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녀' 뽑는 대회 말고 '사신선' 뽑는 대회로 변경하면 어떨까?

이화구의 '생각 줍기'

2023-09-04     이화구 객원기자

고향 마을 앞에 있어 어릴 적에 친구들이랑 진달래와 오디를 따 먹고, 물장구 치며 놀던 추억이 서린 ‘사선대(四仙臺)’는 사선(四仙)의 전설이 살아 숨 쉬는 강 언덕으로 현재는 국민광광지로서 사시사철 상춘객과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는 곳입니다. 특히 ‘사선문화제’를 중심으로 그 역사의 숨결을 이어오고 있어 오늘은 재경관촌면향우들과 함께 고향 땅에 내려왔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은 비록 어린 시절을 보내다 떠났어도 우리의 탯줄을 묻은 곳이라 그런지 고향은 언제나 이름만 들어도 가슴 한켠에 아련한 옛 추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비록 고향을 떠났어도 고인이 되신 조상님에 대한 최고의 효도는 고향 분들이 조상님 이름 석 자를 기억하며 "저 친구가 누구네 집 자식이지" 하면서 돌아가신 조상님을 기억해주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저도 나이가 들고 동네 어르신 분들도 하나둘 세상을 뜨시고 나니 저를 기억해주는 분이 없다고 서운할 건 없는데, 돌아가신 조부모님과 부모님 이름 석 자를 기억해주는 분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저를 슬프게 하는 거 같습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350여 년 전쯤 우리 동네 주천리(배나드리)는 상산(상주)이씨 이여옥 선생의 이주로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합니다.

사선대를 소개하면서 많이 인용되는 분으로 조선 정조 때 문장이 뛰어나 '호산집'이라는 책자를 펴낸 이달효 선생(아호는 호산)께서도 상산이씨 조상입니다. 그리고 저희 집안 족보에 보면 6대조 조부 할머니를 “配尙州李氏原孝女(배우자는 상주이씨 이원효의 딸)”로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여기서 이원효 선생은 위에서 상산이씨 호산 이달효 선생과 같은 형제지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처럼 저희 집안은 6대조 할아버지께서 상산이씨 할머니와 혼인함으로써 처갓집 동네인 주천리로 이주하여 뿌리를 내리게 된 거 같습니다. 주천리에 처음 정착하신 상산이씨 출신인 호산 이달효 선생은 문장이 뛰어나 ‘호산집(浩山集)’을 펴내기도 했는데 당시 호남의 명사들과 널리 사귀어 임실 현감과도 막역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임실 현감은 전주 판관과 남원 부사 그리고 호산 이달효 선생 등과 같이 넷이 자주 오원강(烏院江) 위에 배를 띄워 놀았다고 합니다.

네 분은 서로 나이가 비슷한 노년기에 이곳에 모일 때는 언제나 관복을 벗고 평상복 차림으로 마치 네 사람의 신선과도 같은 모습이었고, 그분들이 놀던 곳을 ‘사선대(四仙臺)’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제가 알고 있는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새로이 나타난 전설은 2천 년 전 마이산(馬耳山)의 두 신선과 운주산(임실)의 두 신선이 하루는 이곳 관촌의 오원강 기슭에 모여 놀다가 병풍처럼 아름다운 주위의 풍경에 취하여 언덕에 오르기도 하고, 바위 위를 거닐기도 하면서 맑은 물에 목욕하고 즐기는데 까마귀 떼가 날아와 함께 어울리고 이때 홀연히 네 명의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네 사람의 신선들을 호위하여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후로 해마다 이맘때면 당시 신선과 선녀들이 놀았다고 하여 이곳을 ‘사선대(四仙臺)’라 부르고 까마귀가 놀던 강을 '오원강'이라 불렀다고 하는 게 기존에 제가 알고 있었던 역사와 다른 새로운 전설인 거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까마귀가 등장합니다. 우리의 문학작품 속에서는 예전부터 까마귀는 흉조, 까치는 길조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까마귀 눈에는 저승사자가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옛날 시골에서 초상이 나면 까마귀 떼가 제일 먼저 알고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춘향전에서도 보면 춘향이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까마귀가 담벼락에 와서 까옥까옥 울자 춘향이도 까마귀를 ‘저승사자’로 인식하고 "방정맞은 까마귀야 나를 잡아 갈려거든 조르기나 말려무나"라며 쫓아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쌍영총 같은 고구려 고분의 벽화에 그려진 삼족오(三足烏) 그림에도 보면 발이 셋 달린 까마귀가 등장합니다.

벽화를 보면 주로 태양을 상징하는 원(員) 안에 삼족오가 그려져 있는데, 까마귀는 양(陽)을 의미하는 태양에 살고 있으므로, 사람이 죽으면 까마귀가 그 영혼을 하늘나라에 데려간다는 신화 요소를 내포하고 있답니다. 사선대의 전설에도 보면 까마귀 떼가 날아오고 네 명의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네 신선을 호위하여 사라졌다고 하는 걸 보면 까마귀가 ‘저승사자’ 역할을 한다는 우리의 전설과 일치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이유로 사선문화제에서는 한국의 전통적 여인상을 뽑는 ‘사선녀 선발 전국대회’가 있는데 물론 미인을 뽑는 게 아니라고는 하지만 앞으로는 국가에 충성하고 지역 사회의 발전에 공헌하신 분 중에서 사신선(四神仙)을 뽑는 대회로 변경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사선대는 신선(神仙)들이 놀던 무대였지 선녀(仙女)들이 놀던 곳이 아니었으니 신선들이 당연히 주인공으로 등장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1986년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37년 동안 민간 주도로 추진하면서도 ‘사선문화제’를 전북을 대표하는 향토문화제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공헌하신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선문화제가 전북의 대표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향토축제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글·사진: 이화구(CPA 국제공인회계사·임실문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