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을 지키며 산다는 것
신정일의 '길 위에서'
가만히 나를 들여다볼 때가 있다.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면 무엇하나 내세울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가끔씩 작은 일에 우쭐할 때도 있고 하찮은 일에 큰 상심에 젖기도 한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도 문득 서글퍼지기도 하고 문득 스스로가 가여워지기도 하는 시간이 날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은 가는 세월의 흐름 탓이리라.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당신은 누구신가요? 당신 역시 아무 것도 아닌가요? 그렇다면 우린 한 쌍의 무명 인간이군요. 말하지 말아요. 그들이 우릴 추방해 버릴 거예요. 누군가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마치 개구리처럼 유월 내내 당신의 이름을 감탄하는 늪지에다 대고 공공연히 외친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다 보면 무엇이 된다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고, 무엇을 남긴다는 것도 역시 쓸데없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에밀리 디킨슨'은 어떤 삶을 살다가 갔을까? 미국 문학사에 보석 같은 광채를 남긴 '에밀리 디킨슨'은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몇 사람밖에 그가 시를 쓴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불과 몇편의 시가 발표되었을 뿐이다.
친구도, 애인도 없이 철저히 은폐의 삶을 살았던 그는 한 번도 '엠허스트'의 집 밖으로 나간 적도 없이 1,7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 사후에 명성을 얻었다. 살아 있을 당시가 아니고 본인이 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빛을 본 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다 보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대상을 지각하게 하는 데는 그 대상이 상실된 것 만큼의 비용이 든다네. 지각 그 자체는 그 가격에 맞는 이득이 된다네. 절대적 대상은, 무(無)라네. 그런 후엔, 아주 멀리 놓이게 된 완벽을 비난한다네.“
'에밀리 디킨슨'의 <대상을 지각하게 하는 데는> 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이 세상에 남겨 놓을 것도 없고 모든 것이 공(空)인데, 그 무슨 미완성이고 완성이 있겠는가. 다만, 그 순간 유감없이 자신의 자존(自存)을 지키고 사는 것, 그것이 이 세상에 살다가는 큰 이유가 아니겠는가.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