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란 과연 무엇일까

백승종의 역사칼럼

2023-01-27     백승종 객원논설위원
백승종 역사학자

송시열의 문집 『송자대전』을 읽다가, 나는 그가 1687년(숙종 13) 숙종에게 올린 한 장의 흥미로운 상소문을 발견했다. 『송자대전』 제19권에 실린 「대의大義를 논하면서 윤증의 일을 진달하는 상소」였다. 이 상소문에서 송시열은 자신과 윤휴 및 윤증의 어긋난 관계를 소상하게 적었다. 그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윤휴는 편파적이었고 언행이 지나쳐 주자를 함부로 헐뜯었습니다. 그는 주자의 주석註釋이 옳지 않다며 자신의 글로 바꾸었습니다. 특히 『중용』은 장구章句를 다 없애고, 새로 주석을 달아서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마지막 부분에는 논설(說)까지 붙여서 감히 자기 자신을 공자에 견주었고, 주자를 공자의 제자 염구冉求에 빗대었습니다. 그가 어그러지고 못됨이 이러했습니다.

하지만 주자의 도道는 해가 하늘 높이 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윤휴 같은 이가 1만 명이 나와서 헐뜯는다 할지언정 어찌 털끝만큼이라도 햇빛을 흐리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함에도, 그의 소행이 세도世道를 해친 바가 컸습니다.

그때 조정 대신들로부터 벼슬 없는 선비에 이르기까지 모두 바람에 휩쓸리듯 그에게 빠져들었습니다. 그들은 윤휴가 주자보다 더 훌륭하다고 칭찬하며, 윤휴의 글을 돌려가며 베끼고 과장하며 유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시 이름이 난 사람일수록 중독이 더욱 심했습니다.”

송시열은 윤휴가 사약을 마신 지 7년 후, 그리고 자신이 사약을 마시기 2년 전에 이 상소문을 썼다. 그때 송시열의 나이 81세였다. 이 글은 자신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회고하면서 쓴 일종의 변론문이었다. 그의 태도는 여전히 당당했고, 가슴속에는 윤휴에 대한 적대감이 가득했다.

어떤 이는 송시열이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몰아댄 것은 질투심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독창적이고 패기만만한 윤휴가 너무 부러워서였을 것이라는 말이다. 다른 이는 송시열이 남인과의 정치적 투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주희의 화신처럼 행세했다고 비판한다. 또 다른 이는 국왕 숙종이 양측의 학문적 시비를 정치적으로 악용했다며 넌지시 나무란다. 세 가지 주장에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빠진 것 같다. 송시열도 숙종도 윤휴도 선비였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정치투쟁과 경전 해석이 별개의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다. 이것이 유교적 도덕 지상주의의 특징이었다. 그들은 가치관의 다원성을 인정하기가 불가능한 선비들이었다. 17~18세기 초반, 조선 사회의 독특한 풍경이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한다는 사실, 우리는 21세기인 지금까지도 그 점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정치적 문제든, 경제, 사회, 문화적인 부분에서도 모든 문제를 정오(正誤)로만 보려는 시각이 아직도 지배적이지 않은가. 겉으로는 누구나 다양성을 주장하고 있으나, 막상 누군가 ‘나’와는 다른 주장을 펼치기만 하면 원시적인 흑백논리로 회귀할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대의’란 본래 그렇게 단순한 것이었던가.

나 역시도 잘못된 생각에 빠질 때가 많다는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극한의 대립 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는 것처럼 세상사에 접근할 때가 적지 않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그렇게 해서 결국에는 아무 문제도 풀지 못하기 일쑤였다. 산이 높으면 높을수록 올라가는 길도 여럿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복잡하고 골치 아픈 문제는 어떻겠는가. 문제에 대한 접근도, 해법도 다양해야 할 것이 아닌가. 올해는 이런 생각을 좀 더 자주 하며 살아야겠다.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