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농협 극단적 선택’ 조사 노무사, 문제 해결하랬더니...‘비밀 엄수 위반’ 혐의 경찰 조사
사건 진단
30대 직원이 결혼 3개월 만에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장수농협이 사건 해결을 위해 선임했던 공인노무사가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를 누설하거나 편향적으로 조사한 혐의가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가뜩이나 장수농협은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받은 결과 노동 관계법 위반 사실이 무더기로 확인됐음에도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이 미약하다는 지적이 높다.
[해당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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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경찰, 장수농협 ‘직장 내 괴롭힘·극단 선택’ 조사 노무사 ‘비밀 누설’ 혐의 입건
전북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20일 장수농협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초기 조사를 맡았던 권모 노무사를 공인노무사법상 비밀 엄수 위반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권 노무사는 지난 2022년 10월부터 한 달여 동안 장수농협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조사하며 노무 활동 중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장수농협에 일해오다 올 설 명절을 앞둔 지난 1월 12일 극단적 선택을 해 목숨을 잃은 고 이용문 씨는 앞서 지난해 9월 27일 근무지에서의 괴로움을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남긴 뒤 잠적했다. 당시 경찰 추적을 통해 이씨는 무사히 발견됐지만 이후 조치가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숨진 이씨는 수개월 당해온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9월 결혼을 3주 앞두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가족의 신고로 늦지 않게 발견돼 목숨을 건졌으나, 4개월 만인 올 1월 다시 극단적 선택을 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고용노동부(고용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 "이번 사건의 해결을 위해 조사를 맡았던 권 노무사가 편향적인 조사를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혀 또 다른 파장을 일으켰다. 해당 노무사는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간 장수농협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조사하며 파악한 피해자 정보를 가해자와 농협 직원들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가해자 권 센터장 지인 노무사 선임, 수차례 만나...편향적
고용부 특별근로감독 결과에서 권 노무사는 가해자로 지목된 농협 간부와 지인 관계로 편향적인 조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바람에 숨진 이씨는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농협에 신고했으나 ‘혐의 없음’으로 종결됐고, 지난 1월 자신이 일하던 농협 인근에서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더욱이 가해자인 권 센터장과 지인인 권 노무사는 과거 수차례 만난 사실이 확인됐다. 권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사건의 정식 조사결과 심의위원회에서 "피신고인·참고인의 진술과 증거 여부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신고인이 주장한 모든 행위 종류가 입증되지 않아 근로기준법상의 직장 내 괴롭힘 성립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조합장·상임이사 등 노무사 결정 따라 문제 더 키워...경찰 수사 ‘촉각’
더구나 이 자리에서 가해자 중 한 명인 이 상임이사는 "신고인 측에서 불복 등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당사자가 판단할 사항"이라며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불복한다면 우리 농협도 별수 없이 모든 사항을 법적으로 강력히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조합장 선거에서 4선에 당선된 김용준 조합장도 "권 노무사의 무혐의 판단 의견과 장수농협 심의위원회 전원의 무혐의 판결에 따라 혐의 없음 결론을 선포한다"며 당시 심의위원회를 끝냈다. 심의위원회에는 이 상임이사와 비상임이사 3명, 노조 지회장, 직장 내 괴롭힘 관리책임자가 위원으로 참석했다.
이에 대해 고용부는 한국공인노무사회에 공인노무사법을 위반한 권 노무사에 대해 징계를 요구하고 장수농협 이모 상임이사, 권모 센터장, 윤모 과장, 정모 과장을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판단하고 농협 측에 징계할 것을 명령했다.
현행 공인노무사법은 '노무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직무상 알게 된 사실을 타인에게 누설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이를 위반할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장수농협 직장내 괴롭힘 사건은 여러 갈래로 후폭풍이 번지고 있어서 이번 경찰의 조사 결과에 지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