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나니 모두 꿈이었다
신정일의 '길 위에서'
나이가 들수록 밤에 꿈이 많다. 자고 나면 기억조차 희미한 꿈이 있는 반면 아침에 일어나면 생시인 듯 선명한 꿈도 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던지 옛 사람들의 꿈에 대한 글도 심심치 않게 많이 있다.
“나는 꿈이 너무 많아요.
창밖의 문 두드리는 소리
꿈속의 나를 깨운다.
이 차가운 목소리
나를 어두운 밤에 헤매게 하는가?
아, 서광(瑞光)은 어디에 있는가?
보잘 것 없는 힘, 나를 미치지 않게 하길.
방안으로 스며온 차가운 바람
나의 불씨를 살리지 말게. 등불은 꺼져도
마음속의 작은 불꽃은 사라지지 않아.
그렇지만 바람 속에서 다시 타오른다면
나의 마음을 모두 태우고 말겠지.
내 너를 어찌 지켜줄까?“
중국의 시인 주작인의 <몽상자적비애(夢想者的悲哀)>라는 시 한 편이다. 몽상자만 꿈을 꾸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인생도 알고 보면 봄날 하룻밤 꿈과 같은 것이라서 사람들은 '지나고 나니 모두 꿈이었다'고도 이야기한다. 또한 '인생은 뜬 구름(浮雲)과 같은 것, 어젯밤 꿈만이 꿈이 아니라 오늘의 꿈도 깨고 나면 꿈이다'라고도 말한다.
“꿈이 다가온다. 강물을 타고 사다리를 넘어, 방파제를 넘어서 온다. 선 채로 꿈을 이야기하고, 그들은 아는 것이 많은데, 어디서 왔는지를 모른다. 우리를 꿈속에 넣지 못하고 부질 없이 팔을 쳐드니.“
프란츠카프카의 <꿈>이라는 짧은 글이다. 과연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 해답을 알 수 없는 것처럼 꿈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깨어서 꿈꾸던 일을 생각하면 행동한 것이 다 망작(妄作)이고, 본 것이 다 환상(幻想)이다. 대체로 꿈속에 있는 자는 그것이 환상임을 깨닫지 못하고, 생각이 깬 것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고는 도리어 꿈 밖으로 벗어난 말을 가리켜 허탄(虛誕)하다고 한다."
김대현(金大鉉)의 <술몽쇄언(述夢瑣言)>에 실린 <망환(妄幻)>이라는 글이다. 겨울은 이제 시작도 안 했는데, 추운 겨울밤 나는 얼마나 허망한 꿈으로 긴 밤을 지새울 것인가? 두려우면서도 기다리는 꿈, 그 꿈을 에피쿠로스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꿈은 신적인 본성을 가지지 않으며, 예언적 힘을 가지지도 않는다. 꿈은 영상들의 유입 때문이다.”
에피쿠로스의 말처럼 ‘영상들의 유입‘이며, 그 꿈이 어둡고 쓸쓸하고, 무섭고도 아픈 꿈일지라도 밤마다 꿈이 찾아오지 않는 것보다 꿈이 찾아오는 것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정여립이 1589년에 의문사한 죽도.
인위적으로 만든 죽도 폭포를 지나 강물은 그날의 그 꿈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그저 유유히 흐르고 있다.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