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행복을 살 순 없지만 권력은 살 수 있다
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인간을 사악한 권력에 종속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 가운데 돈만 한 것은 없다.”
고대 그리스 비극 시인 소포클레스(Sophocles, BC 496~BC 406)의 대표작인 [안티고네(Antigone)](BC 441)에서 나오는 말이다. 좋은 말이지만, 옛날 이야기다. 사악하건 사악하지 않건 돈 없인 권력을 가질 수 없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심한 탓인지 미국의 내로라 하는 인물들이 돈이 지배하는 ‘금권정치’에 대해 한마디씩 하곤 했다.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은 “은행은 군대보다 더 위험하다”고 했고,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 1767-1845)은 “미합중국은행이 나를 죽이려 하고 있는데 내가 그것을 없애버릴 것이다”고 했다.
금권지배와 정치
1892년 미국 인민당(People’s Party)은 전국 강령을 통해 미국 정치의 부패상을 이렇게 고발했다. “부패가 투표함과 의회를 지배하고 있고 그 냄새가 의석의 비싼 양피에도 스며들고 있다. 소수의 엄청난 부의 축적을 위해 수백만의 땀의 결실이 인류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도둑질 당하고 있다. 이 부의 소유자들은 국가를 멸시하고 자유를 위태롭게 하는 자들이다.”
인민당 대통령 후보 제임스 위버(James B. Weaver, 1833~1912)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담하고 공격적인 금권지배가 정부를 탈취하여 오만한 포고령을 집행하는 경찰로 이용하고 있다. 이 금권지배 체제는 상원을 그 추종자들로 채우고, 하원의장을 자신들의 대표로 앉혀 하원을 통제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는 법원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20세기 들어서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언론인 윌리엄 알렌 화이트(William Allen White, 1868-1944)는 20세기초 미국 상원을 가리켜 ‘백만장자 클럽’이라고 했는데, 역사가 스티브 프레이저(Steve Fraser)는 이 클럽의 회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주(州), 아니 한 지역(주보다 더 넓은 개념)보다 더 큰 것을 대변하고 있다. 그들은 재계의 공국과 권력의 대변자였던 것이다. 어떤 의원은 유니언 퍼시픽 철도를 대변하고 또 어떤 의원은 뉴욕 센트럴 철도를 대변했다. 그리고 어떤 의원들은 뉴욕과 뉴저지 보험업계의 이익을 대변했다.”
1950년대엔 텍사스 석유재벌이자 공화당 활동가인 해롤드슨 헌트(Haroldson L. Hunt, 1889~1974)는 아예 납세액에 비례해 투표권을 부여하자고 주장하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Samuel P. Huntington, 1927~2008)은 [미국정치론](1981)에서 “돈은 상품을 구입할 때가 아니라 권력의 구매에 사용될 때 죄악이 된다”고 했지만, 철저한 현실주의자인 그마저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길 하고 말았다.
돈과 권력
‘부활한 마키아벨리’로 불리는 미국 작가 로버트 그린(Robert Greene, 1959~)은 [인간 욕망의 법칙](1998)에서 “잘고 인색한 행태로 탁월한 리더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돈을 아끼지 마라. 넉넉한 씀씀이는 권력의 신호이자 자석이다”고 했다. 그는 “돈에 대해 융통성 있고 개방적인 태도를 견지하면 전략적 관대함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깨닫게 된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전략적 관대함은 ‘무언가를 얻고자 한다면 먼저 베풀어라’라는 오랜 비법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이 적절한 선물을 주면 상대는 신세를 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관대함은 또한 사람들을 누그러뜨려 쉽게 속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준다. 관대하다는 평판을 벋으면, 사람들은 당신이 벌이는 권력 게임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오히려 당신을 존경할 것이다.”
정치인 마크 그린(Mark J. Green, 1945~)은 “돈으로 행복을 살 순 없지만 권력은 살 수 있다”고 했다. 이를 말해주듯, 미국 정치판에서 자주 쓰이는 말 중의 하나로 “백파이프 연주자들은 악기를 사주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연주한다”는 말이 있다. 민주당 상원의원 존 브로(John Breaux, 1944~)는 그런 비유법을 동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자신의 표를 돈을 받고 팔 수는 없어도 제일 비싼 값을 부리는 사람에게 빌려줄 수는 있다”고 했다.
돈으로 행복은 물론 권력도 살 수 없는 그런 날은 정녕 올 것인가? 영 가능할 것 같지 않지만, 우리 인간이 헛된 기대나마 기대 없이 어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랴.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