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에게 ‘고문기계’가 된 키오스크

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2023-03-20     강준만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인생이 제대로 방향을 찾게 하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일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단순하게 해야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 427-347 B.C.)의 말이다. “진리는 항상 복잡성과 혼란이 아니라 단순함에서 찾아야 한다.” 영국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Sir Isaac Newton, 1643~1727)의 말이다.

“문학이 하는 일은 개체가 아닌 종(種)을 들여다보는 것이며, 전체를 포괄하는 속성과 주된 형상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한 종을 특징짓는 데 영향을 주지 못하는 미미한 차이는 무시해야 한다.” 영국 작가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 1709~1784)의 말이다. 이는 ‘단순화의 원리’라고 할 수 있는데, 미국 소설가 윌라 캐더(Willa Cather, 1873~1947)도 비슷한 말을 했다. “예술작업의 보다 높은 단계는 단순화다. 그것은 실로 고급 예술작업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하다. 없어도 되는 관습적 형식과 무의미한 세부를 골라내고 전체를 대표하는 정신만을 보존하는 일이다.” 

'단순'하다는 것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일은 흔하다.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아주 단순하게 만드는 일, 그것이 바로 창의성이다.” 미국 재즈 작곡가 찰스 밍거스(Charles Mingus, 1922~1979)의 말이다. 미국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Richard P. Feynman, 1918~1988)도 비슷한 명언을 남겼다. “현상은 복잡하다. 법칙은 단순하다. 버릴 게 무엇인지 알아내라.”

맹렬한 기세로 단순화를 추구하되, 한가지 꼭 명심할 게 있다. “단순성을 찾아라. 그러고 나서는 그것을 의심하라.” 영국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의 경고다. 경영학자 워렌 베니스(Warren Bennis)와 버트 나누스(Burt Nanus)는 “문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단순성을 찾고 난 다음에 의심하는 것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고 개탄했다.

아니 그 이전에 아주 단순하게 만드는 게 창의성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게 더 큰 문제다. 글쓰기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자. “단순해지라는 건 ‘정보의 수준을 낮추라’거나 ‘간단한 요약문을 만들라’는 의미가 아니다.” 미국 경영학자 칩 히스(Chip Heath, 1963~)와 댄 히스(Dan Heath, 1973~) 형제가 [스틱!: 1초 만에 착 달라붙는 메시지, 그 안에 숨은 6가지 법칙(2007)에서 한 말이다. 이어 이들은 ‘단순하게 쓰기’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단순하다는 것은 쉬운 말만 골라 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단순’의 정확한 개념은 메시지의 ‘핵심’을 찾으라는 의미다. 그리고 ‘핵심을 찾으라’는 말은 곧 메시지를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내어 그 한가운데 숨어 있는 본질을 발견하라는 뜻이다. 핵심에 이르기 위해서는 남아돌거나 불필요한 요소들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그나마 쉬운 과정에 속한다. 정말로 어려운 부분은,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하지는 않은’ 메시지를 제거하는 일이다.”

일단 무언가를 알게 되면 자신이 과거에 그걸 몰랐을 때를 생각하지 못해 지식의 원활한 소통을 가로막는 현상을 가리켜 ‘지식의 저주(the curse of knowledge)’라고 한다. 히스 형제는 단순화를 할 때엔 ‘지식의 저주’를 경계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일단 뭔가를 알고 나면 모른다는 것이 어떤 건지 잊기 시작한다. 그래서 단순화할 때 너무 지나치게 단순화할 우려가 있다.” 

한국의 키오스크 

결국 “가능한 한 단순하게 만들어라. 하지만 너무 단순하게는 말고”라고 했던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의 말이 옳았던가보다. 무슨 말을 그따위로 애매하게 하느냐고 짜증을 낼 수도 있겠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원리라는 게 원래 그런 법이다.

미국 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 앤드루 맥아피(Andrew McAfee)와 에릭 브린욜프슨(Erik Brynjolfsson)은 “모든 성공한 플랫폼 구축자들은 참가자에게 전달하는 사용자 경험과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개선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애쓴다”며 “최고의 인터페이스는 종종 아인슈타인이 말했다고 하는 위 조언을 따른다”고 했다.

그러나 다음 [경향신문](2022년 10월 18일) 기사는 한국의 키오스크가 아인슈타인의 조언을 충실히 따르지 않아 노인들에게 필요 이상의 불편을 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흥미롭고도 놀라운 건 노인들이 “왜 이렇게 어렵게 만들었느냐”고 불평을 하기보다는 아예 “늙은 게 죄”라며 키오스크의 ‘고문’에 순응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복지관, 노인대학, 동주민센터 등에서 최근 인기가 많은 고령층의 키오스크 수업은 보통 5~6주, 길게는 12주 과정이다. 화면에 뜬 아이콘을 찾아 누르는 게 전부인데 12차례나 뭘 가르칠 게 있을까. 의구심은 복지관 수업이 ‘터치법’으로 시작되는 것을 보며 풀렸다. 태어나자마자 화면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려 잠금을 풀 줄 아는 요즘 아이들이 ‘터치 네이티브’라면, 노인들에게 ‘터치’는 여전히 어색한 동작이다. 게다가 말 몇 마디로 끝날 주문을 수십가지 선택지를 늘어놓고 고르게 한다. 어르신들은 키오스크를 ‘고문기계’로 부른다고 했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