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여!
이화구의 '생각 줍기'
흔히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들 말합니다. 맞는 말 같았습니다. 물론 일하는 사람의 주변 환경이 열악하고, 일하는 곳에 갑질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는 하나 그래도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새 새로운 일을 하면서 '직업에 귀천이 없나?’ 하는 의심이 듭니다.
저는 직업에 귀천이 있는 게 아니라, 직업에 대하여 귀천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귀천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온갖 지저분한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를 깨끗하게 청소하시는 아름답고 고귀한 직종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또한 이런 일을 하는 직업을 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쓰레기를 청소하는 일이 천한 게 아니라 그런 일을 하는 걸 천하다고 여기는 인간들이 천하다는 겁니다.
최근 3주째 새로운 일을 하고 있는데 현장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묻습니다. “아저씨! 한 달에 얼마 받아요?” 그러면 ‘하루 6시간 일하고 000만원을 받는다’고 대답하면, 돌아오는 말이 “아저씨! 거짓말 하지 마세요!”하면서 갑니다. '더 받으면서 왜 적게 받느냐'고 거짓으로 말하냐는 겁니다.
같은 직장 동료라도 근로계약서의 급여는 서로 알 수 없는 각자의 기밀 사항인데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공간에서 자기와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에게 급여를 물어보는 거 자체가 결례를 떠나 웃기는 일입니다. 저야 있는 그대로 받는 금액을 말한 것인데 그걸 믿지 않는다는 것은 제가 금액을 축소해서 대답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과 아무 관련도 없는 타인에게 급여를 물어보는 것 자체가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천한 일이다고 생각했기에 묻는 것이며, 묻는 사람 자체도 과거 이와 비슷한 업종에 종사해봤기 때문에 묻는다고 봅니다. 결국 일에는 귀천이 없는데 그 일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이 일의 귀천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일에 귀천이 있는 게 아니라 일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 속에 귀천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한 달에 얼마나 받느냐'고 물었던 사람은 법원이나 검찰청에 근무하는 판사나 검사한테는 '당신 한 달에 얼마나 받느냐'고 감히 물어보지 못할 겁니다. 직업에 대하여 귀천 의식이 없는 사람은 마음 속에서도 그런 귀천 의식 자체가 일어나지 않고, 일에 대하여 귀천의 의식을 가지고 바라보는 천박하고 비천한 인간들의 마음 속에 귀천 의식이 일어나는 게 문제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지나가다가 왼손을 올려 거수경례를 하며 지나갑니다. 왼손으로 하는 거수경례가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람을 무시하며 ‘엿 먹어라!’는 제스처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명예퇴직 후 재취업해서 잘 다니던 직장을 집사람이 몸이 아프다고 그만두라고 해서 그만둔 게 후회스럽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파트 한 채 있는 것으로 주택연금 받아서 쓰면 이런 수모도 겪지 않은 것 같은데 집사람이 자식 하나 있는데 집이라도 물려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반대하는 바람에 새로운 일을 하면서 많은 일을 겪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일을 하면서도 길을 몰라 헤매는 분들에게 길을 안내하고 생리 현상이 다급한 분들에게 화장실을 안내하면서 그분들이 저에게 고맙다고 인사하시는 선하고 아름다운 분들이 많이 계시기에 일에서 보람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뒷모습이 고등학교 동창 같아서 제가 순간적으로 친구가 뒤에 메고 있던 백 팩(Back-Pack)을 손으로 치며 아는 체를 먼저 했습니다. 아는 체를 먼저 하고 나서 순간적으로 “내가 괜히 아는 척을 했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아는 척을 했을 때는 반가운 마음이 앞섰기 때문에 속 된 말로 쪽팔린 줄도 모르고 했는데 막상 아는 체를 하고 보니 후회스럽기도 했습니다.
이 친구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친구는 공기업 본부장을 마치고 퇴직 후에도 자신의 직종에서 서울시 감사위원으로 일하고 있으니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목에 깁스도 하고 다니는 친구였으니 말입니다.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동창들 사이에는 한 번 눈에 띄면 금방 입에서 입으로 “저 친구 무슨 일을 하고 있다”라고 소문이 퍼지는 게 우리들의 세계이기 말씀입니다. 하기야 저는 고등학교 동창들 사이에서도 “저 친구는 돈이 없어 대학에 못간 친구”라고 아직까지도 낙인이 찍힌 인물이니 더 이상 추락할 곳도 없기는 합니다만 말입니다.
그래서 잘난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면 저는 항상 고졸 학력이라는 콤플렉스 때문에 방송대에서 학부과정과 야간 대학원 석사과정 그리고 CPA (국제공인회계사) 자격을 취득했음에도 항상 고졸로 남아 있는 느낌입니다. 제가 너무 대단한 학교를 다닌 게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냥 고입 전기에 군산00고 장학생으로 선발됐을 때 그 학교를 다녔으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텐 데 말입니다.
/글·사진: 이화구(CPA 국제공인회계사·임실문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