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도 가뭄도 모두 자연의 현상일 뿐

신정일의 '길 위에서'

2023-07-15     신정일 객원기자

여기도, 저기도 난리가 아니다. 하늘이 뚫린 것처럼 내리는 '비' 탓이다. 이상 기온 탓이라고도 하고, 희한한 장마 탓이라고도 하면서 사람들은 말이 많다. 과연 그럴까?

'세상 사람들은 비가 오면 날씨가 나쁘다'고 말하고, 비가 그치면 '날씨가 좋아졌다' 고 한다. 계속 해만 쪼이면 '가뭄이 든다'고 하고, 비가 많이 오면 '홍수가 났다'고 소란을 피운다. 그러나 우주는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우주의 본체에서 보면, 소나기도 태풍도, 홍수도, 가뭄도 모두 자연의 현상일 뿐 거기에는 선도 악도 없다. 우주의 절대적인 지리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날마다 참 좋은 날이다.“

<벽암록碧巖錄>에 실린 글이다. 

이러한 진리를 잘 알면서도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것이 뭇 중생들이다. '아서라. 말아라. 그냥 두어라' 하면서도 이렇게 저렇게 노심초사하는 이 생(生)에서의 삶, 가끔씩 스스로가 가여워 서글퍼진다.

특히 어느 계절보다 여름이 그런 것은 장마와 불볕 더위, 그리고 가을이 성큼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이 비 그치면 잠시 덥다가 서늘한 바람이 금세 밀려 오겠지.  

가끔은 마음의 자세를 맑은 시내에서 물감을 풀듯이 풀어놓고 ‘절제’도 ‘경계’도 ‘애증’까지도 버리고 한 세상을 잊어버릴 수는 없을까? 

이런 글을 쓰면서도 모든 분들 비 피해 없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