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와 시민사회

백승종의 역사칼럼

2023-06-19     백승종 객원논설위원
백승종 역사학자

 선비들이 마을을 터전으로 삼았다는 점, 이 사실이 얼마나 귀중한가. 조선의 선비들은 대대로 한 마을에 살며 서당을 만들고, 그것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조선의 마을은 전국 어디든지 사회문화적인 수준이 전에 없이 높아졌다. 나는 우리 역사를 공부하며 이런 사실을 몇 번이고 거듭해 확인했다.

선비가 마을사람이란 점이 왜 중요한가?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나라가 위기에 빠지기라도 하면 선비는 자신의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 의병이 되었다. 그들은 신명(身名)을 바쳐 싸우기도 했다. 선비와 마을은 하나였다. 마을에는 선비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구현하는 사회조직도 여럿이었다. 각종 계회(계모임)이 있었고, 집안이 한데 뭉친 족계도 있었다. 온 마을이 규약을 정해 동약을 만들기도 하였고, 스승과 제자 즉 사우(師友)와 문생의 명부도 만들어 소중히 보관하였다. 한 마디로, 선비들은 진리를 향한 신념으로 그리고 끈끈한 동지애로 굳게 뭉쳐,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실천하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선비들의 이런 모습에서 현대사회가 배울 점이 있다. 과거의 선비에 해당하는 지식인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시민사회와 더불어 민주적인 가치관을 공유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더욱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거주하는 ‘마을’은 그저 심신의 휴식을 취하기만 하면 그만인 공간이 아닐 것이다. 마을과 직장이 엄격히 분리된 오늘날, 지금의 마을이 유기적 공동체로 되살아나기는 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런 한계를 인정하지만, 그래도 마을이 우리 모두의 삶에 근간이 되는 터전이란 사실 만큼은 변함이 없다고 본다. 마을은 우리의 자녀들이 자라나는 공간이고, 의식주의 품질이 상당 부분 결정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거대 도시 안에 고층 아파트로 구획된 우리의 마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좋을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뾰족한 해결책이 쉽게 발견되지는 않을지라도 서로가 이마를 맞대고 궁리를 해보면 길이 보일 것이다. 조선의 선비들이 그러하였듯, 삶의 가치를 온 마을과 공유하고, 이웃 간에 깊은 정을 나누며, 연대하며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아야겠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길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