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부작(述而不作)'과 '가짜 뉴스'의 합리화
백승종의 역사칼럼
사실대로 보도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그 사실이란 매우 단편적인 것뿐이지요. 조각난 단편으로는 서사가 만들어지지 않지요. 가령 어떤 사람이 한강 다리 아래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명확한 사실처럼 보이나, 그것도 실은 꽤 복잡한 이야기가 될 수 있어요.
사실 보도와 역사를 쓰는 작업
스스로 떨어졌는지, 누군가 떨어뜨렸는지를 확인해야 하고요. 만약 스스로 떨어졌더라도 그 일이 실수였는지, 계획된 것인지도 알아야지요. 계획된 것이라면 그 배경은 무엇인지도 밝혀야지요. 누군가 밀어뜨린 것이었다면 문제는 더 복잡합니다. 한 마디로, 누군가 한강 다리에서 강물 속으로 떨어졌다고 할 때 그 사건을 간추려서 글이나 말로 기록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성가신 일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날마다 접하는 굵직한 정치적 사건이나 경제 변화에 관한 이야기는 어떠하겠습니까. 전문 지식이 없이는 판단도 할 수 없고, 관련된 모든 정보에 접근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 옛날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는 '역사'는 또 어떠하겠습니까. 역사 속 인물은 모두 사라지고 없지요. 궁금한 일은 많아도 그 일에 직접 간접으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호출할 방법이 하나도 없지요. 게다가 남겨진 기록도 대개는 어떤 목적으론가 왜곡된, 즉 '오염된 기록'뿐입니다.
<<조선왕조실록>>도 <<승정원일기>>도 <<난중일기>>도 <<징비록>>도 <<고려사>>도 대학자의 문집도 모두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조작되고 오염된 것입니다. 이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정말 불행한 일이지만, 남아 있는 기록이라고 해서 무조건 믿을 수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역사를 쓰는 작업은 단순히 일어난 사실을 꼬박꼬박 적어내는 단순한 작업이 아닙니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자신들 입맛에 맞는 보도만을 믿으라고 강요하기 위해 지어낸 것에 불과
역사를 쓰는 작업은 창작입니다. 경제나 정치에 관한 논문을 쓰는 일도 사실은 다르지 않습니다. 신문 방송에 나가는 보도기사를 쓰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심하게 들리겠으나 자연과학에 관한 논문이나 책을 쓰는 일도 큰 틀에서 보면 비슷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장면도 누가 찍느냐에 따라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셔터를 누르는가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그림이 나오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누구나 잊어버리기 쉬운 사실입니다. '내가 겪어서 다 안다!' 이런 간단한 주장으로는 다른 사람을 제대로 설득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지배 권력은 사실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라는 구호를 앞세웁니다. 이런 구호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주류 언론의 보도만을 믿으라고 강요하기 위해 지어낸 것에 불과합니다. 최근에는 집권층에게 불리한 '뉴스타파'의 보도를 아예 인용조차 하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과연 '가짜 뉴스'란 무엇일지를, 우리는 깊이 생각하여야 할 때입니다.
20년쯤 전에 저는 '술이부작(述而不作, 사실대로 서술하고 멋대로 자기 생각을 쓰지 않는다)'이라는 억지에서 벗어나 '술이작(述而作)'을 하자고 주장하였습니다. 어차피 창작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보다 책임감 있고 양심적인 태도로 글을 쓰자는 것입니다. 헌법에도 명시된 이른바 언론의 자유란 '술이작'의 세계관을 허용하는 것으로 읽는 것이 당연합니다.
※참고: '술이부작' - 저술한 것이지 창작한 것이 아니라는 말로, 저술에 대한 겸양을 나타내기 위해 쓰는 말이다. 『논어』의 술이편(述而扁)에 나오는 말로, 공자는 자신의 저술에 대해 “나는 옛사람의 설을 저술했을 뿐 창작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창작’이 오히려 문제가 되는 역사연구에서는 다른 의미로 쓰일 수 있으며, 어느 정도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미시사 연구에서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한국 미시사 연구의 제1세대 선두주자’인 백승종은 역사서술에서 술이부작(사실을 기록하되 지어내서 쓰지는 않는다)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차라리 술이작(기록하되 제 생각대로 쓰는 것)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동원하는 허구조차도 근거 없이 ‘날조’해선 안된다는 걸 전제로 한 입장이다. - 선샤인 논술사전
※참고문헌: 한승동, 「“조선의 예언서는 미신이 아닙니다”(백승종 인터뷰)」, 『한겨레』, 2006년 12월 1일, 책·지성섹션 11면; [네이버 지식백과] 술이부작 [述而不作] (선샤인 논술사전, 2007. 12. 17., 강준만)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