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

신정일의 '길따라 인생따라'

2020-07-21     신정일 객원기자

"나무와 풀의 꽃, 공작새의 깃, 저녁 하늘의 노을,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 이 네 가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이다. 그 중에서도 꽃이 색깔로는 가장 다양하다. 미인을 그리는 경우, 입술은 붉게, 눈동자는 검게, 두 볼은 발그레하게 그리고 나면 그만이고, 저녁노을을 그릴 때는 붉지도 푸르지도 않게 어둑어둑한 색을 엷게 칠하면 그만이며, 공작새의 깃을 그리는 것도 빛나는 금빛에다 초록색을 군데군데 찍어 놓으면 그뿐이다.

꽃을 그릴 적에는 몇 가지 색을 써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김군(金君)이 그린 서른 두 폭의 꽃 그림은 초목의 꽃을 다 헤아린다면 천이나 백 가운데 한둘 정도에 불과하지만 오색(五色)도 다 쓰지를 못하였다. 그러므로 공작새의 깃, 저녁노을, 아름다운 여인의 빛깔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아하! 한 채 훌륭한 정자亭子를 지어 미인을 들여앉히고, 병에는 공작새 깃을 꽂고서 정원에는 화초를 심어두고서, 난간에 기대에 저무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하지만 미인은 쉽게 늙고, 오래된 깃털은 쉽게 색이 변하며, 피어난 꽃은 떨어지기 쉽고, 노을은 금세 사그라지니, 나는 김군에게 이 화첩(畵帖)을 빌려 금심을 잊으려 한다.“

유득공이 지은 <고운당필기>에 실린 < 제(題) 32화첩>이다.

유득공은 자연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것들을 열거하고서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것은 누군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그린 화첩이 더 아름답다고 말 한다. 하지만 바른 말로 말한다면 어디 자연이 만들어낸 빛깔을 따라 갈 수 있을까?

자연(自然)은 말 그대로 자연스러우니까 자연인 것이다. 그래서 인위적인 것이 아닌 자연적인 것이라서 아름다움도 두 배 세 배가 되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바라보아도 싫증을 내지 않고 보고 또 보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들 역시 자연이기 때문에 자연을 더 사랑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기 때문에 니체도 <망각된 자연>이라는 글을 남겼다.

“자연에 대해 말하면서 자기에 대해서는 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 자신이 자연이라는 사실을, 따라서 자연은 우리가 그것을 부를 때 느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다.”

잘 지은 정자에서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나누는 술 한잔이 그리운 것은 여름이 깊어가기 때문이라서 그런가.

/글 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