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재난’ 뒷북 대응, 새만금잼버리 '국제적 망신'...'최악 잼버리' 소리 듣지 않으려면

뉴스 큐레이터 시선

2023-08-04     박주현 기자

올해 들어 가장 긴 장마 뒤에 찾아온 가장 무더운 날씨 속에 치러지는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새만금잼버리)는 6년 전인 2017년 힘들고 어렵게 유치됐다. 당시 다른 경쟁 국가 도시들을 제치며 유치에 성공한 뒤 대한민국은 물론 전북의 위상과 저력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다고 정부와 전북도 그리고 정치인들은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막상 행사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온열질환자가 속출하면서 전 세계가 우려하는 최악의 세계 잼버리가 되고 말았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까지 참석한 2일 개영식 행사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긴 야외 행사로 인해 80명이 넘는 스카우트 대원들이 탈진과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지는 사고가 발생해 인근 경찰서들이 갑호 비상을 내리고 소방본부는 대응 2단계를 발령했다.

온열질환자 시작부터 1,000여명 육박...외신들 조차 우려

2일 밤 늦게까지 진행된 새만금잼버리 개영행사 한 장면.

새만금잼버리는 지난 1일 개막 후 사흘 만에 온열질환자가 1,000명이 넘었다. 당장 잼버리에 자녀를 보낸 국내외 부모들의 성토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쏟아지고 있다. 국내 주요 언론들은 물론 외신들도 문제점들을 잇따라 보도하며 크게 우려하고 나섰다. 다양한 국적의 참가 대원들이 “난민촌 같다”며 SNS에 올린 동영상에는 배수가 되지 않아 진창이 된 행사장이 어지럽게 유포되고 있다. 

대한민국과 미래의 땅 새만금을 긍정적으로 널리 알리기는커녕 국제적 망신을 산 잼버리 행사가 되고 말았다. 온열진환자가 급증하자 정부와 대회 조직위 등은 부랴부랴 뒷북 대응에 나섰지만 시민사회단체와 일부 정치권에서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는 상황에까지 왔다.

특히 안전을 책임져야 할 조직위는 개영식이 열린 2일 온열질환자가 속출하는데도 잘못된 판단으로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온열질환 신고는 2일 밤 10시 42분쯤부터 시작됐다. 소방당국은 10시 54분쯤 행사 중단을 요청했지만 조직위는 행사를 강행했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도 참가한 행사는 오후 8시부터 3시간 이상 이어졌다. 중단 요청 후에도 30분이나 더 공연이 펼쳐져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찾아다닐 정도였다. 더 큰 사고가 발생했을 수 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에서 너무 대응이 안일하기 짝이 없었다는 비난이 거센 이유다.

“전 세계 청소년 4만 3,000여명 안전 확보”...뒷북 대응 '호들갑' 

새만금잼버리 야영장 부지 전경.(사진=세계스카우트연맹 제공)

주최 측의 폭염 대책이 부실했다는 지적 속에 이번 행사에 가장 많은 청소년을 파견한 영국 정부는 주한 영국대사관에 근무 중인 자국 영사를 새만금 현장에 급파했을 정도다. 뒤늦게 정부는 군병력인 공병대와 군의관을 투입하는 등 안전 관리를 위해 비상 대응에 나섰지만 잼버리가 열리는 곳은 나무 한 그루, 그늘 한 점 없던 바다를 급히 메운 땅이라 습도는 높고 모기와 날벌레가 극성이다. 

오죽 다급했으면 한덕수 국무총리는 3일 세계잼버리대회 공동 조직위원장인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대회가 끝날 때까지 현장을 지키며 158개국 참가자 4만 3,000명의 안전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또 국방부에는 냉방시설 증설을 위한 공병대와 응급상황에 대응할 군의관을 신속하게 파견할 것을 지시했다.

이런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까? 대규모 국제 행사를 앞두고 안일한 준비와 대응, 안전불감증까지 정부가 총체적으로 자인한 결과다. 게다가 기상청은 3일 “새만금잼버리가 끝나는 이달 12일까지 대부분 지역에서 최고 체감온도가 33~35도에 달하는 무더위가 이어지겠다”고 예보했다. 대회 첫 주말인 5일에는 아침 기온이 24~28도, 낮 기온이 30~36도 등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잼버리대회 참가자 중 벌써 1,000명이 넘는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다는 점은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지난 2일 하루에만 온열질환, 벌레 물림 등으로 병원을 찾은 참가자가 992명으로 집계됐다. 이날 야영지 안에서는 모두 1,757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조직위 기획부터 진행 등 미숙 운영...국내외 학부모들 “기본 시설은 갖추어야” 비난

새만금잼버리에 참가한 스카우트 대원들이 지난 1일 수돗가에서 물을 적시며 더위를 식히고 있는 모습.(사진=세계스카우트연맹 제공)

무엇보다 전반적인 프로그램 기획 단계부터 진행에 이르기까지 조직위의 운영·관리 미숙이 계속 도마에 오르고 있다. 대회 초반의 혼선에 대한 국내외 학부모들의 불만이 이 때문에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아무리 스카우트 정신이라지만 최소한 위생적이고 깨끗하게 시설을 갗추어야 하는 게 아니냐”며 “기본은 갖추고 국제 행사를 치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새만금잼버리는 지난해 프레잼버리 취소 때부터 문제가 예견됐다. 말 많고 탈 많았던 새만금 세계프레잼버리가 개최 2주일을 앞두고 전격 취소됐다. 조직위는 '코로나19 재확산'을 이유로 취소했지만 정작 시설 준비가 덜 된 탓이 크다. 코로나19 재유행이 충분히 예견되었던 만큼 ‘안일한 대응과 준비에서 비롯된 사태'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 때도 나왔다.

특히 2017년 새만금잼버리 유치 확정 이후 송하진 전 도지사를 비롯한 전북도와 조직위 관계자들은 프레대회와 본대회를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고 줄곧 장담해 왔다. 그런데 프레잼버리 2주일을 앞두고 전격 취소 결정을 내린 데 대해 "그동안 전북도와 대회 조직위원회는 차질 없는 대회 유치를 하겠다며 많은 언론 홍보를 해놓고 도대체 무슨 준비를 했느냐"는 따가운 비판이 제기됐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이에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 이원택(김제·부안) 국회의원은 세계 잼버리대회 주관 부처인 여성가족부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사전 점검하는 프레잼버리 취소 사유가 ’야영장 시설 준비 부족과 침수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생존 게임장", "진창 야영장” SNS 확산...'폭염 재난 매뉴얼' 지켜야 

사진=새만금잼버리 공식 홈페이지 캡처

새만금잼버리를 유치해 놓고 정치적으로 이용만 한 대신 준비는 소홀히 했음이 여실히 드러낸 꼴이다. 조직위는 야영장 부지가 폭우와 폭염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행사 직전까지 배수시설 보강과 덩굴 터널 등을 갖춘 게 전부였다. 4만 3,000여명의 참가 인원에 비해 병상도 턱없이 부족하고 화장실·샤워실 등도 열악하기 짝이 없다.

그러면서 ‘스카우트 정신’을 강조하고 있으니 어느 학부모나 참가자가 수긍할 것인가. 이미 SNS에서는 새만금잼버리장을 “생존 게임장”이라는 조롱과 "진창 야영장", "텐트가 물에 잠긴 사진들"이라며 널리 공유되면서 망신살이 뻗치고 있다. 

32년 만에 국내에선 강원도 고성(1991년 개최)에 이어 두 번째 열리는 잼버리 행사다. 전 세계에 위상과 이미지를 더 이상 구기지 않으려면 정부와 조직위는 무엇보다 참가자들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제라도 폭염 재난 매뉴얼에 따라 운영 전반을 안전 위주로 수정해야 한다.

심각 단계로 판단될 경우 행사를 중단하는 방안도 적극 수용해야 한다. 무리하게 강행하려다 전 세계 국가들로부터 받을 비난과 돌아올 부메랑은 당초 기대했던 잼버리 유치 기대 효과의 몇 배 이상에 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