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편협한 마음에 치명적이다

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2023-05-01     강준만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자는 그 책의 단지 한 페이지만을 읽을 뿐이다.” 초대 그리스도교 교회가 낳은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 354-430)의 말이다.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은 도처의 거리에 있다.” 네덜란드의 인문학자 에라스뮈스(Erasmus, 1466-1536)의 말이다. 세계시민을 자처하며 “세계 곳곳이 나의 고향”이라고 주장했던 그는 사람들에게 여행을 장려했다. 이 두 거인의 주장에 화답하듯, 훗날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은 “여행은 편견, 심한 편견, 편협한 마음에 치명적이다”고 말한다.

“여행에서 지식을 얻어 돌아오고 싶다면 떠날 때 지식을 몸에 지니고 가야 한다.” 영국 작가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 1709~1784)의 말이다. 그러나 정반대의 의견도 있다. 도시건축가 김진애는 [도시는 여행 인생은 여행](2019)에서 “좋기는, 아무 사전 지식 없이 가는 여행이 최고다. 호기심으로, 막연한 동경으로, 얼핏얼핏 들은 이야기만으로, 그저 가서 느끼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여행과 목적지 

“내가 로마 땅을 밟은 그날이야말로 나의 제2의 탄생일이자 내 삶이 진정으로 다시 시작된 날이라고 생각한다.” 독일 시인 요한 볼프강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가 [이탈리아 기행]에서 한 말이다. 이 말 이상으로 여행의 위대함을 웅변해주는 증언이 또 있을까?

“모든 세계가 움직이고 있는 이 변화의 시대에 그대로 정지되어 있다는 것은 범죄일 것이다. 여행 만세—값싸고 값싼 여행!” 영국에서 조직화된 관광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여행 사업가 토머스 쿡(Thomas Cook, 1808–1892)이 1854년에 한 말이다.

“책상에 백지를 그대로 남겨두고 책꽂이의 책은 그대로 덮어둬라! 연장을 일터에 남겨둬라! 돈에도 신경쓰지 말라!”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1819-1892)의 말이다. 그는 <열린 길의 노래>에서 사람들에게 여행을 떠나라고 조언, 아니 명령했다.

“목적지에 가고자 여행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가기 위해 여행한다.” 영국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1850-1894)의 말이다. 미국 작가 어슐러 르귄(Ursula Le Guin, 1929-2018)도 “여행에 목적지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여행 그 자체다”고 했다.

“가장 위대한 여행은 지구를 열 바퀴 도는 여행이 아니라 단 한 차례라도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이다.” 인도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의 말이다. 인도인의 특성일까? 인도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도 비슷한 말을 했다. “수년동안 비싼 값을 치르면서 나는 수많은 나라를 여행했다. 높은 산과 대양을 보았다. 그러나 내가 보지 못한 것은 내 집 문 앞 잔디에 맺혀 있는 반짝이는 이슬방울이었다.” 나와 내 주변을 외면한 채 밖으로만 떠도는 여행의 한계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여행과 편견 

“희한한 일이다. 우리가 집에 있을 때는 더할 수 없이 매력적인 사람들인데 해외로 나가기 무섭게 대다수가 끔찍한 사람들도 변해 버린다. 미국에 온 영국인 여행객들이 오만하게 굴고, 아무 근거 없이 사람을 얕잡아보고, 미국 문명의 아주 중요한 장점들을 보려 하지 않아 내가 얼굴이 화끈거렸던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영국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1931년에 발표한 <관광객>이란 글에서 한 말이다.

멀쩡한 사람도 운전을 하면 전혀 다른 인성을 갖게 되듯이, 여행도 그런가? 약탈적 여행이라고 하면 미국인들이 욕을 많이 먹었었는데, 러셀의 말을 들어보면 미국인들만 그랬던 건 아닌가 보다. 왜 멀쩡한 사람들도 그렇게 외국에만 나가면 오만해지는 걸까? 미국 생태사회학자 딘 맥커넬(Dean MacCannell, 1940-)은 [관광객: 유한계급에 관한 새 이론(The Tourist: A New Theory of the Leisure Class)](1976)에서 이런 설명을 내놓았다. “관광객의 수많은 응시대상은 전통사회에서의 종교적 순례 대상과 기능적으로 동일하며, 사람들이 현대세계의 위대한 관광지들을 여행할(순례할) 때, 그들은 사실 그들 자신의 사회를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설명은 앞서 소개한, “여행은 편견, 심한 편견, 편협한 마음에 치명적이다”는 마크 트웨인의 주장에 반하는 점이 있긴 하지만, 생각하기 나름이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는 “항해 중의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에 달려 있다”고 했는데, 여행을 통해 다양한 눈을 갖게 되면 편견과 편협한 마음에 그 어떤 변화가 오지 않을까?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