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취재 기자인데 다큐는 처음...유가족도 같은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이영광 기자, 온몸으로 묻는다] 홍주환 뉴스타파 기자
지난 4월 21일 독립언론인 뉴스타파에서 <길 잃은 별들의 길이 되어, 이태원 진실버스>란 다큐가 업로드되었다. <길 잃은 별들의 길이 되어, 이태원 진실버스>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독립적 진상조사기구 설치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10일 동안 전국 순회했는데 홍주환 기자가 동행 취재한 것이다.
특히 홍주환 기자는 다큐 연출이 처음이었다. 어떻게 다큐를 제작하게 됐는지 궁금해 지난 4월 26일 서울 국회의사당역 근처에서 홍 기자와 만나 다큐 제작기를 들어 보았다. 다음은 홍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진실 버스에서 유가족들과 자는 시간 빼고 거의 같이...울고 화내는 모습 외에 다른 모습 보며 다른 느낌 받아”
- 지난 21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 진실버스 동행기를 담은 다큐 <길 잃은 별들의 길이 되어, 이태원 진실버스>를 취재하셨잖아요. 소회가 어떠세요?
“일단 찍을 때는 되게 정신이 없었고 끝나고 나니 저 스스로 개운한 것 같아요. 제가 이태원 참사 취재 하면서 회사의 도움으로 심리 상담도 같이 받고 있거든요. 왜냐면 감정 전이라는 게 있대요. 맨날 유가족분들이 슬픈 모습이나 우시는 모습 보다 보면 그 슬픔이 저에게 옮겨오는 거죠. 그런데 이번 진실 버스에서 그분들과 자는 시간 빼고 거의 같이 있잖아요. 사실 그분들도 우시기만 하지 않아요. 울다가 밥 먹고 웃고 농담도 하고 또 화냈다가 또 웃기도 하죠. 예전에 제가 울고 화내는 모습만 봤는데 전체적인 모습을 다 보니까 마음의 부담감도 내려간 것 같고 저에게 전이 됐던 슬픔도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 시청자들 반응이 어떤가요?
“되게 극과 극이에요.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대다수라고 생각하는데 또 욕하는 분들도 있죠. 그런 걸 보면 양분된 모습이 어쨌든 만든 사람 입장에서는 슬픈 것 같아요.”
- 진실버스 취재는 어떻게 하게 되셨어요?
“유가족분들이나 언론에 나오는 게 대부분 정형화된 모습이잖아요. 그런데 한번 이분들이 평소 어떻게 계시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분들이 단순히 울고 화내고 분노하고 소리치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좀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마침 진실 버스가 기획된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취재할 생각이 들었죠. 처음엔 막연했지만 계속 따라가다 보면 뭐라도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에 진실버스 일정 취재하고 싶다고 건의했고요.”
- 기자님 다큐 제작해 본 게 처음이신 것으로 아는데 어땠나요?
“처음 만들어서 찍을 때도 되게 부담이 많이 됐고 출발하기 전에도 정말 다른 다큐 진짜 많이 보면서 참고 많이 했어요. 다큐가 재밌긴 어렵지만 그래도 지루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했고 다녀와서도 계속 고민한 것 같아요.”
- 이전에 다큐 볼 때와 이후 다큐 볼 때 시각이 다를 것 같은데.
“사실 예전에 제가 만든다는 생각이 없었을 때는 그냥 재밌다는 정도였는데 요새는 볼 때 ‘저 영상을 어떻게 찍었을까’ 혹은 보통 인물 다큐라고 하면 그 사람에게 되게 솔직한 인터뷰를 끌어내야 되잖아요. 그러면 그런 인터뷰 볼 때 저 사람은 저 인터뷰를 이끌어낼 때까지 얼마나 유대관계 형성에 힘을 썼을지 많이 보는 편이에요. 그리고 요새는 호흡 조절이나 음악이 좋다거나 더빙한 성우가 좋으면 적어놓기도 하고요.”
- 다큐는 스토리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 같아요?
“일단 기본적으로 시간순으로 하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진실 버스라는 게 전국을 순회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10일을 다 보여줄 수는 없잖아요. 이래서 10일 중에 어떤 것들을 잘 조합할지 고민이었고요. 다큐 보면 유가족분들이 버스에서 밥 먹다가도 농담하시고 서로 벚꽃 나무에서 사진도 찍는 것도 있어요. 저는 그런 걸 적절히 어떤 부분에서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았던 것 같아요.”
- 그럼, 유가족의 평소 모습을 좀 더 담으려고 했나요?
“맞아요. 왜냐하면 사실 그분들의 기자회견 모습은 시민들이 이미 많이 봤잖아요. 많이 본 모습 말고 이분들의 못 본 모습 보여주려고 했죠, 우리 사회가 점점 참사 유가족에 대해서 타자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나와는 다른 사람이고 뭔가 저 사람은 이상해 보이고 과도한 주장 하는 사람 같다고 생각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 섬처럼 돼 있다는 생각 많이 들어”
- 다큐에서도 그런 말이 나오잖아요. '자기도 똑같은 국민의 한 사람인데 다르게 보는 것 같다'고요.
“그 사람이 똑같은 사람들이죠. 우리도 회사에서 일이 너무 안 되거나 상사한테 혼나면 엄청 화나지만 그러고도 밥 먹잖아요. 그분들도 전단지 돌리다가 막말 듣고 화가 나도 밥 드세요. 그게 다 사람 사는 건데 이분들도 똑같이 사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 첫날 출발할 때 분위기는 어땠나요?
“첫날에는 유가족분들도 부담도 있으셔서 좀 무거웠죠. 왜냐하면 당시 국민동의 청원이 막 시작했을 때고 (진실버스 참여하는) 유가족분들이 총대를 메고 가는 건데 성과를 못 가져오면 실망하거나 의욕 꺾이지 않을까란 걱정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처음에 엄숙했는데 버스 출발하고 1시간 지나니까 누구나 그렇듯이 농담하시고 서로 소일거리 얘기하시고 다 그렇더라고요.”
- 유가족 인터뷰가 간간이 나오던데 인터뷰는 어땠나요?
“다 진실버스 일정 중에 인터뷰한 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이분들이 되게 우리 사회에 섬처럼 돼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거기 보면 최정주 아버님이 그런 말씀을 하세요. 자기가 불편한 존재가 돼버린 거 같다고요. 이제 아무도 자기한테 삶의 재미에 대해서 얘기해 주지 않는다고요. 그러니까 주변 지인이 가족이랑 어디 갔다거나 딸 이번에 어디 학교에 가거나 자녀가 결혼한다든지 아니면 이번에 좋은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누구도 자기에게 못한다는 거예요. 그런 게 처음에 그 사람들은 연민이고 동정이겠지만 그게 계속되다 보면 결국 불편한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쟤 있으면 괜히 눈치봐야 되고 얘기하기 힘드니까 부르지 말자’라는 거죠. 자기가 그런 존재가 돼 가는 게 싫은데 어쩔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그게 되게 가슴이 아팠어요.”
- 유가족이 거리에서 전단지 나눠주며 서명받을 때 시민들 반응은 어땠나요?
“한 10명이 지나가면 한 2, 3명은 받아주시고 나머지는 무시하고 가시고요. 한 30명 중의 한두 분은 뭐라고 하세요. 뭐라고 하신다는 게 다큐에서 나왔지만, 대놓고 면박 주신다든지 아니면 지나가면서 잘 안 들리게 돈 받으려고 저러는 거라는 식으로 말씀하는 분이 많았죠. 저도 모든 걸 다 카메라에 담지 못했지만 되게 나쁜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 유가족은 분노하셨겠네요?
“분노하셨지만 참으려고 하셨어요. 자기들이 분노한다고 이게 해결될 게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오히려 분노하고 소리 질렀을 때 사람들이 자기들을 더 이상하게 볼까 봐 두려워하셔서 화를 참으시는 게 저는 느껴지더라고요.”
- 유가족이 전단지 주니 ‘들고 가면 쓰레기잖아’라고 하는 모습도 있던데 어떠셨어요?
“사실 그때 제가 카메라 옆에 있었는데 그걸 직접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 솔직히 눈이 회까닥해서 뭐라고 하려고 그 사람을 따라갔어요. 따라가다가 보니까 정신 차린 거죠. 사실 기자가 뭐라고 하면 안 되잖아요. 아무리 자기와 사상이 맞지 않아도 자식 잃은 부모가 바로 앞에 있는데 그분들이 나눠준 전단지를 보고 쓰레기라고 하는 게 저도 화가 나더라고요. 따라가서 한마디 해주고 싶었는데 참았습니다.”
- 전단지 받아서 바로 버리는 사람도 많았을 것 같거든요.
“저희가 청주 충북대에서 갔을 때 버린 애들이 많더라고요. 그걸 찍지 못했죠. 물론 그 사람들한테는 자기 일이 아니니까 남의 일이니까 관심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게 누구한테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만약 유가족이 전단지를 나눠주면 한 번이라도 자세히 본 다음 버리면 좋겠어요.”
- 마지막 날 유가족들이 이태원역 사고 현장 갔잖아요. 그전 버스 분위기는 어땠나요?
“전날 비가 엄청 왔었거든요. 전날 비 맞으면서 추모제 하시고 밤에 수원으로 이동하셔서 회의하셨어요. 그래서 잠을 진짜 많이 못 주무셨을 거예요. 주무시고 오셔서 아침에 비 오는데 또 전단지 돌리셨죠. 그러고 나서 이태원으로 간 건데요. 일단 처음엔 많이 피곤해하셨던 것 같아요. 안에서 되게 많이 주무시는 분도 많고요. 근데 ‘이제 곧 이태원에 도착해요’라는 말씀을 안에 있는 분이 해주셨어요.
그러니까 유가족분들이 약간 긴장 하시더라고요. 왜냐하면 그중에는 사고 이후에 이태원역에 절대 가기 싫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그분들한테 트라우마의 공간인 거잖아요. 그분들은 되게 많은 용기를 내신 거죠. 정말 내 기분만 생각하면 가고 싶지 않지만 내 딸과 아내를 위해서 참으신 거죠. 그런 게 느껴지더라고요.”
“유가족들을 울고 화내기만 해야 되는 존재로 만드는 게 언론 탓도 있지 않을까”
- 그러면 이태원 도착했을 땐 어땠나요?
“기존에 있던 유가족들이 되게 많이 맞이해 주셔서 되게 힘을 받으신 상태였던 것 같고 국민동의 청원이 5만 명도 이미 넘긴 상태였어요. 그래서 진실버스의 임무는 거의 완수한 거잖아요. 그거에 대한 자신감이라든지 힘을 받으셔서 앞으로 이분들이 나아가야 할 행보에 좀 더 열심히 하겠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고 특히나 (진실버스 참여한) 유가족 네 분은 그런 걸 많이 느끼셨어요. 그래서 그때는 표정이 좋으셨어요.”
- 다큐 보면 자녀에게 하고 싶은 말 있는지 물으셨잖아요. 그렇게 한 의도가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모든 유가족을 인터뷰할 때마다 보통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저의 개인적인 생각인데 사람이 머릿속으로 생각할 때와 말로 내벹는 건 다르죠, 자식한테 하고 싶은 말을 그분들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생각하실 거예요. 근데 못 하죠. 그래서 뭔가 그분들이 맨날 생각하시는 자식에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런 말을 함으로 그분들도 용기 얻으시고 앞으로 더 힘든 걸음이실 텐데 뭔가 힘 얻으시라고 그런 얘기를 해드릴 기회를 드리고 싶었어요.”
- 진실버스 동행 하시면서 느낀 점이 있을까요?
“저는 사회적 재난 참사의 유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느꼈던 건 이태원 특별법 발의 기자회견 때 지난 20일에 있었죠. 그때 이태원 진실 버스에 참여했던 네 분이 다 오셨어요. 저와 인사하고 농담도 했어요. 언론이 그런 건 전혀 찍지 않고 대신 한 유가족분이 우시니까 카메라 플래시가 계속 터지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유가족들을 울고 화내기만 해야 되는 존재로 만드는 게 언론 탓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흔히 우리가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다움이라는 편견을 얘기하잖아요. 그러니까 오히려 유가족다움이라는 편견을 만드는 데 언론이 역할을 한 것 같아서 저는 앞으로 맨날 웃는 모습 보여드릴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유가족분들의 다양한 감정과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국민들에게 유가족들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같은 사람이라는 걸 계속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요. 나와 다른 처지에 있지만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나도 저 사람의 상황이라면 나도 저렇게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 거 아니에요. 그런 걸 들게 하고 싶어요. 그런 마음을 많은 사람이 가지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찍은 것 중에 한 4분의 1만 넣었다고 생각"
- 취재할 때 어려운 점은 뭐였나요?
“사실 유가족분들이 협조를 잘해 주시고 회사도 지원을 많이 해주셔서 외부적으로 어려운 점은 없어요. 저의 어려움이었죠. 저는 그동안 계속 팩트를 취재해 온 기자인데 다큐는 처음이잖아요. 내가 잘할 수 있을지나 제가 이걸 한다고 했을 때 유가족분들의 기대가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 기대에 내가 부응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감이 되게 있었는데 그걸 잘 이겨내는 게 어려움이었던 것 같아요.”
- 취재했는데, 못 담은 게 많을 거 같거든요.
“저희가 찍은 것 중에 한 4분의 1만 넣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희가 못 담은 것 중에 유가족분들이 광주광역시에 가셨어요. 거기서 5·18 유족 어머니의 집 찾아가서 5·18 때 자식을 잃은 어머님들과 같이 얘기를 하시는데 저희가 그 모습은 담진 못했어요. 그래서 그것도 아쉬운 부분이고요. 유가족분들의 기자회견 발언 준비하시는 모습들이 있어요. 이분들도 말의 무게를 알고 계신 분들이에요. 그래서 막 말하는 게 아니라 핸드폰으로 원고를 썼다 지우고 또 보고 외우는 등 준비하시는 모습이 있거든요. 그런 모습을 제가 다큐를 만드는 실력이 능수능란했다면 잘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부분이죠.”
/이영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