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출신 해병대 ’고 채 상병 수사‘, 갈수록 커지는 ’외압' 의혹...박정훈 전 수사단장 구속영장 기각, 거센 ‘후폭풍’

이슈 진단

2023-09-02     박주현 기자

국방부 검찰단이 전북 출신 해병대 고(故) 채모 상병 사망 사건을 수사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을 '항명' 혐의로 입건한 이후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군사법원에 의해 기각돼 파문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특히 고 채모 상병의 사망 사건을 조사하고 장관 결재까지 받은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군 당국이 무리하게 항명과 명예훼손 혐의를 덧씌운 게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외압' 의혹에 대한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군사법원, ”증거인멸 염려 없어“ 해병대 전 수사단장 구속영장 기각...점점 커지는 'VIP 외압' 의혹 

MBC 1일 뉴스 화면 캡처

1일 국방부 중앙지역군사법원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열고 국방부 검찰단이 해병대 박 전 수사단장에 대해 청구한 사전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군 검찰은 박 전 단장에 대해 '항명' 및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 대한 '상관 명예훼손' 혐의 등을 구속 사유로 적시했으나 군사법원은 박 단장이 증거인멸의 우려가 적다며 구속을 허가하지 않았다. 

이날 군사법원은 "피의자의 주거가 일정하고 지금까지의 수사진행 경과와 피의자가 향후 군 수사 절차에 성실히 소명하겠다고 다짐하는 점,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현 단계에서는 증거인멸 내지 도망의 염려 및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박 전 단장은 사전 구속영장 기각 이후 "앞으로도 조사와 재판에 성실히 임해서 꼭 저의 억울함을 잘 규명하고 특히 고 채 상병의 억울함이 없도록 수사가 잘 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전 단장은 이날 강제 구인되기 전에도 "이 사안의 본질은 채 상병의 죽음이니 저에게만 포커스를 맞추지 말아 달라"며 "채 상병의 죽음에 억울함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3시간 대치 속 야당 의원들 항의·박 대령 '해간 동기'들 모여 군가 응원 ‘주목’

1일 오전 국방부 중앙지역군사법원 앞에서 빨간색 해병대 티셔츠를 입은 박정훈 대령의 예비역 해병대 사관(해간) 81기 동기들이 시민 1만 7,000명이 서명한 구속 기각 탄원서를 전달한 뒤 박 전 대령과 함께 손을 잡고 있다. 이들 동기는 해병대 군가 ‘팔각모 사나이’를 합창하며 박 대령을 응원해 시선을 끌었다.(사진=예비역 해간 출신 제공) 

박 전 단장은 이날 오전 9시 30분쯤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법원을 찾았으나 법원 측은 ”출입 절차를 거쳐 국방부 영내를 통해 들어가라“고 요구하자 박 전 단장 측이 반발하며 ”일반인들도 들어갈 수 있는 출입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등 3시간여 동안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출입문 앞 대치가 계속 이어지자 더불어민주당 의원 8명이 이날 오전 11시 20분쯤 중앙지역군사법원이 있는 국방부 후문으로 찾아와 국방부 검찰단에 항의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소병철·박범계·박주민·박용진·김승원·이수진·최강욱·윤준병 의원은 이날 오전 군검찰에 박 전 단장과 변호인단의 주장을 수용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군 검찰은 이를 거절하는 등 대치가 길어지자 경찰 기동대가 출동하기도 했다.

결국 3시간가량 대치가 이어진 끝에 군 검찰은 박 전 단장을 강제 구인했지만 이 과정에서 빨간색 해병대 티셔츠를 입은 박 대령의 예비역 해병대 사관(해간) 81기 동기들이 시민 1만 7,000명이 서명한 구속 기각 탄원서를 전달한 뒤 박 전 단장 앞에서 해병대 군가 ‘팔각모 사나이’를 합창하며 박 대령을 응원해 주목을 끌었다. 이 같은 소동이 빚어진 이후 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군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벌인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무리한 구속 시도...대통령 질책, 비공개 문건 파장 확대

KBS 1일 뉴스 화면 캡처

더욱이 국방부 검찰단은 박 전 단장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에 기존에 입건한 혐의인 '항명' 외에도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를 추가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건의 본질과는 다르게 엉뚱한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더구나 대통령실이 고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에 개입했다는 박 전 단장의 진술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이를 막기 위해 군 검찰이 무리하게 구속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특히 MBC는 지난달 27일 방송한 '스트레이트'를 통해 ”지난 7월 31일 대통령 주재 회의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해병대 1사단장 혐의가 적시된 수사 결과를 보고 받은 윤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을 질책했다“는 내용의 비공개 문건을 공개한 이후 의혹과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당시 윤 대통령은 안보실 참모에게 ‘사단장 등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할 예정’이라는 보고를 받은 후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연락해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라고 질책했다. 7월 31일은 국방부가 당초 예정돼 있던 고 채 상병 수사 언론브리핑을 급작스럽게 취소한 날이다.

이후 국방부는 그 전날인 30일 국방부 장관과 해군참모총장이 직접 결재한 '(사단장 혐의가 적힌) 수사 결과 이첩'을 중단하려 했고,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이 수사 결과를 원안 그대로 경북경찰청에 이첩하자 국방부 수사본부 및 검찰단 등을 통해 해당 자료를 회수하고 박 대령을 항명 혐의로 입건했다.

MBC 보도에 따르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박 전 단장에게 '국방부가 사건 혐의자와 혐의를 제외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박 전 단장이 그 이유를 묻자 '대통령실 회의에서 수사 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윤석열 대통령)가 격노하면서 국방부 장관과 통화한 뒤 이렇게 됐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한달 이상 전말 드러나지 않고 '외압' 의혹만 커져

MBC 8월 27일 '스트레이트' 방송 한 장면(캡처)

이에 대해 박 전 단장의 법률대리인인 김정민 변호사는 이날 영장실질심사에 앞서 "군 검찰은 이미 그 내용(VIP 격노)을 관련자들 진술을 통해 확보했다”며 “이번 사건의 핵심은 없는 죄를 (박 전 단장에게) 뒤집어씌우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날 김 변호사는 구속영장 기각 이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돼 있는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검찰단장에 대한 수사 협조에 힘쓰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전 단장 측은 고 채 상병 사고 보고서 처리 과정에서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으로부터 혐의자와 혐의 내용 등을 빼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해병대 수사단에서 경찰에 인계했던 채 상병의 사고 조사기록을 군검찰이 회수해간 것 역시 위법으로 보고 있다. 이에 박 전 단장 측은 유 관리관과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 오는 8일 공수처의 고발인 조사가 예정돼 있는 상태다.

박 전 단장 측은 이 외에도 수원지방법원에 보직해임 처분 효력을 정지하는 집행정지 신청과 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이처럼 박 전 단장의 사전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고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는 한달 이상 결과가 드러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건을 둘러싼 '외압' 의혹 규명이 본격화될 수 있을지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사건은 앞서 지난 7월 18일 경북 예천의 수해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을 하던 중 급류에 휩쓸리며 실종돼 14시간 만인 19일 내성천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된 고 채 상병에 대한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힐 수사가 해당 소속 부대인 해병대와 국방부 간 갈등으로 인해 한 달 이상 표류하면서 안타까움과 비난의 목소리가 동시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국방부, 해병대 전 수사단장 무리한 수사...의혹만 증폭

더욱이 지난 8월 2일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라 해병대 수사단이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내용 일체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했지만 이를 국방부 검찰단(장)이 회수하는 과정에서 국방부 검찰단이 이첩된 서류의 소유자인 경북경찰청에 군사법원법 제170조에 따른 압수목록을 교부해야 함에도 이를 하지 않아 '위법한 압수(임의제출)'를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박 전 단장 측은 “지난 8월 3일 14시경 국방부 검찰단장의 지시로 해병대 수사단장실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에 의한 강제수사를 했는데, 이 때 검찰단이 '범죄사실'인 누구의 명령을, 어떠한 내용의 명령을, 언제, 어디서, 어떠한 방법으로 복종하지 않았는지 구체적으로 적시하여야 하지만 이를 전혀 적시하지 않았다”며 “위법한 압수수색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전 단장 측 김정민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헌법 제12조 제1항 후문은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압수·수색을 받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고 또 군사법원법 제359조의2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헌법과 군사법원법이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물론, 이를 기초로 하여 획득한 2차적 증거 역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전북 출신 고 채 상병 사망 사고는 가뜩이나 의혹이 증폭된 상황에서 사건 초기 단계 수사를 맡았던 해병대 수사단(장)에 대한 국방부의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과 외압 의혹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