끔찍한 주장이지만 바로 우리 현실 앞에 직면해 있는 난제이다.
“전체주의자들이 노리는 대상은 참과 거짓을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지적했듯이 새만금잼버리 파행과 실패에 대한 참과 거짓을 분간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은 자신과 정당의 권력과 권위를 절대화하는 전체주의를 꿈꾸는 자들로 비쳐지기에 충분하다. 지금 그들이 국민 앞에 보여주고 있는 행태를 놓고 보면 그렇다. 진실과 책임이 증발한 이 시점에서 영국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 한 말을 소환하여 대신 마무리한다.
“거짓이 판치는 시대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곧 혁명이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