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출신 해병대 ’고 채 상병 수사‘, 갈수록 커지는 ’외압' 의혹...박정훈 전 수사단장 구속영장 기각, 거센 ‘후폭풍’
이슈 진단
국방부 검찰단이 전북 출신 해병대 고(故) 채모 상병 사망 사건을 수사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을 '항명' 혐의로 입건한 이후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군사법원에 의해 기각돼 파문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특히 고 채모 상병의 사망 사건을 조사하고 장관 결재까지 받은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군 당국이 무리하게 항명과 명예훼손 혐의를 덧씌운 게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외압' 의혹에 대한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군사법원, ”증거인멸 염려 없어“ 해병대 전 수사단장 구속영장 기각...점점 커지는 'VIP 외압' 의혹
1일 국방부 중앙지역군사법원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열고 국방부 검찰단이 해병대 박 전 수사단장에 대해 청구한 사전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군 검찰은 박 전 단장에 대해 '항명' 및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 대한 '상관 명예훼손' 혐의 등을 구속 사유로 적시했으나 군사법원은 박 단장이 증거인멸의 우려가 적다며 구속을 허가하지 않았다.
이날 군사법원은 "피의자의 주거가 일정하고 지금까지의 수사진행 경과와 피의자가 향후 군 수사 절차에 성실히 소명하겠다고 다짐하는 점,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현 단계에서는 증거인멸 내지 도망의 염려 및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박 전 단장은 사전 구속영장 기각 이후 "앞으로도 조사와 재판에 성실히 임해서 꼭 저의 억울함을 잘 규명하고 특히 고 채 상병의 억울함이 없도록 수사가 잘 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전 단장은 이날 강제 구인되기 전에도 "이 사안의 본질은 채 상병의 죽음이니 저에게만 포커스를 맞추지 말아 달라"며 "채 상병의 죽음에 억울함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3시간 대치 속 야당 의원들 항의·박 대령 '해간 동기'들 모여 군가 응원 ‘주목’
박 전 단장은 이날 오전 9시 30분쯤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법원을 찾았으나 법원 측은 ”출입 절차를 거쳐 국방부 영내를 통해 들어가라“고 요구하자 박 전 단장 측이 반발하며 ”일반인들도 들어갈 수 있는 출입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등 3시간여 동안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출입문 앞 대치가 계속 이어지자 더불어민주당 의원 8명이 이날 오전 11시 20분쯤 중앙지역군사법원이 있는 국방부 후문으로 찾아와 국방부 검찰단에 항의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소병철·박범계·박주민·박용진·김승원·이수진·최강욱·윤준병 의원은 이날 오전 군검찰에 박 전 단장과 변호인단의 주장을 수용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군 검찰은 이를 거절하는 등 대치가 길어지자 경찰 기동대가 출동하기도 했다.
결국 3시간가량 대치가 이어진 끝에 군 검찰은 박 전 단장을 강제 구인했지만 이 과정에서 빨간색 해병대 티셔츠를 입은 박 대령의 예비역 해병대 사관(해간) 81기 동기들이 시민 1만 7,000명이 서명한 구속 기각 탄원서를 전달한 뒤 박 전 단장 앞에서 해병대 군가 ‘팔각모 사나이’를 합창하며 박 대령을 응원해 주목을 끌었다. 이 같은 소동이 빚어진 이후 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군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벌인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무리한 구속 시도...대통령 질책, 비공개 문건 파장 확대
더욱이 국방부 검찰단은 박 전 단장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에 기존에 입건한 혐의인 '항명' 외에도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를 추가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건의 본질과는 다르게 엉뚱한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더구나 대통령실이 고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에 개입했다는 박 전 단장의 진술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이를 막기 위해 군 검찰이 무리하게 구속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특히 MBC는 지난달 27일 방송한 '스트레이트'를 통해 ”지난 7월 31일 대통령 주재 회의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해병대 1사단장 혐의가 적시된 수사 결과를 보고 받은 윤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을 질책했다“는 내용의 비공개 문건을 공개한 이후 의혹과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당시 윤 대통령은 안보실 참모에게 ‘사단장 등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할 예정’이라는 보고를 받은 후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연락해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라고 질책했다. 7월 31일은 국방부가 당초 예정돼 있던 고 채 상병 수사 언론브리핑을 급작스럽게 취소한 날이다.
이후 국방부는 그 전날인 30일 국방부 장관과 해군참모총장이 직접 결재한 '(사단장 혐의가 적힌) 수사 결과 이첩'을 중단하려 했고,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이 수사 결과를 원안 그대로 경북경찰청에 이첩하자 국방부 수사본부 및 검찰단 등을 통해 해당 자료를 회수하고 박 대령을 항명 혐의로 입건했다.
MBC 보도에 따르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박 전 단장에게 '국방부가 사건 혐의자와 혐의를 제외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박 전 단장이 그 이유를 묻자 '대통령실 회의에서 수사 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윤석열 대통령)가 격노하면서 국방부 장관과 통화한 뒤 이렇게 됐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한달 이상 전말 드러나지 않고 '외압' 의혹만 커져
이에 대해 박 전 단장의 법률대리인인 김정민 변호사는 이날 영장실질심사에 앞서 "군 검찰은 이미 그 내용(VIP 격노)을 관련자들 진술을 통해 확보했다”며 “이번 사건의 핵심은 없는 죄를 (박 전 단장에게) 뒤집어씌우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날 김 변호사는 구속영장 기각 이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돼 있는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검찰단장에 대한 수사 협조에 힘쓰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전 단장 측은 고 채 상병 사고 보고서 처리 과정에서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으로부터 혐의자와 혐의 내용 등을 빼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해병대 수사단에서 경찰에 인계했던 채 상병의 사고 조사기록을 군검찰이 회수해간 것 역시 위법으로 보고 있다. 이에 박 전 단장 측은 유 관리관과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 오는 8일 공수처의 고발인 조사가 예정돼 있는 상태다.
박 전 단장 측은 이 외에도 수원지방법원에 보직해임 처분 효력을 정지하는 집행정지 신청과 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이처럼 박 전 단장의 사전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고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는 한달 이상 결과가 드러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건을 둘러싼 '외압' 의혹 규명이 본격화될 수 있을지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사건은 앞서 지난 7월 18일 경북 예천의 수해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을 하던 중 급류에 휩쓸리며 실종돼 14시간 만인 19일 내성천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된 고 채 상병에 대한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힐 수사가 해당 소속 부대인 해병대와 국방부 간 갈등으로 인해 한 달 이상 표류하면서 안타까움과 비난의 목소리가 동시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국방부, 해병대 전 수사단장 무리한 수사...의혹만 증폭
더욱이 지난 8월 2일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라 해병대 수사단이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내용 일체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했지만 이를 국방부 검찰단(장)이 회수하는 과정에서 국방부 검찰단이 이첩된 서류의 소유자인 경북경찰청에 군사법원법 제170조에 따른 압수목록을 교부해야 함에도 이를 하지 않아 '위법한 압수(임의제출)'를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박 전 단장 측은 “지난 8월 3일 14시경 국방부 검찰단장의 지시로 해병대 수사단장실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에 의한 강제수사를 했는데, 이 때 검찰단이 '범죄사실'인 누구의 명령을, 어떠한 내용의 명령을, 언제, 어디서, 어떠한 방법으로 복종하지 않았는지 구체적으로 적시하여야 하지만 이를 전혀 적시하지 않았다”며 “위법한 압수수색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전 단장 측 김정민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헌법 제12조 제1항 후문은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압수·수색을 받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고 또 군사법원법 제359조의2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헌법과 군사법원법이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물론, 이를 기초로 하여 획득한 2차적 증거 역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전북 출신 고 채 상병 사망 사고는 가뜩이나 의혹이 증폭된 상황에서 사건 초기 단계 수사를 맡았던 해병대 수사단(장)에 대한 국방부의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과 외압 의혹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