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사태'가 난 '산천'을 걸으며
신정일의 '길 위에서'
꽃사태가 난 산천을 그리워하며 다시 길을 걸어봅니다. 사월의 중순, 나라 곳곳의 산천이 온통 꽃들의 향연이 한창이다가 서서히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남은 곳, 금산군 부리면의 홍도와 무주군 부남면 금강변에 화사하게 피어난 복사꽃입니다.
하얗고 붉은 색깔의 산 벗 꽃들 속에 분홍의 진달래가 무더기로 피어 있고, 비스듬하게 무리를 지어 피어 있는 사과 꽃과 배꽃. 길가 아무 곳이나 피어 사람의 시선을 끄는 조팝꽃도 그렇지만 가끔씩 눈을 어지럽히는 야산을 물들인 요염하고 도도한 복사꽃, 바람에 흩날리는 벗 꽃잎을 보며 “꽃잎 하나 날려도 봄이 가는데” 라는 두보의 시 구절을 떠올리기도 전에 우수수 바람에 날리는 꽃잎.
그 중에서도 압권은 온 산을 하얗게 물들인 산 벗 꽃 사이사이를 연둣빛으로 물들인 가지가지의 나뭇잎들입니다. 어쩌면 저렇게 조화롭게 저 산을 한 폭의 그림처럼 물들였을까?하고 바라보면 온 정신이 산천 속으로 빨려 들것 같은 봄 산천을 실컷 바라보다가 느낀 생각은 나도 만물 들 속에 ‘하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시냇물은 강물과
강물은 바다와 합치고,
하늘에서 부는 바람들 항상
감미로운 마음으로 섞인다.
이 세상에 외토리인 것 없고
천리에 따라 만물은 서로들 합치게 마련인데
너와 난들 어찌 못 합치리.
산들이 높은 하늘과 접하고
파도들이 서로 껴안는 것을 보라.
어떤 누이 꽃도 용서 못하리.
오빠 꽃을 버린다면,
햇빛은 대지를 껴안고
달빛은 바다와 접하는데,
이 모든 접합이 무슨 소용 있으랴?
너와 나의 입맞춤이 없으면.“
P. B. 셀리(P. B. Shelley)의 <사랑의 이법(理法)>이라는 시처럼 모든 것이 혼자가 아니고 서로 조화를 이루며 소통하고 합치면서 완성되고 나아간다는 것, 무르익은 봄 산천을 바라보다가 느낀 생각이었습니다. 다시 꽃 피고 지는 금강변을 하염없이 거닐고 싶습니다.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