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 침해' 논리는 비약”...교권-학생인권 '상충 인식' 확산 우려
이슈 진단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신규 교사의 비극적 사건을 계기로 학생인권조례를 손보려는 움직임이 전국에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교권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학생들의 인권이 침해되는 ‘풍선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욱이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서 교권 강화 대책을 주문하며 “초중등교육법 관련 교육부 고시를 신속히 마련하고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 조례 개정 병행도 추진하라”고 지시해 교육계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이에 대해 교권과 학생의 인권을 상충하는 가치로 바라보는 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윤 대통령 “교권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 조례 개정 병행 추진” 지시...시·도교육청 ‘술렁’
윤 대통령은 24일 오전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당, 지자체와 협의해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 조례 개정도 병행 추진하라"고 참모들에게 지시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자치 조례'는 각 시·도에서 시행 중인 학생인권조례를 지칭한 것으로 해석됐다.
현재 학생인권조례는 전북지역을 비롯한 서울과 경기, 광주, 충남, 제주, 인천 등 7개 시·도에서 시행 중이다. 지난 2010년 경기를 시작으로 2011년 광주, 2012년 서울 등지로 확대됐으며 대체로 진보 교육감 임기 때 만들어졌다. 학생인권조례에는 학교 내 체벌 금지와 함께 표현의 자유, 차별 받지 않을 권리 등이 규정돼 있다.
그러나 최근 학교 교육현장에서 잇따라 교사가 학생에게 폭행당하거나 학부모 '갑질 민원'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전국 교육청과 지자체 등은 교육현장에서 시행 중인 학생인권조례의 부작용을 문제 삼고 있다. 게다가 대통령 발언이 이러한 분위기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양태가 됐다.
서거석 전북교육감 “교사들 교권 바로 서지 않으면 수업도 안 되고 학생 지도도 불가능”
서거석 전북교육감은 24일 전략회의에서 서울 서이초 교사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실질적인 조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면서 "일단 현장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어야 하겠지만, 악성 민원에는 당당하게 대처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일부 학부모의 나쁜 민원, 악의적 민원에 대해 고소·고발 등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부분도 이번 일을 계기로 체계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서 교육감은 "교사들의 교권이 바로 서지 않으면 결국 수업도 안 되고 학생 지도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같은 관련 법을 보완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서 교육감은 지난해 취임 이후 "교권이 흔들이면 수업이 흔들리고 학생지도가 불가능해진다"는 주장을 줄곧 펼쳐왔다. 서 교육감은 또 "학생인권과 교권이 조화를 이루는 인권친화적인 학교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학생인권조례는 전북교육인권조례로 확대 개정하고 학생인권센터는 전북교육인권센터로 확대 개편해 학생·교직원의 인권을 균형 있게 높이겠다"고 밝혀 학생 인권을 걱정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 외에도 전북교육청은 교사들의 교육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전북교육지원센터 내에 교원치유센터를 두고, 교원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다른 지자체와 시·도교육청들도 학생인권조례 개정 검토에 착수했다.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이 침해된다는 것은 비약적 논리”
그러나 제주도교육청 등 일부에서는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이 침해된다는 것은 비약적인 논리"라는 지적과 함께 조례 개정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이날 서울교육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조례에 학생 권리 외에 책무성 조항을 넣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검토한다는 입장이지만, 지금의 과제는 학교 내 다양한 주체들의 권리는 보장하는 기초 위에서 교원의 교육활동 권한과 권리를 재정립하고 강화하는 것"이라며 "(학생인권조례 제정 전의) 과거를 바라보기보다 미래지향적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학생인권조례 개정이 본질적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왔다. 전국 교사 단체인 ‘좋은교사운동’은 24일 성명을 통해 “최근 일어난 일련의 교권 침해 사안과 관련해 교육부 장관과 대통령실은 책임자로서의 책임 있는 사과가 아니라 학생 인권을 강조한 탓이라는 발언을 했다”며 “이는 교육 주체를 편가르기 하는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단체는 “교육부 장관과 대통령실은 교권 침해의 원인을 종북주사파가 추진한 학생인권조례로 지목했다”면서 “대통령실과 교육부 장관의 이런 발언과 현실 인식은 학교를 다시 진보와 보수, 학생(학부모)와 교사 등으로 편만 가를 뿐이다”고 경고했다.
좋은교사운동 “교권과 학생 인권, 상충하는 가치로 바라보는 현실 인식 문제”
아울러 “교육 주체 간의 신뢰 회복이라는 문제 해결은커녕 교육 주체 간의 분열만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 단체는 “교권과 학생의 인권을 상충하는 가치로 바라보는 현실 인식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교권 침해의 원인이 학생인권조례에 있다면 학생인권조례 제정 시도와 그렇지 않은 시도의 교권 침해 신고 건수를 단순히 비교만 해 보아도 답은 금방 나올 것이다. 교권 침해는 전국 모든 시·도교육청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단체는 “학생의 인권이 문제가 아니라 개인이 겪은 부정적 감정을 인권 침해 또는 아동학대특례법상 정서적 학대로 문제 삼는 개념의 오용이 문제”라고 지적한 뒤 “학교가 학교답고, 교사가 교사다운 안전하고 신뢰로운 배움터로 우리의 학교가 거듭나길 간절히 염원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이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기지부 관계자는 "교권과 학생 인권이 대립적인 관계가 아닌데, (교육 당국이) 이를 대립하는 프레임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문제의 핵심은 무분별하게 위험에 노출된 교사들을 보호할 대책,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라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처럼 정부와 시·도교육청이 교권 침해의 원인을 학생인권조례로 바라보며 개정안을 잇따라 추진하고 나서 교육계의 갈등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